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발표된 노벨평화상이 유럽연합(EU)에 돌아가면서 세계의 관심은 다시 한 번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쏠렸다. 인구 100만 남짓의 이 작은 도시에 EU 본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곳이지만 여기에는 EU 말고도 유명한 것들이 여럿 있다. 독일의 명성을 위협하는 맥주, 수백 년 전통의 초콜릿, ‘스머프’와 ‘땡땡’으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까지. 이번에는 ‘유럽의 수도’ 벨기에를 찾았다.
[The Explorer] Brussels 맥주와 초콜릿, 유럽의 수도 브뤼셀
착륙하는 비행기 창 밖으로 건물보다 논밭이 더 많이 보인다. 기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지만 야트막한 건물에 아담한 분위기.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국의 수도라 하기엔, 더구나 ‘유럽의 수도’라 부르기에는 좀 민망한(?) 수준이다.

그 옛날 교과서에서, 요즘도 가끔은 신문에서 만나는 ‘베네룩스 3국’ 중 가장 앞에 나오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받은 첫인상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하긴 이곳에 사는 인구를 몽땅 합쳐도 100만이 갓 넘는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도시에 국제기구 본부만 해도 여럿이다. EU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관세기구(WCO) 등이 있으니 유럽의 정치, 군사, 경제의 중심지, 그러니까 유럽의 수도란 명칭이 가장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실제로 EU에는 공식적인 수도가 없다).
‘유럽의 수도’, 아니. 한 국가의 수도라 부르기에도 좀 민망한 브뤼셀의 소박한 시내 풍경. 유럽연합 본부와 같은 대형 건물들은 외곽에 자리 잡았다.
‘유럽의 수도’, 아니. 한 국가의 수도라 부르기에도 좀 민망한 브뤼셀의 소박한 시내 풍경. 유럽연합 본부와 같은 대형 건물들은 외곽에 자리 잡았다.
물론 브뤼셀이 처음부터 유럽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로마의 정복’으로 역사가 시작된 벨기에는 프랑크 왕국과 합스부르크,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지배를 받다가 1831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독립국이 된다.

그리고 역시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식민지 경쟁에 나서 이미 영국과 프랑스가 대부분 갈라먹은 아프리카 땅에서 겨우(?) 콩고 하나를 건졌다. 그리고 어찌나 혹독하게 착취를 했는지, 수백 만의 식민지 사람들이 죽어간 벨기에의 식민 지배를 역사학자들은 ‘통치’가 아닌 ‘테러’란 이름으로 부른다.

이를 통해 나름 부를 쌓았다고는 하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가 지지 않는 식민지를 확보한 런던이나 파리와 견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브뤼셀이 쟁쟁한 도시들을 제치고 ‘유럽의 수도’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도시처럼 쟁쟁하지 않았다는 사실 덕분이었다.

유럽 강대국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지대이자 유럽 교통의 중심지인 브뤼셀에 EU의 주요 기구들을 설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브뤼셀은 파리와 런던,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2시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3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하나 둘 들어선 EU 기관들에 관련된 인력만 2만여 명. EU는 브뤼셀에서 가장 큰 ‘산업’이 됐고 다시 이 산업은 브뤼셀을 명실상부한 유럽의 수도로 만들었다.
광장의 마차. 조랑말이 인상적이다.
광장의 마차. 조랑말이 인상적이다.
브뤼셀의 중앙 광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자 ‘화려한 극장’이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브뤼셀의 중앙 광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자 ‘화려한 극장’이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세인트 미셸 구들라 성당’의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 보고만 있어도 감미로운 오르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인트 미셸 구들라 성당’의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 보고만 있어도 감미로운 오르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브뤼셀에선 동화속 성도 만날 수 있다.
브뤼셀에선 동화속 성도 만날 수 있다.
시청사 왼쪽에 있는 ‘순교자의 동상’을 만지면 다시 한 번 브뤼셀을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청사 왼쪽에 있는 ‘순교자의 동상’을 만지면 다시 한 번 브뤼셀을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벨기에의 루브르’에서 만난 ‘마라의 죽음’

유럽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브뤼셀 여행 또한 중앙역 근처의 중앙 광장(grand place)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중앙 광장은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아름답다.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말했고, 극작가 장 콕토는 ‘화려한 극장’이라 불렀으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냥 한눈에 런던이나 파리, 베를린의 어떤 광장보다도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다.
고딕 양식의 70m짜리 첨탑이 돋보이는 ‘세인트 미셸 구들라 성당’
고딕 양식의 70m짜리 첨탑이 돋보이는 ‘세인트 미셸 구들라 성당’
수백 년 전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 곳곳에 숨어 있는 조각과 그림들,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는 즐기는 사람들. 밤이 되면 펼쳐지는 동화 같은 야경은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에 필적할 만하다.

이곳에는 200년 가까이 됐다는 초콜릿 가게와 ‘사탕 팬티’ 같은 재미난 사탕이 있는 사탕 가게, 줄잡아 봐도 수백 종의 맥주를 파는 맥주 전문점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그중에서도 초콜릿은 수많은 여행자들을 벨기에로 끌어들이는 1등 공신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초콜릿 양은 연간 14만 톤, 국민 1인당 소비량도 8kg에 이른단다. 거리마다 줄지어선 초콜릿 가게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빈다.

초콜릿만큼이나 관광객들의 발길을 끄는 것은 맥주다. 실제로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맛있는 벨기에 맥주를 맛보기 위해 브뤼셀을 찾는다고. 인구 1000만 명 남짓의 이 작은 나라에서 생산하는 맥주는 1000여 종이 넘고, 맥주 전문 사이트와 잡지들이 선정하는 맥주 랭킹 10위 안에 늘 3~4종 이상의 벨기에 맥주가 포함된단다.

우리도 중앙 광장의 노천카페에 앉자마자 다른 사람들처럼 맥주를 주문했다. 이곳에서는 낮에 맥주를 마시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이곳 사람들은 아침부터 맥주를 마신다고 한다. 물론 도수가 좀 낮은 것으로 말이다.

인구 1000만의 나라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 종류만 1000종이 넘는다.
인구 1000만의 나라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 종류만 1000종이 넘는다.
‘크리크 비어(Kriek Beer)’로 불리는 체리 맥주가 나왔다. 선명한 붉은빛 액체 위에 얹힌 부드러운 거품. 체리주스보다 훨씬 강렬한 체리향이 은은한 취기와 함께 올라왔다. 세상에 이런 맥주가 있다니. 다음으로 맛본 알코올 함량 10%가 넘는 흑맥주는 걸쭉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정말 이곳은 맥주 천국이구나 싶었다.

입이 호강을 했으니 이제 눈에 양보할 차례. ‘벨기에의 루브르’로 불리는 왕립박물관을 찾았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미술품들을 루브르에 채우고, 그래도 남는 것들은 이곳에 보관했다고 한다(이때 벨기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갑자기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이곳의 미술품들은 그냥 눌러앉게 됐다고.
왕립미술관의 내부. ‘벨기에의 루브르’라 불리는 왕립미술관은 ‘유명 화가의 원본 작품’들로 가득하다.
왕립미술관의 내부. ‘벨기에의 루브르’라 불리는 왕립미술관은 ‘유명 화가의 원본 작품’들로 가득하다.
마라의 죽음
마라의 죽음
오줌싸개 동상
오줌싸개 동상
과연 나폴레옹이 총애했던 화가 다비드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라의 죽음’을 비롯해 루벤스와 브뤼겔 등의 작품들이 즐비했다. 샤갈과 쇠라, 그리고 벨기에를 대표하는 화가인 마그리트의 그림도 보였다. 사실 브뤼셀을 대표하는 작품은 17세기 초에 만들어져 지금도 브뤼셀의 최장수 시민이자 마스코트로 통하는 ‘오줌싸개 동상’이다. 하지만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 실제 동상 앞에 서면 헛웃음이 나오게 마련. 50cm를 조금 넘는 앙증맞은 아이가 좁은 길 귀퉁이에 볼품없이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브뤼셀의 진짜 작품을 보려면 당연히 왕립박물관을 방문해야 한다. 더불어 만화 ‘땡땡’과 ‘스머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화박물관을,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시청사를, 음악을 좋아한다면 악기박물관을 가보는 것도 좋다. 이 모든 볼거리들이 중앙 광장에서 도보로 30분 이내 거리에 모여 있다는 것도 브뤼셀 여행의 장점이다.

글·사진 구완회



Brussels info
How to Get There

아쉽게도 아직 인천국제공항에서 브뤼셀까지 직항은 없다. 유럽의 다른 도시(런던·파리·암스테르담 등)를 경유해야 한다. 유럽의 대형 항공사들(브리티시 에어·루프트한자·에어 프랑스 등)을 이용하면 된다. 런던을 경유한다면 인천에서 런던까지 11시간, 다시 런던에서 브뤼셀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참고로 런던에서 브뤼셀까지 고속열차(유로스타)를 이용하면 2시간 40분에 갈 수 있다.



Where to Stay

‘유럽의 수도’라는 별명답게 소피텔, 르 메르디앙, 로보텔 등 호텔 체인들이 들어와 있어 괜찮은 방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브뤼셀은 EU 본부를 비롯해 NATO, WCO 등 국제기구 본부들이 위치해 있어 각종 국제회의가 자주 열린다. 가능하면 이 기간을 피해 미리 숙소를 예약하는 것이 좋다.



Another Site

브뤼셀에서 기차로 1시간쯤 떨어진 곳에 ‘서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브뤼헤가 있다. 브뤼셀이 벨기에의 행정 수도라면 이곳은 ‘관광 수도’라 부를 만하다. 마치 동화 속 세계에 온 듯 아기자기한 집과 수로 사이로 중세풍의 건물들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