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에 따른 소득 감소와 주택담보대출·자녀 교육비 부담이 겹치면서 중국 중산층의 상환 능력이 악화하고 있다. AFP
경기 둔화에 따른 소득 감소와 주택담보대출·자녀 교육비 부담이 겹치면서 중국 중산층의 상환 능력이 악화하고 있다. AFP
중국에서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학력을 갖춘 40~50대 중산층이 빚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기 둔화로 가계의 소득 기반이 흔들리면서 과거 은행들이 우량 고객으로 여겼던 공무원과 국유기업 직원들까지 신용카드 연체에 빠지고 있다. 중산층의 상환 능력 악화가 은행권의 부실채권 처분 확대로 이어지면서 중국 내수경기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2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중국 현지 금융업계 자료에 따르면 올 3분기 중국 은행업신용자산등기유통센터에 신규 등록된 부실채권 규모는 원리금 기준 1481억위안(약 30조원)에 달했다. 전 분기 1011억위안보다 약 46.5% 늘어난 규모다. 은행들이 회수가 어려워진 대출채권을 외부에 매각하기 위해 시장에 내놓은 금액이다.

특히 신용카드 연체채권이 전체의 35.2%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기록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521억위안이다. 개인 소비대출 부실채권 비중은 28.7%였고 기업대출은 16.6%였다. 중국 은행권의 부실채권 처분이 신용카드와 가계대출에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은행권에선 연체자들의 연령과 직업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시장에 나온 부실채권에 40~50대 중년층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서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전문직 종사자와 공공부문 근로자도 예외가 아니다. 안정적인 소득을 바탕으로 대출을 받아온 계층에서 연체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은행권의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 광대은행이 지난 8월 등록한 100억위안 이상의 부실채권 묶음에서도 대졸 이상 채무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경기 둔화에 따른 소득 감소와 주택담보대출·자녀 교육비 부담이 겹치면서 중국 중산층의 상환 능력이 악화하고 있다. AFP
경기 둔화에 따른 소득 감소와 주택담보대출·자녀 교육비 부담이 겹치면서 중국 중산층의 상환 능력이 악화하고 있다. AFP
상하이의 한 국유은행 관계자는 SCMP에 정부 부처와 국유기업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던 사람들의 연체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고용 안정성이 높다는 이유로 신용카드를 적극 발급했던 고객층에서 부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신용카드 부실채권의 가중평균 연체 기간은 약 5.4년으로 개인 소비대출의 2.3년보다 길었다. 장기간 회수하지 못한 채권이 은행의 자본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의미다.

중년층의 상환 부담을 키운 요인으로는 소득 감소와 높은 고정지출이 꼽힌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과 자녀 교육비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임금이 줄거나 실직하면 신용카드 대금을 제때 갚기 어려워진다.

2010년대 중반 중국 은행들이 공무원과 국유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용카드 발급 경쟁을 벌인 것도 부실 위험을 누적시킨 배경으로 지목된다.

은행들은 회수가 어려운 채권을 묶어 매각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부실채권 처분을 지원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올 초 은행들이 부실 개인대출을 묶어 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올해 말까지 연장했다. 가계대출 연체가 금융권 전반의 건전성 문제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중산층의 소득 회복이 지연될 경우 신용카드 연체와 소비 위축이 서로 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계가 빚을 갚기 위해 지출을 줄이면 내수 회복이 늦어지고 기업의 고용과 임금 여력도 약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 기반으로 여겨졌던 중산층의 재무 건전성이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우려한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