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ESG 기준과 철학이 견고하게 작동… "ESG, 평판에 집중하라"

[ESG 리뷰]
나이키 중국 베이징 매장 앞을 한 여성이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이키 중국 베이징 매장 앞을 한 여성이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왜 할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실시한 한국의 매출 500대 기업 조사 결과 ESG가 필요한 이유는 ‘기업 이미지 제고 목적’이 43.2%로 1위를 차지했다. ESG 평가 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홈페이지에 보면 지속 가능 경영은 ‘기업 이미지 개선 및 브랜드 가치 제고’에 기여한다. ESG를 잘하면 기업 이미지가 높아지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기업의 이미지는 단순히 심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업 이미지는 ‘이해관계인들이 가진 사회적 기억의 총합’, 즉 평판(reputation)이다.

외국 기업들은 평판을 ESG의 동인으로 이해한다. ESG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2005년 ‘후 케어 윈스(Who Care Wins)’ 선언문에서는 ‘ESG 이슈들은 기업 가치의 중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평판과 브랜드에도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ESG를 권고했다. KPMG가 2018년 약 900명의 이사회 멤버와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ESG를 왜 하는지 투표한 결과 ‘회사의 평판·브랜드에 대한 잠재적인 영향(Potential Impact on Company’s Reputation·Brand)’이 54%로 1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ESG 컨설팅 업체 ERM이 2019년 기업들에 기후 변화에 집중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물었더니 49%가 ‘주요 이해관계인에게 평판이 악화됨(Worsening reputation amongst key stakeholders)’이라고 응답했다. 평판은 분명히 ESG의 중요한 키 드라이버다.

ESG 경영을 논의하면서 평판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ESG 가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ESG 경영은 ESG 평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600여 개의 ESG 평가 기관들이 A부터 C로 기업에 대해 평가하고 등수까지 매기고 있다. 기업들은 ESG 성적을 잘 받고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ESG 등급이 높거나 점수가 잘 나오는 회사에는 좋은 평판이 따라붙고 자금 조달이 원활해지고 이해관계인의 호의가 강력히 조성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ESG 평판을 목표하는 것은 현실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비즈니스 리더들의 가장 큰 우려는 평판 악화

ESG 평판이 기업 경영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례가 있다. ESG는 ‘SEE(Social, Environmental, Ethical)’에서 출발한 사회·환경·윤리적 경영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이를 어긴다면 ESG 평판은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의 평판 리스크는 컴플라이언스와 관계없이 회사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공유 오피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위워크의 애덤 노이만 CEO는 2017년 자신의 지분 불법 매도, 마약 중독 등의 논란을 야기했다. 2019년 9월 노이만 CEO는 리더십 측면에서 ‘상당한 주의 산만(significant distraction)’을 이유로 퇴진했고 그의 낮은 ESG 평판은 위워크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 그의 사임 한 달 후인 2019년 10월 회사의 가치는 80억 달러로 평가됐다. 이는 불과 9개월 전인 1월 470억 달러에 달했던 회사 가치에 비하면 5분의 1에 불과했다. 비즈니스 모델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위워크의 G(지배구조) 측면에서 리더십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의 심각한 우려가 반영된 사례다.

반면 ESG 요소를 중요시하는 경영은 ESG 평판에 기반해 위기 회복력도 뛰어나다. 1990년대 나이키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아동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그 과정에서 S(사회) 이슈인 인권 존중 경영을 소홀히 했다는 대가로 나이키는 1998년 엄청난 적자와 1500명 이상의 구조 조정을 감수해야 했다. 최근 나이키는 다시 한 번 S의 대표적 요소인 공급망의 인권 존중 경영 이슈와 맞닥뜨리게 됐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시장 중국에서 말이다.

나이키는 올해 3월 성명을 내고 소수 민족 강제 노동 의혹이 불거진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제품과 원자재를 공급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국 내에서는 나이키 불매 운동이 펼쳐졌고 심지어 나이키 신발 화형식까지 동영상에 올라왔다. 이후 존 도나호 나이키 CEO는 “우리는 중국의, 그리고 중국을 위한 브랜드”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중국 시장 매출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이키는 6월 24일 실적을 발표했고 오히려 시장 전망을 웃도는 매출과 수익을 기록했다. 주가도 약 15%나 급등했다. 나이키의 위기 회복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2021년 세계적 ESG 평가 기관인 서스테널리틱스에 따르면 나이키는 ‘낮은 위험(low risk)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서스테널리틱스는 산업별로 익스포저에 따른 기업의 위험도를 측정, 계량화·등급화해 발표한다. 익스포저는 기업이 다양한 ESG 이슈에 노출되는 정도를 말하며 이에 대한 등급은 크게 다섯 그룹으로 나뉜다. 음·낮음·중간·높음·심각(Negative, Low, Medium, High, Severe)이다. 나이키는 10점에서 20점 사이에 해당하는 낮은 위험 노출도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ESG 측면에서 나이키는 위험을 낮추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나이키는 2018년부터 변함없이 MSCI ESG 등급 A를 유지하고 있다. 결코 쉬운 등급이 아니다. 나이키가 중국 시장에서의 보이콧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마케팅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이키의 건전한 ESG 기준과 철학이 견고하게 작동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이키는 원가 상승이나 시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공급망의 노동 기준을 엄격하게 관리해 왔고 여전히 높은 ESG 평판을 유지하고 있다. ESG 평판이 높다는 것은 기업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월등한 위력을 발휘한다. ESG 평가와 판단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ESG 평판을 높이기 위한 경영 프로세스로 ‘S.U.R.E’를 제안한다. S는 셀프애널리시스(Self-analysis), U는 업그레이드(Upgrade), R은 리포트(Report), E는 이밸류에이션(Evaluation)이다. 기업이 ESG 경영을 하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업이 그간의 자사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 등을 분석(Self-analysis)하는 것이다. 다음은 회사가 자체적으로 분석해 발견된 활동들을 ESG 활동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실천해야 한다. 내부에 ESG 조직을 만들고 경영진의 관심사로 상향시키는 것도 모두 업그레이드 과정에 속한다. 그리고 그 활동들을 체계적으로 이해관계인들에게 보고(Report)하고 공시하고 소통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로 ‘중요성(materiality)’의 원칙 등에 따라 정돈된 ESG 활동이 평가 기관들로부터 우월한 평가(Evaluation)와 판단을 받아야 한다.

기업 평판을 목적으로 ESG 경영을 하는 것은 결코 악(惡)이 아니다. 기업 평판을 올릴 만큼 ESG 활동을 하지 않고 위선적으로 이해관계인들을 속이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 바로 악이다. 전략적이고 지속적인 ESG 경영을 하고 그 결과 기업의 ESG 평판 등급이 올라가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좋은 평판을 갖는 방법은 당신이 보이고 싶은 모습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ESG 평판을 중요시하는 것은 기업이 실제로 ESG 경영을 진정성 있게 전략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ESG 목표점에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과 수익 향상뿐만 아니라 높은 ESG 평판 구축도 포함돼 있다.

문성후 ESG중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