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기후정상회의에서 석탄발전 수출 금융 중단 선언
탄소 배출 1위 중국은 기존 NDC 방침 반복
한국은 감축 목표 추가 상향…과속 부작용 우려

[비즈니스 포커스]
포스코에너지와 두산중공업 등이 출자한 삼척블루파워가 강원도 삼척시 맹방 해변 인근에 건설 중인 삼척화력발전소 /한국경제신문
포스코에너지와 두산중공업 등이 출자한 삼척블루파워가 강원도 삼척시 맹방 해변 인근에 건설 중인 삼척화력발전소 /한국경제신문
정부가 4월 22일 열린 세계 기후정상회의에서 신규 해외 석탄 발전 사업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 중단을 선언하면서 한국수출입은행·KDB산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국책 금융회사가 해외 석탄 화력 발전 사업에 지원하던 저금리 대출 등 금융 지원이 신규 사업부터 중단된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이어 탈석탄 속도전까지 이어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던 발전업계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탈석탄화가 본격화한 만큼 정부는 국내 관련 산업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 7월 더불어민주당이 국책 금융회사의 해외 석탄 발전 투자를 금지하는 법안(해외 석탄 발전 금지 4법)을 발의한 데 이어 한국전력공사(한국전력)도 지난해 10월 신규 해외 석탄 화력 발전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통상 한국전력·삼성물산·두산중공업·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이 ‘팀 코리아’로 참여해 해외 석탄 발전 수출 사업을 해 온 만큼 공적 금융 지원이 중단된다면 사실상 해외 석탄 화력 발전 사업 수주는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전력이 진행 중인 인도네시아 자바 9·10호기, 베트남 붕앙2 사업이 마지막 해외 석탄 화력 발전 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인도네시아·베트남 사업은 상대국과의 신뢰 관계와 사업 진행 상황을 고려해 공적 지원 중단 방침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래픽=윤석표 기자
그래픽=윤석표 기자
탈원전 이어 탈석탄도 가속페달…벼랑 끝 업계
석탄 화력 발전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 중단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주요 20개국 협의체(G20)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총 41개국 중 11개국(영국·미국·독일·프랑스·캐나다·브라질·덴마크·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아이슬란드)은 해외 석탄 발전 공적 금융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또 세계은행·유럽투자은행·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 금융회사들도 석탄 발전 투자 중단을 발표했다. 민간 금융회사들에도 탈석탄 흐름이 확산되는 추세다. KB금융그룹은 지난해, 한화금융그룹은 올해 1월 석탄 발전 투자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업계도 이런 흐름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기존에 진행 중인 국내외 석탄 사업도 중단하라는 환경·시민 단체들의 요구다.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국내에서 신규 석탄 화력 발전 사업이 막힌 상태에서 수출이 유일한 먹거리였던 발전업계는 암울한 분위기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고 있지만 아직 안정적인 수익 사업으로 키우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존에 수주한 석탄 화력 발전 사업까지 막힌다면 그 자리는 기술력이 낮은 중국 기업들이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후정상회의에서 약속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추가 상향 방침도 산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유엔에 상향된 NDC를 제출할 계획이다. 업계는 탄소 중립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인 만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공감하지만 여전히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 지구적인 이슈인 탄소 중립은 모든 국가가 탄소 감축을 위해 협조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기후정상회의에서 탄소 배출 1위 국가인 중국과 3위인 인도는 새로운 감축안을 제시하지 않고 기존 방침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중국은 “2030년까지 중국의 탄소 배출량이 정점에 이르도록 한 뒤 점차 감소시켜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 G20 국가 중 유일하게 석탄 화력 발전량이 증가하고 있다.

에너지 및 기후 연구 단체 엠버(Ember)의 ‘2021 세계 전기 리뷰’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화력 발전의 53% 이상을 중국이 차지했고 같은 기간 중국이 새로 건설한 석탄 화력 발전 설비는 38.4GW로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건설 합계의 3배 이상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에서 탄소 배출 규모가 가장 큰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가운데 한국의 목표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한국보다 탄소 중립 정책을 먼저 시행해 온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은 탄소 중립 정책 과속에 따른 부작용 우려도 큰 실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논평에서 “기후정상회의에서 한국·미국·중국 등 각국 정상들이 탄소 감축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다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큰 방향에서 공감한다”면서도 “한국은 주요국보다 생산과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경제 활력과 일자리 창출에 큰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탄소 중립은 기업의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 중인 기업 684곳(응답 기업 403곳)을 대상으로 ‘2050 탄소 중립 대응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57.3%가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라고 평가한 반면 42.7%의 기업은 “현실적으로 탄소 중립은 어렵다”고 응답했다.
농촌 마을에 대규모로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 환경과 자연 경관을 훼손하고 있는 모습 /한국경제신문
농촌 마을에 대규모로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 환경과 자연 경관을 훼손하고 있는 모습 /한국경제신문
신재생에너지도 민원에 좌초 우려
발전업계가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는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도 건립이 쉽지 않다. 지역 주민과 환경 단체의 반대에 부딪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은 지리적인 한계 때문에 지금도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를 늘리기에 한계가 있다. 한국은 협소한 국토,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 고립된 전력망 등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탈원전 정책으로 고급 인력 유출, 전력 요금 상승, 전력 수급 차질, 산림 훼손, 환경 오염 등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해외 석탄 발전 공적 금융 지원 중단에 따라 축소될 수 있는 석탄 산업의 대체 유망 분야 사업으로 전환하면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각종 실증 사업을 실행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애로 사항이 쏟아지고 있다. 원전을 지어 만들 수 있는 에너지와 똑같은 양을 신재생에너지로 만들려면 대량으로 풍력 발전기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만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규모의 부지를 찾기가 어렵다.

기존에 진행 중이던 석탄 화력 발전 사업도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일부 지역 주민과 환경 단체의 반대, ESG 투자 트렌드에 따라 금융권의 탈석탄 선언이 확산하면서 포스코에너지가 강원 삼척에 건설 중인 삼척블루파워 삼척화력발전소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공사가 수개월째 중단됐다.

삼척화력발전소는 2018년 1월 인가를 받고 2020년 12월 정부의 제9차 전력 수립 기본 계획에 포함된 한국의 마지막 신규 석탄 화력 발전소다. 총 4조900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 중 약 1조원이 조달되지 않은 채 2020년 10월 공사를 시작해 3회에 걸쳐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향후 3년간 8000억원 상당의 회사채를 추가 발행할 계획이다.

환경 단체들은 자산 운용사와 자산 운용사에 자금을 제공하는 보험사·연기금 등 금융권을 전방위로 압박하며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인수 중단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후솔루션·녹색연합 등 24개 환경 단체의 탈석탄 캠페인 네트워크인 ‘석탄을 넘어서’에 따르면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인수 거부 의사를 밝힌 자산 운용사는 4월 20일 기준 총 22개에 달한다. 투자 의사가 없다고 밝힌 자산 운용사는 한화자산운용·KB자산운용·교보AXA자산운용·키움투자자산운용 등이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지만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전문가는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관련 기업들이 벼랑 끝에 몰렸는데 퇴로를 마련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있다”며 “한국은 국토가 좁아 만들 수 있는 에너지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기술력을 증명할 만한 트랙 레코드를 쌓기도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