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지향적 사업에 집중하는 구글·위챗 등 글로벌 기업 행보와는 대조적

[한경비즈니스=김태헌 기자] ‘메신저’ 카카오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가 2014년 ‘감청 논란’ 이후 최근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익을 더 내기 위해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스타트업과 소상공인들이 만들어 놓은 시장과 아이디어를 가로채고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 특히 스타트업과 소상공인들은 카카오의 공격적인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정책에 대해 내심 불편해하고 있다.

일부 스타트업 대표들은 카카오를 ‘약탈자’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르면 9월부터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을 바꿔 카카오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함에 따라 이 회사의 '문어발 확장'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벤처 신화이자 모바일 플랫폼의 절대 강자인 카카오가 어쩌다 스타트 업계의 ‘공적’이 됐을까.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지난 6월 2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포털 대기업 카카오는 소상공인 생존권 위협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지난 6월 2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포털 대기업 카카오는 소상공인 생존권 위협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수익 줄자 ‘문어발식’ 사업 확대 나서

스타트업 업계가 카카오를 의심에 눈초리로 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카카오택시’가 출시되면서 이들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됐다.

카카오택시 등장 당시 이미 국내 콜택시 시장에는 ‘리모택시’ 등이 시장을 개척해 가던 시기였다. 스타트업이 시장을 꾸리는 중이었지만 카카오는 카카오택시를 유료가 아닌 무료로 내놓았다. 4000만 명이 넘는 카카오톡 가입자를 기반으로 한 무료 O2O 서비스였기에 실험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용자들은 카카오택시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카카오택시로 자신감을 얻은 카카오는 고급 택시인 ‘카카오블랙택시’를 이번엔 유료 모델로 내놓았다. 이때부터 스타트업과 소상공인들은 카카오가 시장을 빼앗으려고 한다며 반발했다.

일부 모범택시 운전자들은 카카오에 손님을 빼앗긴다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모범택시는 요금이 비싸 승객이 한정돼 수요가 겹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O2O 사업에 한 번 시동을 건 카카오를 멈춰 세우진 못했다.

카카오는 이후 O2O 서비스 진출에 더욱 속력을 냈다. 대리운전 서비스인 ‘카카오드라이버’를 지난 5월 31일 출시했다. 대리운전협회는 카카오 판교 사옥 앞에서 사업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지만 사업은 결국 시작됐다. 카카오드라이버는 출시 이후 비싼 이용 요금과 대리운전사들에게 떼어가는 수수료가 높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홍역을 치르고 있다.
‘골목대장’ 카카오의 대기업식 ‘문어발 확장’ 가속되나
카카오는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초까지 카카오헤어샵(미용실 예약 서비스), 카카오홈클리닝(가사도우미 서비스), 카카오주차장(가칭, 주차장 예약 서비스), 카카오퀵(가칭, 퀵 배달 서비스), 카카오꽃배달(가칭, 꽃 배달 서비스) 등 여러 O2O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 중 일부는 사업 설명회까지 마치고 사실상 출시 절차에 들어갔다.

앞서 카카오는 금융과 모바일 결제 수단인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를 잇달아 출시하며 자사 서비스와 결제가 모두 카카오 플랫폼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에는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까지 출범시킬 예정이다.

카카오는 신규 사업을 위해 계열사를 꾸준히 늘려 올해 3월 말 기준 64개 계열사를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자산이 5조830억원으로 증가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준을 10조원으로 늘리기로 함에 따라 이르면 오는 9월 간신히 대기업 규제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카카오는 이미 사업 초기부터 무료 메신저로 이용자를 그러모은 뒤 수익 사업을 벌이겠다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공개해 왔다.

카카오는 이용자를 확보하자 줄곧 수익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곳은 게임·이모티콘·모바일 상품권 분야였다.

카카오는 이들 산업에서 그간 꾸준히 매출을 올렸지만 최근 성장세가 주춤거리고 있다. 게임사들이 높은 수수료 등을 이유로 입점을 기피하며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상품권에서는 기존 카카오에 입점했던 SK플래닛 등과 입점 철회를 두고 마찰도 빚기도 했다.

카카오는 신사업 진출 시 기존 업체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에 기업 인수에 상당한 자금을 쏟아붓는다.

지난해와 올해 초에는 차량 내비게이션 ‘김기사’를 운영 중이던 ‘록앤올’을 626억원에 인수했고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운영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를 1조8000억원에 사들였다. 이들 기업을 사들이면서 순이익이 그만큼 감소했다.

카카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50% 줄어든 886억원에 그쳤고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역시 210억90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7% 감소하며 반 토막 났다.

이 때문에 카카오가 게임 이외의 새로운 캐시카우를 찾기 위해 무분별하게 소상공인들의 밥그릇을 빼앗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카카오의 모바일 장악력이 세지면 독과점이 될 것이고 입점 비용 등을 올릴 것이 뻔하다”며 “생활 밀접 서비스인 헤어숍과 가사도우미 사업, 꽃 배달까지 진출할 예정이어서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카오는 이런 스타트업과 소상공인들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시장이 확대돼 더 많은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가 생활 밀착형 서비스에 진출함으로써 침체된 해당 산업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예를 들면 대리운전이나 가사도우미 종사자들의 처우가 좋아지고 질 높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산업이 커지면 해당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스타트업들에는 오히려 관련 산업에 대한 진출 기회가 늘어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카카오는 긍정적 시장 전망을 내놓았지만 카카오가 진출을 선언한 가사도우미 시장은 휘청거리고 있다. 이미 시장에는 대리주부, 아내의 휴일, 홈마스터 등 20여 개의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카카오와 경쟁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 애플리케이션에 투자를 검토했던 일부 벤처캐피털은 투자를 미루거나 재검토에 들어갔다.

실제로 한 가사도우미 관련 스타트업은 예정됐던 투자가 중단되며 폐업하기도 했다. 이는 가사도우미 산업뿐만이 아니다. 카카오택시보다 앞서 ‘콜택시’ 서비스를 내놓았던 ‘리모택시’도 카카오가 콜택시 업에 뛰어들며 투자 유치에 실패해 문을 닫았다.

또 카카오는 최근 주차장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주차장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 분야 역시 기존 3~4곳의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시장을 개척하고 있지만 일부 기업은 카카오의 진출 소식에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전국대리운전협회 소속 회원 70여 명이 서울 삼성동 로엔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지난 2월 22일 오후 “카카오의 대리운전업 진출은 거대 자본의 골목 상권 침해”라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대리운전협회 소속 회원 70여 명이 서울 삼성동 로엔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지난 2월 22일 오후 “카카오의 대리운전업 진출은 거대 자본의 골목 상권 침해”라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경쟁 없는 시장만 노린다”는 지적도

카카오가 O2O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늘려가고 있지만 대기업이 뛰어들었거나 미래 지향적 신산업에는 투자를 미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카카오가 최근 내놓고 있는 O2O 사업들은 대기업이 진출했거나 진출을 고려하는 분야는 없다”며 “카카오 역시 기업이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지거나 큰 경쟁 상대를 피하려는 것은 이해하지만 최근 행태는 스타트업이 일궈 놓은 시장만 노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카카오는 SK플래닛의 ‘시럽오더’와 유사한 모바일 선주문 서비스 ‘카카오오더’ 출시 계획을 세우고 시범 서비스를 진행하다가 사업을 중단했다.

카카오오더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커피숍에 직접 가지 않고 음료를 주문할 수 있는 사전 주문형 O2O 서비스다.

SK플래닛의 ‘시럽월렛’, 얍컴퍼니의 ‘얍’ 등과 비슷한 ‘카카오타임쿠폰’ 역시 시범 사업까지 갔지만 사업을 종료했다. 출시를 예정했던 사업을 중단했지만 카카오는 이에 대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또 카카오는 소셜 커머스 ‘카카오픽’을 정식 출시했다가 사업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미 쿠팡·위메프·티몬 등 기존 소셜 커머스 3사가 시장 영향력을 가졌고 지속 경쟁 시 출혈이 불가피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카카오가 자본력과 플랫폼 경쟁력을 통해 모바일 생태계 자체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미 카카오가 출시한 서비스는 기존 메신저와 포털에 더해 e북·음악·쇼핑·모바일상품권·O2O까지 더해져 스타트업의 진출 자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심지어 이미 수십 군데가 서비스하고 있는 버스와 지하철 애플리케이션까지 내놓았고 일부 사업은 진출했다가 몇 달 만에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카카오가 시장에 진출했다가 실패하면 그곳에 진출하려는 다른 스타트업들은 투자를 받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며 “카카오도 실패한 시장에서 스타트업이 어떻게 성공하겠느냐는 시각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은 생태계 키우는 데 주력

카카오 역시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 창출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카오가 진출하는 시장이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의 시장을 침해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카카오와 같은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장한 구글과 페이스북은 이미 글로벌 플랫폼과 이용자를 가졌지만 카카오처럼 무분별하게 확장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가상현실(VR) 서비스 등 미래 지향적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구글은 최근 이세돌 9단과의 경기를 통해 알려진 ‘알파고’ 등 인공지능(AI) 사업에 투자하고 있고 스타트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무인 자동차나 우주개발 등에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무료 인터넷’ 사업 등 공익 활동을 통해 생태계를 넓히거나 무인기·인공위성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중국의 ‘위챗’ 역시 중국 인구의 절반가량인 7억6000만 명이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지만 카카오처럼 위챗의 이용자 우위를 활용해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는 않다.

위챗은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공개해 스타트업들의 사업을 오히려 돕는다. 가령 주차장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위챗에 자사 서비스를 연동해 위챗 이용자들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지난 6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프라인과 달리 상생을 위한 법적·제도적 규제가 미비한 온라인에서 지금과 같은 포털의 행태는 골목 상권을 말살하고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헌 기자 k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