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는 다른 제품'에 관심…가전 기업은 높은 이익률에 '군침'

'강남 아줌마' 사로잡은 프리미엄 가전 열풍
[한경비즈니스 이홍표 기자] ‘생활 가전’은 정보기술(IT) 제품 카테고리 안에서도 수익성이 낮은 품목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중국 가전 기업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이 시장을 파고들면서 일종의 ‘사양산업’ 취급을 당해 왔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생기고 있다.

참신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력 그리고 정교한 마케팅을 바탕으로 생활 가전 내에서도 ‘프리미엄’ 제품이 속속 등장하며 가전 기업의 수익성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겐 ‘가치 소비’의 즐거움을, 기업엔 많은 이익을 안겨주고 있는 ‘프리미엄 생활 가전’에 대해 알아봤다.

LG전자는 지난 3월 28일 서울 서초구 양재대로에 자리한 LG전자 서초R&D캠퍼스에서 ‘LG 시그니처’의 브랜드 론칭 및 신제품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공개된 신제품은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시그니처 냉장고, 시그니처 세탁기, 시그니처 가습공기청정기 등 4종이다.

LG전자가 이례적으로 첨단 IT 제품이 아닌 이른바 ‘생활 가전’의 신제품 발표회를 대대적으로 연 이유는 하나다. 이 제품들이 LG전자 생활 가전의 최고봉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세계 가전 분야의 선두 주자인 LG전자가 내놓은 제품인 만큼 기능은 탁월하다. 일례로 냉장고는 편의성을 극대화한 ‘노크온 매직스페이스’ 기능이 장착됐다. ‘노크온 매직스페이스’는 사용자가 냉장고를 두드리면 외부에서 문을 열지 않고도 내부 수납공간을 투명 디스플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제품들의 가격이다. LG 시그니처 올레드 TV(65형)의 가격은 1100만원, 냉장고 850만원, 세탁기 320만~390만원, 가습공기청정기는 149만원이다. 이들 네 가지 제품을 모두 구입하면 단숨에 2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기존 TV·냉장고 가격의 두세 배에 달한다.

◆유럽 가전 기업, 한국서 고속 성장 중

LG전자가 ‘초고가’라는 부담을 무릅쓰고 시그니처 라인을 론칭한 것은 최근 생활 가전 부문에서 양극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 가전 업체들은 초고가 가전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공략하며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가전 시장에서 유럽 가전 기업들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절대 강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럽 가전 업체들이 현지에서도 가격이 가장 비싼 고가 제품, 이른바 프리미엄 제품을 속속 들여오면서 유행에 민감한 국내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소득층이 많은 서울 강남 지역은 프리미엄 가전 시장의 메카다. 업계에 따르면 독일의 가전 브랜드인 밀레의 제품 판매 매출 50% 이상이 강남권 백화점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밀레가 지난해 말 선보인 ‘제너레이션 6000’ 시리즈는 콤비오븐이 700만~1500만원, 커피 메이커 925만원, 냉장고 828만원, 와인 냉장고 700만원 정도의 초고가 라인이다. 웬만한 소형차와 오토바이 한 대 값이다.

하지만 국내 판매 넉 달 만에 강남 부유층에 입소문이 나면서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밀레코리아는 올해 프레스티지 매출 성장 목표를 전년 대비 두 자릿수로 높여 잡았다.

독일 지멘스도 주력 제품인 인덕션이 최근 전기레인지 열풍과 함께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가격대가 300만원대 중반부터 400만원대 후반까지 비교적 높지만 특히 강남 지역 백화점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지멘스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인덕션 제품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이곳에서의 인덕션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70%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강남 아줌마' 사로잡은 프리미엄 가전 열풍
◆다이슨·스메그·발뮤다 등이 인기몰이

밀레·지멘스 등이 여러 가지 카테고리에서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프리미엄 생활 가전을 판매하고 있다면 다이슨·스메그·발뮤다 등은 좀 더 한 가지 카테고리에 특화돼 있고 좀 더 대중적인 프리미엄 가전이다.

영국 다이슨은 전 세계 청소기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프리미엄 시장에서 60~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자체 특허 제품인 V6 모터를 탑재한 ‘다이슨 V6 플러피 헤파’ 청소기의 가격은 119만원에 달한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다이슨은 한국 시장에서 큰 폭으로 성장했다. 다이슨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매년 매출이 상승하면서 지난해 기준 10대 주요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다이슨은 선풍기·공기청정기·가습기 등의 제품 등 라인업을 더 다변화해 매출 증가세를 이어 나갈 방침이다.

‘강남냉장고’로 불리는 이탈리아 브랜드 스메그의 300L급 냉장고는 가격이 300만원이나 된다. 이 제품의 가격은 비슷한 크기의 일반 냉장고에 비해 두 배 정도다. 하지만 강남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며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이 냉장고는 브랜드의 상징인 레트로(복고풍) 디자인을 그대로 고수하고 부드러운 보디라인, 둥근 모서리 곡선, 선명한 색상이 특징이다. 기존의 냉장고와 다른 일종의 ‘오브제’로 대접받고 있는 이유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스메그는 2013년 국내 진출 이후 2년 만에 국내 매장 수를 8개까지 늘렸다. 스메그 매장 관계자는 “냉장고 크기나 외부 디자인을 소비자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게 하면서 주방에 놓이는 냉장고가 아닌 거실의 인테리어 용도로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발뮤다의 인기도 빼놓을 수 없다. 발뮤다 제품은 30만원대 토스터기, 50만원대 선풍기, 60만원대 가습기, 70만원대 공기청정기가 주력으로 ‘초고가’까지는 아니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전 업계의 애플로 불리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심고 있다. 특히 중국 샤오미가 발뮤다 공기청정기의 외관을 거의 그대로 카피한 제품을 내놓으며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 프리미엄 가전을 수입 유통하는 기업들은 매년 큰 폭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GS그룹의 일가인 코스모앤컴퍼니는 올해 1분기 매출액 426억원, 영업이익 22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한 해 영업이익(21억3700만원)을 단 1분기 만에 뛰어넘었다.

이익이 급증한 데에는 유통하고 있는 영국 다이슨의 무선청소기와 공기청정기, 스웨덴의 공기청정기 블루에어 등이 국내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다. 특히 다이슨 제품은 지난해 663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에 비해 251%라는 비약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도 284억원의 매출을 달성해 전년 동기 대비(124억) 229% 늘었다.

공기청정기 블루에어 역시 효자 품목이다. 2014년 들여왔는데 올해 1분기에만 5400여 대를 팔았다. 작년 총판매량은 1만3000대였다. 블루에어 역시 대당 최소 100만원에 달하는 고가 공기청정기다. 회사 관계자는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40% 성장률을 기록해 이 부문에서 매출 증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밀레코리아도 2005년 설립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매출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29억1500만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전년(19억 7200만원) 대비 47.9% 성장했다.

사실 프리미엄 가전이 인기를 모으는 것은 단지 한국뿐만이 아니다. 현재 약 35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프리미엄 가전 시장 비율은 약 5%(17조5000억원) 수준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가전 업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가전 시장은 일반 가전 시장 대비 3배 정도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미엄 가전의 성장은 소비자와 판매자의 니즈가 모두 맞물려 있다.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남들과 다른 제품’을 원하는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중산층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생활 가전을 일종의 인테리어 제품으로 찾는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프리미엄 가전 인기는 세계적 추세

가전 기업도 프리미엄 제품의 판매 증대는 수익성과 직결된다. 한국 및 유럽의 가전 기업이 하이얼 등 중국 가전 기업들과의 가격 경쟁을 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브랜드 파워가 있는 한국 및 유럽 기업들은 프리미엄 제품의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LG전자다. LG전자는 2016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3조3621억원, 영업이익 505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13조 9944억원), 전 분기(14조5601억원) 대비 각각 4.5%와 8.2%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3052억원) 대비 65.5%, 전 분기(3490억원) 대비 44.8% 늘어났다.

호실적의 핵심은 생활 가전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가능했다. 세탁기·냉장고 등을 만드는 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H&A) 사업본부의 영업이익률은 9.7%로 역대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생활 가전 사업은 대체로 업계에서 이익률이 낮았다. 통상 5% 미만인 것이 대부분이고 1~2%만 내도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선전 요인은 프리미엄 전략이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트윈워시 세탁기가 대표적이다. LG전자는 대당 900달러 이상의 프리미엄 제품군 세탁기에서 34.2%라는 높은 시장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LG전자는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시그니처 라인’을 출시하며 제품의 고급화에 더 매진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국내 가전 대기업들은 대형 가전 중심의 프리미엄화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가전 시장의 세계적 추세는 소형 가전 시장의 급성장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GFK에 따르면 2015년 글로벌 소형 가전 시장은 698억 달러 규모로 전년 대비 9% 성장했다. 특히 소형 가전 시장에서 전년 대비 매출 성장률이 가장 높은 15개 품목 중 한국 제품은 단 한 개도 포함되지 않았다.

소형 가전 중 매출 성장률이 가장 높은 것은 앞서 소개한 다이슨의 핸디스틱 무선 청소기다.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가전 기업들도 대형 가전의 프리엄화뿐만 아니라 성장성이 큰 소형 가전의 프리미엄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직접 진출이 어렵다면 이 분야에 강한 유럽의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해서라도 브랜드 파워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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