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고품격 와인 ‘베스트10’

인은 빈티지와 생산지, 수확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또 와인만큼 가격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명확한 상품도 드물다. 비싼 와인은 맛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한 병에 수만 달러를 호가하는 최고급 와인에 숨겨진 맛과 향은 그 만한 값을 하고도 남는다. MONEY는 독자들을 위해 세계 최고급 와인 ‘베스트 10’을 선정했다.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와인이다. 원래의 포도밭은 ‘라 로마네’라는 이름이었지만, 루이15세의 사촌인 콩티 공작이 그 일부를 소유하면서 포도밭 이름을 로마네 콩티로 바꿨다. 현재는 도맨 드 라 로마네 콩티(DRC) 회사가 포도밭 전부를 통째로 소유하고 있어 라벨에 모노폴(monopole)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피노 누아로만 만드는 로마네 콩티는 놀라울 정도로 집중된 과일향을 내뿜는 대단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 페트뤼스를 영어로 하면 피터, 한국말로는 베드로이다. 페트뤼스 라벨에는 베드로가 열쇠를 쥐고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천국의 열쇠다. 아마도 최고급 와인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보르도의 최고 와인 페트뤼스는 메를로 포도로만 만든다. 그렇다고 풍만하고 질감이 감미로운 메를로를 연상하면 안 된다. 농익기 전 적당한 때 수확한 페트뤼스의 메를로는 강한 탄닌과 미네랄 성분이 충만해 간결하면서도 집중도가 확실한 와인으로 탄생한다. 철분이 풍부한 진흙 토양에서 메를로는 개성 강한 또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페트뤼스와 자웅을 겨루는 와인이 바로 르팽이다. 페트뤼스가 남성적이라면, 르팽은 여성적인 와인이다. 같은 메를로로 만들었는 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은 오직 포도밭의 차이에 있다. 소박한 이층집 앞 소나무를 보고 이름을 그저 르팽(le Pin, 영어로 pine: 소나무)이라 지었다. 집 주변에 있는 손바닥만한 포도밭에서 메를로를 키우는 자크 티엔퐁의 자연스러운 솜씨가 지하실에서 명품을 만들어냈다. 코딱지만한 지하실에서 만든 르팽은 개러지 와인(garage wine:일명 창고 와인)의 효시다. 메독하면 으레 멋들어진 샤토(성채)를 연상한다. 샤토 라투르 역시 건물이 멋지지만, 물 탑으로 더 유명하다. 육중한 물 탑은 거대한 석탑처럼 멀리서도 샤토 라투르임을 식별하게 한다. 메독의 여러 특급 와인 중에서도 라투르는 석탑처럼 우뚝 서있다. 숙성력이며, 넘치는 힘과 탄력이 다른 와인들보다 두드러진다. 지롱드 강 건너 샤토 오존이 최근 5년간 최고의 메를로 와인이라면, 샤토 라투르는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나라 와인 경매에서 최고가는 샤토 라투르 1961년산이 기록한 560만 원이다. 퇴임하는 리슐리외 지엔 지사의 얼굴이 동안인 것을 확인하고 감탄한 루이 15세는 젊음의 비결이 샤토 라피트를 오랫동안 즐긴 이유라는 말에 단번에 궁궐 와인으로 채택했다. 1868년 유대계 로쉴드 집안에서 샤토를 구입해 이름을 샤토 라피트 로쉴드로 개명했다. 라피트 로쉴드의 매력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맛의 균형에 있다. 탄닌 방향 질감 여운 등이 동시에 자연스럽게 입안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샤토 라피트 1787년산은 와인경매 역사상 최고가의 기록을 세웠다. 한 병에 무려 1만4500파운드(2520만 원). 1985년에 세워진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 토머스 제퍼슨 미국 대통령은 프랑스 대사 시절 오브리옹의 맛에 반해 샤토를 들락거렸다는 일화가 있다. 보르도 남쪽에 있는 페삭-레오냥 마을에 있는 오브리옹이 메독 지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메독 와인의 등급 분류에서 1등급으로 뽑힌 것은 이러한 역사적인 일화가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마을이 속한 지역인 그라브 와인 등급에서 1등급, 메독 와인 등급에서도 1등급을 받은 오브리옹은 보르도에서 가장 유서 깊은 특급 와인이다. 샤토 디켐이 없었더라면 청포도의 일종인 세미용의 매력과 숙성력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었을까. 1811년산 디켐은 지금도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다고 전 샤토 디켐 오너였던 알렉산드르 씨가 귀띔한다.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 4년 전부터 샤토 디켐을 운영해 오던 그의 집안은 최근 루이뷔통 그룹과 돈의 전쟁을 벌인 끝에 지고 말았다. 벌꿀향이 넘실거리는 톡 쏘는 듯한 디켐의 향취는 삼키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간판 와인이다. 아니 이탈리아의 간판 와인이다. 1888년 빈티지는 여전히 기력이 남아 있다고 여러 전문가들이 평가한다. 토스카나의 몬탈치노 마을에서 재배하는 브루넬로는 산지오베제의 변종이다. 하지만 그 숙성력과 질감은 보통의 산지오베제와는 영 딴판이다. 브루넬로 재배법을 독점하지 않고 마을 생산자 모두에게 공개해 지금은 몬탈치노가 브루넬로로 가득 차 있다. 미국 와인에도 투자하느냐고 물으면, ‘스크리밍 이글을 아시나요.’라고 묻고 싶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농익은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미국 최고의 와인, 스크리밍 이글은 뉴욕 경매에서 평균 2000달러를 웃도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보르도의 작은 마을 포므롤에는 페트뤼스와 르팽 말고도 명품 와인이 하나 더 있다. 샤토 라플레르다. 기노도 부부와 6명으로 이뤄진 팀이 일년 내내 포도밭을 샅샅이 훑어 마치 손바닥 보듯 포도밭을 돌본다. 한 그루에서 한두 송이만 남기고 모조리 솎아내 튼실한 포도로만 담근 라플레르는 비단 같은 질감에 이국적인 향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