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문’은 뒤로 한 채, ‘고시 합격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학교

- 고시반에 대해 ‘과한 혜택이다’ VS ‘필수적인 지원이다’ 우열반 논란 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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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과대학 건물에는 매년 플래카드가 휘날린다. ‘로스쿨 합격자 00명 쾌거’·‘임용고시 합격자 00명 배출’ 등. 학내에 위치한 게시판 곳곳에는 ‘고시반 모집’ 포스터와 함께 각종 혜택이 나열되어 있다. 인터넷 강의 지원·고시반 전용 열람실 제공·기숙사 우선 배치까지. ‘고시’라는 말 그대로 출세를 위한 ‘높은 시험’에 학생들을 합격시키기 위한 대학교의 지원공세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플래카드를 가만 올려다보니 오싹 소름이 돋는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헬조선의 대학교에서 학문은 무슨. 취업학원으로 간판 바꿔라”는 댓글이 귓가에 윙윙거린다.



대학가 고시반 열풍의 시작

지난 2014년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기홍 의원이 공개한 ‘2013년 대학 고시반·자격증반 운영 현황’에 의하면 대학교 고시반은 전국 48개 대학에서 총 225개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48억 원의 예산이 투자되었고, 7,832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고시반에 속해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대학교를 생각하면, 더 많은 대학에서 고시반을 운영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들의 고시반 열풍은 ‘고시 합격생의 수가 대학서열’이 되는 현실에서 시작됐다. 매년 대학의 각종 고시 합격자 수는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간에는 “대학교 문과 서열=고시 합격자 수”라는 우스갯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기도 한다. 이에 따라 학교는 학생들의 요구와 학교의 서열을 높이기 위해 매년 많은 예산이 고시반에 배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대학교가 고시반 운영에 책정하고 있는 예산이다. 동영상 강의, 장학금 등의 혜택으로 학생들에게 사용된다.

(자료 출처: 유기홍의원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고시반의 현실

앞서 언급한 ‘2013년 대학 고시반·자격증반 운영 현황’에 따르면 학교의 1년 예산 중 적게는 320만 원(아주대)에서 많게는 1억 8000만 원(대구대)까지 고시반 운영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평균적으로 대학은 7800만 원을 고시반 운영에 사용하고 있으며, 고시반 학생 1인당 338만 원의 경제적 혜택이 주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지원 이외에도 ‘고시반 전용 열람실·인터넷 강의 지원·기숙사 우선 배정’ 등의 부가적 혜택을 제시하기도 한다.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1. 서강대학교 <토마스모어관>

지난 2012년 고시반 전용 건물 ‘토마스모어관’을 완공한 서강대학교는 총 7개의 고시반(CPA, 로스쿨, 행정고시, 외무고시, 사법고시, 변리사, 언론고시)을 운영 중이다. PSAT(공직적격성테스트, 1차 시험) 모의고사 성적과 한국사 자격증·TOEIC 점수를 합산하여 학기별로 입실 인원을 선발한다. 고시반 학생들은 고시 전용 학습동(토마스모어관)을 한 달에 1만 원 회비를 내면 24시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토마스모어관 내 열람실과 스터디룸에서는 수 십만원에 달하는 인터넷 강의도 지원받을 수 있다. 또한, 1차 합격자를 대상으로는 장학금 혜택까지 주어진다.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서강대학교 고시학습동 <토마스모어관> 열람실

(출처: 서강대학교 홍보팀)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서강대학교 고시학습동 <토마스모어관> 정보검색실

(출처: 서강대학교 홍보팀)



실제로 고시반에서 6개월간 생활했던 A씨는 고시생활의 장단점에 관해 묻는 질문에 “가장 좋았던 것은 인터넷 강의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따로 노량진이나 신림 고시촌에 나가지 않고, 학교 내에서 고시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 시간이 절약되는 점도 장점이다. 하지만 아침 9시에서 밤 10시까지 토마스모어관에만 있어야 한다. 유동적으로 일정을 관리할 수 없어서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서강대학교 <토마스모어관>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고시합격생을 배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362명의 합격생이 나왔다.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2. 이화여자대학교, <국가고시반>

2015년도 5급 공채(행정고시) 교육행정직 수석합격자 배출은 물론, 8명의 국가고시 합격자를 배출한 이화여자대학교는 96명 규모의 국가고시반을 운영하고 있다. 방학 중 모의 PSAT을 통해 선발하며, 선발된 학생은 1인 1석 지정좌석과 사물함이 제공되는 열람실과 자료실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동영상 강의 수강료를 지원받을 수 있고, PSAT관련 특강과 1:1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성적에 따라 고시·합격장려금을 통한 경제적 지원도 받는다.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고시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지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는 이화여대




실제로 작년 행정고시 수석합격자 김효라(경영학 전공)씨는 “국가고시반이 수험과정에 많은 도움이 됐다. 최종 면접을 위한 모의 면접 등 실질적인 도움도 주었으며, 면학 분위기가 잘 조성돼 있어 고시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휴학생 B씨는 “솔직히 말하면 학교에 다니면서 시험을 준비하기에는 아주 벅차다. 그래서 휴학을 하게 됐는데, 휴학생은 고시반에 지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3. 단국대학교

단국대학교는 총 125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5개의 고시반(사법고시, 공인회계사, 기술고시, 행정고시, 임용고시)을 현재 운영 중이다. 각 고시반마다 구체적인 선발절차는 다르지만 공통으로 해당 시험 모의고사와 공인영어성적을 기준으로 선발한다. 임용고시반인 진사관의 경우는 사범대학 5개 학과로 학과를 제한하고 있다. 선발된 이들에는 고시반 열람실을 제공하고 있으며, 기숙사도 타 학생보다 먼저 배치된다. 또한, 성적과 합격 여부에 따라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고시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는 단국대




“사범대학이 아닌 타 학과에서 교직 이수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교내 임용고시반에 들어가고 싶어 문의했더니, 사범대학이 아니라 지원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단지 학과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며 현재 임용고시 준비 중인 단국대학교 재학생 C씨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Mixture of rasterized vectored eps and photographic background. Group of runners with one individual clearly winning.
Mixture of rasterized vectored eps and photographic background. Group of runners with one individual clearly winning.


고시반=우열반? 과도한 혜택 몰아주기로 고시생·비고시생 차별 논란

올 7월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23억을 투자, 4층짜리 건물을 완공하여, 8월부터 학생들의 입주를 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이 건물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오직 ‘고시반 학생’만 사용할 수 있는 고시원동으로 증축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은 비단 서울과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2년 고시학습동 ‘토마스모어관’을 완공한 서강대학교도 같은 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처럼 대학교가 고시반을 신설하여 고시반 전용 공간 제공·장학금 수혜 등 일명 ‘혜택 몰아주기’를 시행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고시반 이외 학생들은 ‘대학교가 간판이 되어줄 고시생만을 우대한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고시가 아닌 일반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이와 같은 혜택을 받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고시반 운영은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 자리를 내어놓은 대학교, ‘고시학원의 탄생’


고시반 논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모든 고시생이 고시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 학교에서 재학생·특정학과 및 공인영어성적과 학점 등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이로 인해 고시반은 ‘우열반의 연장이 아니냐’ ‘취업학원과 고시반이 다른 이유가 있냐’ 등 비난의 목소리도 거세다. 이들은 학문과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투자하기보다 잘 하는 학생을 선별해 지원을 해주고 실적을 높이는 것은 대학 존재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학생들과 학교, 고시반과 비(非)고시반 학생들 사이의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생들에게 ‘고시만이 유일한 출셋길’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에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불안정한 고용시장과 정년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이 학생들을 고시로 내몰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는 학생들이 고시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 더욱 많은 선택권을 지닐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취업이 아닌 꿈을 그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학문과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수식어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연주 인턴기자 sta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