요가하는 변호사. 요가와 명상에서 찾는 삶의 의미 에세이
“변호사님, 이건 다 상대방 책임이에요. 저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변호사로서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사건은 쉽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의뢰인은 애초에 소송에서 자기 책임을 최대한 경감시킬 의도로 변호사를 찾는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어려운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책임이라는 말에는 여러 개의 레이어(layer)가 있기 때문이다.법적 책임, 도의적 책임, 정치적 책임, 국가적 책임, 시민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책임… 수많은 종류와 깊이의 책임이 있다. 그런데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체로 법적 책임 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책임을 부인하며 사안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상태가 많다. 변호사로서 할 일(법적 책임 방어)만 하면 될 것을, 요가를 하더니 갑자기 인간으로서 주체성을 운운 하며 이상한 도덕 강좌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도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사건의 승소 전략에 관한 이야기다.책임은 주거니 받거니 공처럼 던지고 피하고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내가 그걸 받아들이든, 영원히 부인하든, 숨 쉬고 존재하는 이상 어떤 형태와 크기로든 존재한다. 그러나 대개 다른 사람의 상황에서는 책임이 잘 보이는데, 나와 관련되는 순간 보이지 않는다. 바닷속 물고기가 자기가 바닷속에서 수영한다는 것을 결코 알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책임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짐'이 아닌, '응답'의 선언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은 물고기와 달리 의식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매일 숨 쉬듯 들이쉬고
“인생의 낙(樂)이 없지 않나요?”와인을 좋아해서 신문에 와인 칼럼까지 썼는데, 이제는 술을 아예 끊었다고 하면 듣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순간적인 자극인 도파민과 깊은 삶의 즐거움을 뜻하는 ‘락(樂)’이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데, 둘은 전혀 다르다. 나는 자극에서는 멀어졌지만, 요가와 명상 덕분에 낙은 훨씬 더 많아졌다. 생존 본능이 과잉 자극의 덫이 되기까지도파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는 생존에 중요한 행동에 보상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도파민은 그런 보상과 동기 부여를 위해 뇌의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다. 도파민 자체가 ‘좋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무언가를 ‘더 원하고 추구’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그래야 사람이 먹을 걸 찾아 나서고,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하고, 무언가 이룩하려고 움직이게 되어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원시인들이 피로를 무릅쓰고 사냥과 짝짓기에 나선 것도 이 덕분이다.모든 것이 넘쳐나서 여유롭게 풍요로움을 누려도 되는 현대 문명사회에도 수억 년 전 생존의 명령어는 변함없이 작용한다. 뇌는 여전히 도처에 널린 SNS의 '좋아요', 쇼핑, 게임, 알코올, 맛집, 자극적인 콘텐츠를 통한 도파민 보상으로 생존의 갈구를 채우려 한다.현대의 전문직은 그래서 피로보다 과잉 자극이 더 큰 문제다. 회의 사이 휴대폰을 확인하며 숏폼 영상 몇 개를 넘기다 보면 10분은 금방 사라진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커피를 찾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술로 긴장을 푼다. 겉으로 보면 사소한 일상이다. 그러나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보상회로를 자극하고 있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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