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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사전조정위원회 신설
출혈경쟁 심해지고, 중소기업 '줄세우기' 까지
"이대로면 줄줄히 남아있는 조단위 해외수주에도 악영향"
◆국내는 자율조정, 해외는 적극조정
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방산 사전조정제도 도입을 위한 ‘방위산업 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방위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한국국방기술학회에 법 개정 방향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최근 완료된 용역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법안 문구와 제도 운영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입찰 이전에 업체 간 갈등을 조정할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우선 국내 모든 방산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민간 협회인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사전조정위원회(가칭)’를 설치한다. 대형 방산사업의 입찰을 앞두고 업체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민간위원, 각 기업 대표, 실무진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사업 분담을 사전에 협의하고 갈등을 조정하도록 할 계획이다. 위원회의 협의내용을 방사청이 공식입찰에 반영할 예정이다.
현행 방위산업발전법 제11조에도 사업조정제도가 있지만 ‘대기업의 방산 중소기업 인수·합병과 업체 간 중복투자’의 경우에만 정부가 사전조정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법개정을 통해 과잉경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국내와 해외사업의 조정 방식은 다르게 설계될 전망이다. 국내 경쟁입찰에서는 정부가 직접 개입할 경우 특혜나 담합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방진회를 중심으로 민간 자율조정을 유도한다. 반면 해외 대형 수주사업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실질적인 ‘원팀’을 구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업체 간 계약조건과 사업 참여 범위, 역할 분담 등을 적극 조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약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겉으로는 ‘원팀’ 구성에 합의했지만 실제로는 별도로 움직였다. 건조·정비 기술 지원, 디지털 기술 이전, 자율운항 기술 협력 등을 하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았다. 해외 무대에서 서로를 헐뜯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민간기업간 협력에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과거에도 업체 간 갈등을 조정해 사업을 정상화한 전례가 있다. 2010년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와 LIG넥스원은 4조8000억원 규모의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사업을 놓고 법적 분쟁을 벌였다. 당시 양사 대표 간 협의 끝에 삼성탈레스가 가처분 신청을 취하하면서 사업이 정상화됐는데, 방사청과 방진회가 갈등 조정에 핵심역할을 했다. 방사청은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던 조정을 법적 근거를 갖춘 공식 제도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관건은 공정경쟁을 유지하면서도 업체 간 갈등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국내 입찰에서는 조정 과정이 가격이나 수주 물량을 사전에 합의하는 담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방사청은 법 개정 과정에서 조정위원회의 권한과 절차, 합의 결과의 반영 방식, 방사청의 개입 범위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KDDX 갈등 후유증 확산…협력사까지 ‘줄 세우기’
정부가 법개정에까지 나선 것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KDDX 수주전에서 불거진 갈등이 사그라들기는 커녕 방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양사는 총사업비 7조8000억원 규모의 KDDX 사업자 선정방식과 보안감점 등을 놓고 장기간 대립했다. 소송전과 언론전까지 벌어지면서 사업 일정이 약 2년 지연됐다. 지난 7월 한화오션의 수주로 일단락됐지만 갈등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특히 대기업 간 갈등이 중소 협력업체로까지 번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양측에 납품하던 부품·기자재 업체들이 사실상 한쪽을 선택하도록 압박받는 ‘줄 세우기’가 심해지고 있다.
복수의 원청기업과 거래하던 협력업체들이 특정 기업에 종속되면 사업기회가 줄어들 뿐 아니라 국내 방산 공급망 자체가 양분되면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중소 방산업체 대표는 “우리팀, 너희팀으로 나뉘어 반대팀은 사실상 한쪽 공급망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로 두면 앞으로 계속될 해외 수주전에서도 경쟁력 약화가 지속될 것이란 것도 우려사항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그리스, 루마니아 등에서 조단위 사업을 두고 수주경쟁이 일어날 예정이다.
해외 방산사업은 무기체계 성능뿐 아니라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 장기 유지·보수·정비(MRO)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해외 경쟁국들이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의 내부 소모전이 지속되면 수주 경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사전조정제가 정착하면 해외 수주를 위한 협력체계가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기업과 정부뿐 아니라 군·학계·연구기관까지 폭넓게 참여하는 복합적인 협의체를 구축해 소통의 접점을 넓히고, 업계 전반의 인식 전환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원팀 흐름
우리의 경쟁자인 글로벌 방산기업들은 ‘원팀’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지 생산, 기술이전, 유지·보수·정비(MRO)까지 종합적으로 요구하는 해외시장에서 개별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 때문이다.이스라엘은 자국 주요 방산기업들이 공동으로 해외 대형사업에 참여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그리스와 체결한 약 30억유로 규모의 다층 방공망 ‘아킬레스 실드’ 사업에는 라파엘과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이 함께 참여한다. 라파엘의 다비즈 슬링과 스파이더, IAI의 바락 MX 등을 하나의 방공체계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2025년 독일에 처음 공급한 애로우3 미사일 방어체계 역시 IAI와 엘빗시스템즈, 라파엘 등이 역할을 분담해 수출에 성공한 사례다.
유럽에서도 기업 간 협력 움직임이 거세다. EU라는 큰 우산아래 유럽기업간 ‘원팀’을 구성하는 흐름이다. 지난 7월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한국을 제친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는 같은 달 스페인 나반티아와 잠수함 공동생산·사업화를 위해 함께하기로 했다. 9월에는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수중 방산 분야 협력 확대에 합의했다. 프랑스 나발그룹,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스페인 나반티아 등은 유럽연합(EU)의 지원 아래 공동 초계함(EPC) 개발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도 호주 핵추진 잠수함 협력사업인 오커스(AUKUS)를 통해 기업 간 공동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양대 핵잠수함 건조업체 제너럴다이내믹스 일렉트릭보트와 헌팅턴잉걸스(HII)는 호주 ASC와 함께 현지 부품업체를 미국 잠수함 공급망에 편입시키는 공동 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경쟁 관계인 조선사들이 국가 차원의 사업에서 공동으로 공급망을 확대하는 사례다. 튀르키예도 말레이시아에서 수주한 초계함 3척 사업에 STM·아셀산·하벨산·로켓산이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8월 초계함 3척이 모두 진수됐으며 내년 인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해외 경쟁국들이 정부 지원 아래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K방산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국내 방산업체들도 내수시장에서의 경쟁과 별개로 해외에서는 실질적인 ‘원팀’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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