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관 평가 대응 벗어나 통합 전략 필요…ESG 부서와 전략·사업 부문 유기적 연계 필수

[ESG 리뷰] ESG 환경 강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수급 구조에 문제점을 드러낸 반도체 칩, 전기차용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의 공급 사슬에 대해 100일간 검토를 지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수급 구조에 문제점을 드러낸 반도체 칩, 전기차용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의 공급 사슬에 대해 100일간 검토를 지시했다.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열풍이다. ESG 바람을 넘어 문화로 확산되는 현상이다.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 구조(Governance)의 약자인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로, 기업의 재무 성과 외에 사회적 책임 이행을 고려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이행하기 위한 프레임이다. ESG는 단순 캠페인도 아니고 지켜야만 하는 규제도 아니지만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 인정되고 있다.

필자는 2008년부터 지배 구조 평가를 담당하다 2011년부터 상장 법인을 대상으로 ESG를 평가했고 두 개의 회사를 거치면서 2017년까지 ESG 평가와 주주 총회 의결권 행사를 담당했다. 이후 기후 변화와 ESG 전략 수립 컨설팅 등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11년부터 상장 법인을 대상으로 ESG 평가를 처음 진행할 당시에는 기업들에 ESG 요소를 고려한 전략과 목표 수립의 중요성과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설득시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ESG가 뭐예요”라는 물음부터 “기업에서 ESG 평가 대응을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왜 강요하느냐”, “ESG 결과나 등급을 낮게 공표하면 고소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기업도 부지기수였다.

기업이 ESG를 고려한 지속 가능 실천 전략을 당장 실행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개 인식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거나 거래 상대 기업 등 고객의 인식이 미치지 않아 당장의 매출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ESG 경영 전략을 수립한다며 도전과 기회를 역설하는 기업들의 존재가 반갑기도 하지만 그중 단순히 ESG 평가 결과가 잘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기업들을 보면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도모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위기 속에 새로운 홍보 모델이 필요한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인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 고객이 변하고 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지속 가능한 기업 지배 구조 법안’ 마련하는 EU

첫째,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규제가 강화되면서 ESG가 국가 간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기업 공급망 실사(Due Diligence)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EU집행위원회에서는 ‘지속 가능한 기업 지배 구조 법안’을 마련 중이다. 공급망 실사 제도가 시행되면 EU 시장 진출 기업뿐만 아니라 EU 기업의 협력사도 EU 기준에 맞춰 기후 변화와 인권과 같은 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위반 시 벌금, 피해 보상, 수입 금지 조치 등 실효적인 제재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국은 지난 2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칩, 전기차용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에 대해 기후 변화와 불법 노동을 포함한 공급망 위협 요인에 대해 100일 동안 검토하도록 하는 행정명령(E.O.14005)에 서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EU는 2023년부터 탄소 국경세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미국도 탄소 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생산 과정에서부터 탄소 중립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외에 아프리카나·남미 등 개도국 역시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선진국의 각종 환경 규제와 동조화 현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최근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으로 인해 공급 사슬이 재편되고 있고 이로 인해 기업의 영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 역시 업종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중국·유럽 등 주요국의 수출 통제 조치와 공급 사슬 재편이 기업에 또 다른 무역 규제로 다가오기 때문에 면밀히 추적 관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에서 소재·부품·장비 업체가 거래 기업의 사회·환경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협력사가 될 수 없어 거래 요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공급망에서 유엔·국제노동기구(ILO)·환경·인권 규정을 바탕으로 행동 강령과 행동 수칙을 요구하고 있다. 거래하는 국내외 기업으로부터 ESG 활동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협력사 선정에서 배제되거나 납품량이 축소되는 불이익을 받으며 비즈니스상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수년 전부터 BMW나 애플 등 전기·전자업계에서는 거래 상대 기업에 기업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전부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는 RE100(Renewable Energy100) 이행을 요청하는 사례가 단적인 예다. 그 외 자동차 제조 업체 벤츠, 한국의 포스코 등도 자사의 생산 제품과 전 밸류 체인에서 탄소 중립 목표를 수립하면서 동시에 주요 협력사 선정 시 탄소 배출량 등 ESG 거래 요건을 충족시키는 거래 기업과 계약을 유지, 추진할 계획이라고 공표했다.

한편 외신 보도에 따르면 5월 26일 네덜란드 법원이 다국적 석유 기업인 로열더치쉘에 2030년 말까지 2019년 수준과 비교해 탄소 배출량을 45% 줄일 것을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쉘그룹은 자체 탄소 배출량과 공급 업체의 탄소 배출량에 대한 책임이 부과됐다. 이번 판결로 인해 다른 기업들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은 자사뿐만 아니라 공급망상에서 감축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없게 된 이유다.

셋째,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중소기업에도 ESG 경영 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 ESG는 중소기업에 비해 재무적 여건이나 물리적인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대기업 중심으로 목표를 수립하거나 실천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외적으로는 EU나 미국에서 공급망 실사제도, 탄소 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ESG를 거론하고 있고 이제 중소기업은 답을 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중소기업도 체질을 바꿔야 할 모멘텀이 커졌다. 지금 체질을 개선하면서 낮은 비용으로 전략과 목표를 수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작정 겁을 내고 회피하기보다 기업 스스로 진단을 통해 강점과 약점(리스크)을 파악하고 기회 요인을 발굴하며 주요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자사 경영 전략을 통합 연계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ESG 요소를 고려한 전략이나 목표가 경제적 가치로 직결되지 않는다면 단순 ESG 워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업은 비용을 들여 ESG 경영을 실천한다고 했지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 하면 ESG 전략이라고 하기 힘들다.

요즘 많은 기업들의 ESG 대응을 보면 기업의 전략적 요소가 빠지고 단순히 ESG 요인들을 검토해 보거나 외부 기관의 ESG 평가 대응에만 집중하는 것을 많이 본다. 기업을 둘러싼 ESG 요인들을 하나둘씩 점검해 보고 스스로 진단해 본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를 지속하려면 자사의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ESG 방향을 명확하게 수립해 고객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전략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ESG는 결국 비즈니스 전략이다

ESG 요인을 기업 전략에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환경 요구 사항과 사회적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최종적으로 고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전략적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많은 기업들에서 ESG 경영을 실천할 전담 부서의 역할을 다소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기존의 경영 비전과 전략과는 별개의 요소로 ESG 경영을 추진한다고 하는 것이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ESG 요소를 담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ESG 경영을 추진하는 부서와 사업 전략을 담당하는 부서가 유기적으로 연계하거나 협업하지 않고 동떨어져 있다.

기업에서 ESG 경영이 지속적으로 실천되지 못한 채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으려면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이사회에서 ESG를 정기적으로 논의하고 전담 부서를 배치해 목표 이행 단계별 진행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이제 ESG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생기를 얻는 듯하다. 사회는 ESG를 단일 의미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기업은 ESG 요소가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 가치가 부각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시대가 기업에 ESG를 요구하고 있으니 이제 기업은 ESG를 반영한 경영 문화 장착으로 응답할 차례다.

박세연 에코앤파트너스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