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가이=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의 공통점이 억만장자에 성공한 기업가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게걸스러울 정도로 책을 읽어대는 독서광인 탓에 책벌레(bookworm)라는 별명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부자들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꽂혀 있을까.
빌 게이츠의 블로그 ‘게이츠노트 (www.gatesnotes.com)’.
빌 게이츠의 블로그 ‘게이츠노트 (www.gatesnotes.com)’.
‘The great library contains the diary of the human race(훌륭한 서재는 인류의 일상을 품고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유명한 책방 스트랜드(Strand)의 서재 컬렉션(Library Collection) 서비스를 소개하는 글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신의 책 컬렉션을 의뢰하고 앤디 워홀, 톰 크루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딸과 함께 단골이라는 이 유서 깊은 책방이 최근 커스터마이즈드(customized) 서재 컬렉션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뉴욕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국, 중동의 부호들이 새로 구입한 뉴욕 초호화 아파트의 서재를 통째로 컬렉션해주는 서비스를 의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예술가들이 수만 달러의 예산을 주고 자신의 책방을 채울 수천 권의 책을 사들이기도 한다.
마크 저커버그가 만든 페이스북의 ‘책의 해’ 페이지.
마크 저커버그가 만든 페이스북의 ‘책의 해’ 페이지.
애서가인 리치가이들, 우연일까 필연일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어린 시절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고 말한 빌 게이츠는 대표적인 독서광이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인 게이츠 노트(Gates Note, www.gatesnotes.com)에 2010년부터 꾸준히 일주일에 한 편씩 책 리뷰를 올리고 있다. 그간 쌓인 독후감은 130여 편을 넘고 철학, 문학, 인문사회, 자연과학 등 그의 손에 잡히는 책의 분야도 방대하기 그지없다. 2014년 한 해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에 남은 베스트 북 리스트를 보면 토마 피게티의 ‘21세기 자본론’, 국내에는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경제 저널리스트인 조 스터드웰의 ‘아시아의 힘(How Asia works)’, 대럴 허프의 ‘새빨간 거짓말, 통계(How to lie with Statistics)’ 등이 포함됐다. 특히 이 책은 게이츠가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 ‘투자자들을 위한 좋은 책’으로 추천해 읽었다고 밝혔는데, 1954년에 처음 출간됐으나 전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추천 리스트 중 가장 주목받은 책은 존 브룩스 저자의 ‘경영 모험(Business Adventure)’. 1991년에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추천으로 읽은 이 책을 다시 꼽은 그는 ‘내가 읽어본 경영서 중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가 최고의 경영서로 꼽으며 빅 팬을 자처한 책, ‘경영 모험’.
워런 버핏, 빌 게이츠가 최고의 경영서로 꼽으며 빅 팬을 자처한 책, ‘경영 모험’.
빌 게이츠, 워런 버핏과 함께 고액자산가 기부 모임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의 회원인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또한 알아주는 책벌레다. 그는 2015년 들어서 페이스북에 ‘책의 해(A year of book)’ 페이지를 열어 페이스북 회원들에게 책 읽기를 독려하는 한편 온라인 독서 클럽을 만들어 회원들과 하나의 책을 선정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그리스로마 신화 책을 여러 번 탐독했고 프랑스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에 능통해 다양한 언어권의 책을 읽는 것이 취미. 애서가인 저커버그의 책 리스트에 중국에 관한 책이 늘었다. 중국계 미국인인 프리실라 챈과 결혼한 뒤 처가 식구들과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일까. 그의 집무실 책상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저서인 ‘중국 통치(The Governance of China)’가 놓여 있어 미국 서점가에서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스트랜드 서점. 뉴욕 자산가들의 서재를 맞춤 형식의 북 컬렉션으로 채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스트랜드 서점. 뉴욕 자산가들의 서재를 맞춤 형식의 북 컬렉션으로 채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한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은 자신의 강연 내용을 모아 ‘제로 투 원(Zero to One)’을 펴내 작가 직함을 추가하기도 했다. 그의 추천 도서 중에는 유토피아 사회를 꿈꾸는 영국 철학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 나노 기술이 세상을 움직이는 공상과학 소설인 닐 스티븐슨의 ‘다이아몬드 시대’가 들어 있다.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세계 갑부들의 서가에 오랜 시간 꽂힌 책들은 사업 구상을 위한 아이디어 뱅크가 되기도 하고, 가치 있는 사회 구현을 위한 출발점이 되곤 한다. ‘성공의 열쇠’라 꼽는 책 읽기가 자산가들의 비결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리치가이 중에 뇌섹남이 많은 이유도 여기서 연유한 것 아닐까.


기획 박진영 기자 | 글 이지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