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주)두산 회장

편집자 주: 기업의 CEO(최고경영자)들에게는 막대한 권한과 함께 무한한 책임이 따른다. 때로는 CEO의 순간적인 판단이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긴장할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CEO도 회사를 벗어나서는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아니,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야 삶의 균형(Life Balance)을 유지할 수 있고, 다시 업무에 임할 때 새로운 긴장감을 견뎌낼 수 있다. CEO들에게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일에 매달리는 시간이 많기로 소문난 한국의 CEO들. 그들은 어떻게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직접 만나 들어보는 코너를 연재한다.국 최고의 M&A(인수·합병) 전략가.’ 국내 재계나 금융계 인사에게 “박용만 (주)두산 회장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평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박 회장은 지난 10여 년간 두산그룹이 성사시킨 국내외 M&A를 진두지휘한 주역이다. ‘기업 최후의 전쟁’이라고 일컫는 M&A를 지휘해야 하는 역할인 만큼 비정하다할 정도의 냉철함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박 회장의 학창시절 꿈은 사진작가였다고 한다. 비록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도 사진은 그가 젊은 날의 순수성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는 삶의 또 다른 동반자다. “사진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말하는 박 회장을 만나 사진과 얽힌 그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직접적인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소풍 때 사진경연 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였죠. 돌아가신 아버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셔서 집에 리플렉스 리코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그걸 갖고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가작으로 뽑혔어요. 그 때 찍은 사진은 어느 꼬마가 엿을 바꿔먹으려고 병을 주워 철조망을 넘는 장면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뜻밖에 상을 받고 나니 사진이 굉장히 매력적이더군요. 그 후 그 카메라를 들고 몇 번 사진을 찍으러 다녔더니 아버님께서 일본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를 사다 주셨습니다. 워낙 보수적인 분이었던지라 내겐 그게 대단한 사건이었죠. 그 사진기로 집안 식구들을 찍곤 했습니다. 대학 졸업할 무렵까지는 주로 주변 사람을 찍다가 유학을 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인물이 아닌 다른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카메라는 무지하게 많죠. 그런데 필름 카메라는 이제 보관용 장식장에 넣어놓고 안 씁니다. 다만 라이카만은 꺼내서 가끔 만지죠. 워낙 좋아했던 카메라여서…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만 찍는데 새 기종이 나올 때마다 사들입니다. 디카는 매번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성능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죠. 요즘 제일 많이 쓰는 건 캐논5D마크2, 라이카M8 이 두 가지고요.”“글쎄...억대까지는 안 될 것 같고, 기 천만원대는 되겠죠. 주로 300만∼400만 원대 제품을 샀으니까.(사진기자가 들고 있는 캐논1DS 마크2 카메라를 가리키며) 허리가 좋지 않아 그렇게 무거운 건 못써요. 옛날에 필름카메라는 많이 사지 않았어요. 그 때는 니콘 카메라, 롤라이플렉스, 라이카 M6, R6 이런 것 같고 10년을 썼죠.”“본격적으로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찍은 사진은 서정적인 랜드스케이프(풍경)였어요. 그러다가 점차 다큐멘터리 쪽으로 갔습니다. 1988년쯤인가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인 강은구 선생님을 알게 돼 친해지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에 몰입하게 된 거죠. 당시에는 토요일만 되면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한 7∼8년을 그렇게 했는데 3년 전에 그만뒀습니다.(벽에 걸어놓은 사진을 가리키며) 저게 초기에 찍은 사진입니다. 요르단에서 찍은 건데 폭포수가 쏟아지는 노천온천에서 남자들은 온천을 즐기고 있고 부인과 여자들은 멀리 떨어져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거죠. 저런 것만 찍었는데 3년 전쯤 갑자기 ‘이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시장통을 돌아다니고 판자촌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 것이 좀 위선적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다큐멘터리 사진을 취미로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해 그만 뒀습니다.”“지금 연강원(두산연수원)에 전시돼 있는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4장의 사진입니다. 모두 유럽에서 찍은 사진인데 봄은 베니스에서 한 남자가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여름은 파리에서 두 커플이 앉아있는 모습을, 가을은 뮌헨에서 낙엽이 쌓인 길을 어느 수녀가 혼자서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을 담았죠. 겨울도 뮌헨 근처인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광장 한복판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요즘은 거의 못 찍어요. 똑딱이 카메라 들고 다니면서 스냅이나 찍는 정도죠.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절대적인 시간이 없는 것도 있지만 사람이 메말라져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있어도 어디에 대고 찍어야할 지 막막할 때가 많아요.”“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계를 넘어서니까 그렇게 못하게 되더라고요. 사진에 할애하는 시간이 오히려 내 휴식을 모자라게 하는 정도까지 가니까 힘들어졌죠. 벌써 2년째 휴가를 못 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카메라는 버릇처럼 늘 갖고 다니죠. 가방에 두 개쯤은 꼭 들어있습니다."“(문 옆에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저기 보이는 사진입니다. 앨범 제목이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인데 양희은 씨가 군사정부 시절에 자기 노래의 저작권을 빼앗겼다가 소송을 해서 저작권을 되찾고 데뷔 35주년 기념으로 낸 앨범이죠. 양 씨가 자켓용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기에 흔쾌히 쓰시라고 했어요.”“평소 양희은 씨의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중간에 아는 사람을 통해 만나자고 부탁했어요. 처음에는 양 씨가 ‘내가 왜 그런 사람을 만나니?’하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더군요. 그 후 거의 1년을 졸라 겨우 만났어요. 약속 장소에 나가 ‘제가 아무개입니다’하고 인사했더니 대뜸 ‘생각보다 젊네’ 하셔서 그 자리에서 나이 얘기하고 누나 동생으로 친해졌죠.”“물론이죠. 강은구 선생님 작품은 여러 개 샀습니다.(사무실 한쪽에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저건 강영길 씨라고 젊은 작가분의 사진입니다. 그러나 많이 사는 편은 아닙니다.”“국내작가는 강은구 정범태, 외국작가는 스티브 맥커리, 브루노 바비 등입니다. 모두 다큐멘터리 작가들이죠. 어렸을 때 내 꿈은 보도사진 작가였어요. 지금도 집에 가보면 거실 한 면이 보도사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파리 떼가 붙어있는 소말리아 어린이 사진, 피 흘리는 시체 사진 등이어서 집사람이 좋아하지 않죠. 요즘 스티브 맥커리, 브루노 바비의 사진을 보면 다큐멘터리 쪽이면서도 컬러 또는 비주얼적인 아름다움에도 많이 치중해 있는데 그런 사진을 좋아합니다.”“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사회나 나를 둘러싼 환경을 보는 시각이 아무래도 달라질 수밖에 없죠. 예전에 내가 쓰던 사무실은 소공동 롯데호텔 앞 21층에 있었는데 거기서 창밖을 보면 우리 사회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사회 같아요. 여기저기 고층 빌딩이 들어서 있고 길거리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돌아다니죠. 1999년에 지금 사무실(동대문 두산타워빌딩)로 이사 왔는데 여기서 내려다보면 주로 다세대 주택이 많이 보입니다. 대략 국민소득 6000∼7000달러 사회 같죠. 사실 이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안정된 계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난 2006년에는 주말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으며 국토종단을 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구석구석을 렌즈로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논쟁에 대한 시각 자체가 바뀌게 되는 것 같습니다.”“음악 듣는 걸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장르는 다양해요. 클래식을 많이 듣지만 헤비메탈도 듣고 일렉트로닉 댄스뮤직도 즐겨듣죠. 그런데 헤비메탈은 요즘 줄였어요. 성당 신부님께서 ‘아웃풋을 매니지먼트하지 말고 인풋부터 매니지먼트하라’는 충고를 하셔서 음악 중에 헤비메탈이나 갱스터 랩은 지워버렸습니다. 영화도 좋아하는데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건 안 보죠. 그동안 영화 DVD를 수집했는데 얼마 전에 요즘도 즐겨보는 영화 몇 편을 빼고 모두 중앙대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일만 하는 게 좋은 게 아니다. 휴일과 휴가를 찾아서 써라...’이런 얘기는 늘 하죠. 하지만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가 참 힘든 사회라는 점입니다. 우리 두산의 임직원이 3만7000여 명인데 이 중 외국인이 42%나 됩니다. 그런데 국내에 있는 중역이 해외근무 나가면 삶의 질이 달라져요. 저만해도 그렇습니다. 여기 있다가 미국이나 유럽에 가 있으면 시간의 안배가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집니다. 결국 한국 사회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 단순히 개인의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입니다. 네트워킹이나 사회화에 따른 여러 문제들이 있죠. 참 안타깝습니다.”“소통의 수단입니다. 모든 사람이 저를 기업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죠. 우리 직원들도 저를 보면 결재 받을 생각만 합니다. 그러나 제 속에는 그것 외에도 사랑 우정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름다움, 정서, 희로애락 등 이런 것들에 대한 소통의 수단이 저 같은 입장이 되면 점점 더 줄어들게 됩니다. 그런 소통의 수단에서 남아 있는 것 중에 상당히 효과적인 게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저녁에 차를 타고 가다보면 차 창문에 빗방울이 맺히죠. 그 빗방울에 초점을 맞춰서 보면 빗방울 뒤로 지나가는 풍경이 그렇게 컬러풀할 수 없어요. 제가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면 사람들은 참 멋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말로 ‘빗방울에 비친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저만큼 공감하지는 못하겠죠.”1. 봄2. 여름3. 가을4. 겨울정리 김태완·사진 이승재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