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도입 초읽기, 저성과자 대상 첫 ‘재교육’

서울 은행회관에서 4월 7일 열린 전국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금산협)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첫 산별 교섭은 금산협 측의 불참으로 파행됐다./연합뉴스
서울 은행회관에서 4월 7일 열린 전국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금산협)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첫 산별 교섭은 금산협 측의 불참으로 파행됐다./연합뉴스
금융 당국이 올해 ‘금융 개혁’의 핵심 과제로 꼽고 있는 것은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이다. 금융 당국은 금융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도 높게 주문하고 있다. 금융권의 고임금·저효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금융 개혁 또한 요원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은 호봉제 중심의 현행 은행원의 임금 체계를 연봉제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는 올해 초 KDB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을 시작으로 성과연봉제를 전 금융권으로 확산시키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KB, 저성과자 지역 영업본부로 발령

금융위는 금융권 전반으로 성과연봉제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행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은행이 호봉제 중심의 임금 체계를 고수해 저성과자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관행이 생겨났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성과주의 도입을 두고 금융권 노사 간 견해차를 줄이지 못해 갈등이 점차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 와중에 시중은행 가운데 성과주의 도입 초읽기에 들어가며 갈등이 점화되는 곳도 생기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은행 내 자본시장본부에 성과평가제를 우선 도입하기로 했다. 개인별 업무 성과 평가가 타 부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자본시장본부부터 성과평가제를 도입해 그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올해부터 모든 직원을 종합직군과 전문직군으로 구분해 운영하는 제도를 확대해 시행하기로 했는데 파생상품영업부·트레이딩부·투자증권운용부 등을 포함한 자본시장본부 소속 직원 70여 명은 전문직군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여신·수신·경영관리 등 부서 순환이 가능한 종합직군과 달리 다른 본부로 옮길 수 없는 대신 타 부서에 근무하는 동일 직급의 종합직군에 비해 업무 성과에 따라 최대 30%의 성과급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KB국민은행은 또 지난 4월 1일부터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저성과자’ 직원 30명을 지역 영업본부로 발령 내고 역량 개발 교육을 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재교육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B국민은행측은 “직원 평가에서 개선 및 변화가 필요한 직원을 대상으로 삼는 것일 뿐 성과 기준만으로 (재교육 대상을)선별하지 않는다”며 성과주의와는 선을 그었지만 이 때문에 향후 노조와의 협의가 더욱 악화 일로를 걷게 됐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월 성과주의 도입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진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체계 개편을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조와의 합의점을 찾지 못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올 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성과주의 도입을 둘러싸고 금융권 노사의 신경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이하 금산협)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은 여전히 성과주의에 대한 시각차가 커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가 3월 말 제출한 ‘2016년 산별 교섭 노측 요구안’에는 임금 4.4% 인상과 성과연봉제 등 개인별 성과 차등 임금제도 금지, 성과 평가를 이유로 한 해고 등 징벌 금지, 신입 직원에 대한 차별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이는 금산협 측이 안건으로 주장해 온 것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내용이었다. 금산협 측은 성과연봉제 도입, 신규 직원 초임 조정을 통한 신규 채용 확대, 저성과자 관리 방안 도입 등을 주요 안건으로 지목하며 이를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첫 산별 교섭 앞두고 갈등 ‘절정’

노사 양측은 산별 중앙 교섭 직전까지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상황은 더욱 악화돼 금산협의 34개 회원사 가운데 KDB산업은행·IBK기업은행·수출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자산관리공사·주택금융공사 등 7개 금융 공기업은 산별 교섭이 아닌 개별 교섭에 나서겠다며 지난 3월 말 금산협을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4월 7일 예정됐던 올해 첫 노사 간 산별 중앙 교섭 또한 개시도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금산협 측 대표단이 교섭 장소에 나오지 않아서였다.

이날 김문호 금융노조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금산협 측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 등 일방적인 요구를 하고 막상 이를 위한 논의의 자리는 피하고 있다”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은 “금융위원회가 성과연봉제의 일방적인 도입을 강요하며 불법적으로 노사 관계에 간섭하고 있다”며 “지난 3월 29일 손병두 금융정책국장이 7개 금융 공기업 부행장과 전무들을 불러 금산협 탈퇴를 지시했다. 이는 공무원의 직권남용을 금지한 형법 123조를 위반한 것으로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것”고 밝혔다.

금융노조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7개 금융 공기업이 금산협을 탈퇴한 것은 금융위가 주도한 것이 아니다. 공기업이 개별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에 나선 바 있다.

금융위는 올해 초 공공부문부터 성과주의 임금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이에 맞춰 7개 금융 공공기관이 금융권 사측을 대표하는 금산협을 탈퇴해 개별 노조와의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노조 측에서 “성과주의와 관련된 대화는 일절 거부한다”고 반발에 나서 논의는 더 진전이 없는 상태다.

금산협 측은 이번 산별 교섭에 대해 “금융노조의 일방적 요구로 정해진 것이므로 금산협 측 때문에 교섭이 결렬된 것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금산협 측 관계자는 이날 “금융노조는 어떤 합의도 없이 금산협 전체 회원사가 참석하는 교섭을 가질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

게다가 (금산협에서) 탈퇴한 금융 공기업까지 교섭에 참석할 것을 요구했다”며 “4월 7일 일정은 금융노조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으로 1차 교섭이 아니며 금산협측이 교섭에 불참한 것 또한 아니다”고 해명했다.

통상적으로 4월 첫째 주에 시작된 금융 노사 산별 교섭 개시는 당분간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공기업 노조가 개별 협상에 반대 뜻을 밝히면서 금융 공기업의 성과연봉제 도입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한경비즈니스=조현주 기자 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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