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애셋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바라본 비트코인의 역할

[비트코인 A to Z]
알트코인 ‘묻지 마 투자’, 위태로운 투기[비트코인 A to Z]
가상 자산 열풍이 뜨겁다. 한국 가상 자산 거래소의 일 거래 대금이 10조원을 넘어서며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수준의 거래 대금에 육박하고 있다. 매수세가 거세짐에 따라 ‘김치 프리미엄 (해외 가상 자산 시세 대비 한국에서 높게 거래되는 현상)’이 부활했고 가상 자산 투자 관련 서비스는 한국 모바일 앱스토어 상위권을 점령했다. 부동산 ‘영끌’ 기회를 박탈 당하거나 막차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2030세대들이 주식에서 눈을 돌려 가상 자산 재테크에 골몰하고 있다.

필자는 가상 자산 시장이 모처럼 활황을 맞은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몹시 우려된다. 왜냐하면 한국 시장 참여자들의 행태가 ‘투자’보다 ‘투기’가 주를 이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에 수요가 집중된 글로벌 트렌드와 달리 한국에서는 알트코인에 대한 인기가 유독 높은데, 이는 주로 높은 가격 변동성에 기인한다.

가상 자산 시가 총액에서 55% 정도를 차지하고 가장 오래된 역사와 가장 방대한 네트워크 효과를 자랑하는 비트코인조차 위험 자산으로 분류돼 내재 가치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데 이보다 훨씬 위험한 알트코인을 공격적으로 매집하는 개인 투자자들을 보면 무척 위태로워 보인다. 한국에는 아직 가상 자산 투자자 보호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우려되는 요인 중 하나다.

알트코인 투자에 열 올리는 한국

현재 글로벌 가상 자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시장의 크기, 시장 참여자의 면모와 규제·혁신성·투자 수요 등의 측면에서 전혀 다르다. 특히 작년 하반기 들어 기관투자가들의 공격적인 매수세가 돋보이는데 그들이 투자하는 가상 자산은 대체로 비트코인에 한정돼 있다. 물론 이더리움 역시 스마트 콘트랙트·디앱 등 비트코인이 지니지 못한 기술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높은 잠재력을 인정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이더리움에 대한 투자 수요는 비트코인만큼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가상 자산 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의 전체 운용 자산 규모를 보면 비트코인 상품인 비트코인 신탁(GBTC)이 전체의 85~90%를 차지한다.

미국의 기관투자가들은 법인과 금융 투자업자로 구성돼 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과 같은 신기술에 전향적인 테슬라·스퀘어·마이크로스트래티지 같은 정보기술(IT) 회사뿐만 아니라 블랙록·피델리티·매스뮤추얼 같은 자산 운용사와 보험사도 비트코인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와 같은 월가의 대표 금융사들도 고액 자산가들에게 비트코인 관련 투자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해 화제였다.

단기적인 투기성 매매에 집중하는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과 달리 보수적인 자산 운용사나 보험사들은 매크로 투자 환경을 고려해 중·장기적인 자산 배분 관점에서 비트코인에 주목한다. 주식·채권·부동산·사모펀드·기타 대체 자산으로 이뤄진 멀티애셋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포함시켰을 때 효과를 검토하는 것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금융사가 비트코인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비트코인이라는 신규 자산과 이를 뒷받침하는 블록체인에 대한 임직원들의 심도 있는 이해뿐만 아니라 리스크 요인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투자승인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다.

복수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다른 자산군과의 가격 상관 계수가 낮다. 쉽게 말해 멀티애셋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편입했을 때 리스크를 낮추고 기대 수익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금융사들이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다.

한화자산운용과 크로스앵글이 지난 2월 공동 발간한 디지털 자산 보고서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 된다면?’에도 관련 내용이 소개돼 있다. 참고로 한화자산운용과 크로스앵글은 이 주제 외에도 매달 말 디지털 자산 보고서를 발간하며 투기를 근절하고 건전한 투자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화자산운용 유튜브와 크로스앵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알트코인 ‘묻지 마 투자’, 위태로운 투기[비트코인 A to Z]
최근 들어 전통 금융 투자업계에서 멀티애셋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비트코인 투자를 분석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전통 자산 운용사 로베코의 멀티애셋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디지털 금 비트코인–멀티애셋의 관점’이라는 투자 전망 게시물을 게재했다. 본 내용에서 흥미로운 문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 내용은 회사의 공식 의견과 필자 개인의 의견이 아니다.

“최근 몇 달 동안 명백하고 확실한 내러티브는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의 형태로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비트코인을 달러가 아닌 금의 필수적인 대체재로 언급한 바 있다. 금과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은 희소하고 내구성이 있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쉽게 거래할 수 있고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며 높은 운반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금과 비교하면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식된 기간이 길지 않다.”

“가치를 저장하는 디지털 금으로서의 잠재력을 고려하면 로베코는 비트코인을 자산군으로 고려한다. 물론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상 비트코인의 모든 특성은 전통적인 자산군과는 전혀 다르다.”

“변동성이 너무 극단적이다. 비트코인의 가중 평균 연간 변동성은 114%로 주식이나 금보다 거의 10배 수준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샤프지수는 다른 자산군 대비 유의미하게 큰 수준이다. 또한 비트코인과 다른 자산군과의 상관 계수는 거의 0에 가깝다. 즉, 상당한 분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미래 수익률을 현실적인 추정치로 환산해 보면 로베코는 향후 5~10년 내 비트코인의 시가 총액이 3조 달러(산업용 및 귀금속 수요를 제외한 투자용 목적 혹은 금융 시장과 연계된 금의 가치)에 다다를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것은 12~25% 수준의 연간 수익률을 의미한다.”


상승장에서 위험 관리 투자해야

투자 전망 게시물 말미에 로베코의 멀티애셋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1% 수준을 비트코인에 할당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1000억원 규모의 멀티애셋 펀드를 운용한다면 10억원 정도를 비트코인에 할당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테슬라와 스퀘어는 각각 회사 현금성 자산의 약 8%, 5% 수준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이들은 비트코인을 단순히 재무적 투자 관점이 아니라 회사 비즈니스 확장을 위한 전략적 투자처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전향적인 기관투자가들도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한 자릿수 내외로만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다. 비트코인 투자를 위해 과도한 레버리지를 쓰거나 혹은 비트코인보다 더 위험한 알트코인에 묻지 마 투기를 하는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위와 같은 사례를 참고하고 스스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좋을 때는 모두가 환희에 빠져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시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면 누가 위험 관리를 잘하고 지속 가능한 투자를 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천재는 당신이 아니라 상승장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디지털 자산팀 팀장,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본 기고는 회사의 공식 의견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