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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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투자 붐의 ‘장부 밖 청구서’가 기술주를 재차 흔들었다. 메타가 공개한 막대한 미래 지출 약정에 인프라 투자 자금조달 능력을 둘러싼 경계심이 다시 커지면서다. 코어위브에서 시작된 신용 불안이 현금 창출력이 탄탄한 빅테크로 번지자 AI 반도체와 인프라 공급망에 대한 투자 심리도 얼어붙었다.

단, 미국 증시보다 앞서 긴 하락을 겪은 한국 증시는 바닥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날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 기업공개(IPO) 검토를 중단한다고 밝힌 점도 투심 회복에 기여할지 주목된다.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오전 10시8분 기준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5% 내린 5449에 거래됐다. 전날 3.52% 급락했던 코스피는 장 초반 5350.09까지 밀렸으나, 기관의 매수가 유입되며 낙폭을 줄였다. 코스닥지수도 같은 시각 2.4% 내린 745.36에 거래됐다.

삼성전자는 2.5% 하락한 반면 SK하이닉스는 0.2% 상승했다. 장 초반 각각 3~4%가량 밀렸으나 바닥을 찾는 모습이다. 솔리다임 중복상장 논란을 겪었던 SK하이닉스는 이날 "시장 상황과 주가 흐름을 고려해 솔리다임 기업공개 검토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가시지 않는 'AI 돈줄' 공포

간밤 미국 시장에서 다시 불거진 AI 투자 부담이 국내 증시를 다시 덮쳤다. 3분기 호실적을 발표한 뒤 주가가 상승했던 메타와 스페이스X는 22일(미국 동부시간) 주가가 각각 7%, 9.1% 급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6.7% 급락했고, 나스닥지수는 2.6% 하락했다.

시장 불안을 키운 것은 메타가 공개한 약 8250억달러의 미래 지출 약정이었다. 지난 7월 공개한 약 7000억달러 대비 석 달 새 1250억달러, 약 18% 늘었다. 이는 메타가 데이터센터 임차와 클라우드 컴퓨팅 용량 확보 등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앞으로 지급하기로 한 금액을 뜻한다. 대부분은 재무제표에 부채로 잡히지 않는 부외(簿外) 약정이다.

메타의 3분기 보고서(10-Q)에 제시된 미개시 리스 약정은 약 3557억달러, 해지 불가 계약은 4545억달러다. 여기에 최대 147억달러의 조건부 클라우드 구매 의무를 더하면 약 8250억달러가 된다. 여러 해에 걸쳐 발생하는 지급 약정으로, 실제 차입금과는 다르다. 다만 AI 인프라 경쟁이 재무제표에 기록된 부채보다 더 큰 빚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를 다시 자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8월 미국 주요 기술기업 9곳의 공시 주석을 분석한 결과 이렇게 장부 밖에 있는 AI 관련 약정은 약 3조 달러에 달했다.

코어위브발 우려에 가뜩이나 민감한 신용시장은 다시 발작했다. 이날 메타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하루 새 7.3bp(1bp=0.01%포인트) 올라 114.5bp를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다. CDS는 기업의 채무불이행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이다. 프리미엄 상승은 투자자들이 메타의 신용위험을 떠안는 대가로 더 높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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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는 지난 21일 실적 발표 직후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4% 넘게 올랐다.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6% 늘어난 약 646억달러에 달했고, 4분기 매출 전망도 시장 기대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 지급 부담이 부각되자 실적에 대한 낙관론은 빠르게 꺾였다.

자본지출(CAPEX)이 늘면서 잉여현금흐름이 21억2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선 점도 투심을 위축시켰다. 당초 예상했던 규모(약 90억달러 적자)보단 작았지만, 악재에 민감한 시장에는 먹히지 않았다. 메타마저 본업에서 상당한 현금이 들어와도 인프라 투자비를 모두 충당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날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네오클라우드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이라면서도 "문제는 희소한 자본"이라고 언급해 '자본 병목'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재확인시켰다. 이에 대규모 CAPEX 계획을 밝힌 스페이스X 역시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5년 만기 CDS 프리미엄이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으며 주가가 급락했다. 지난 6월 말 110bp에서 최근 226bp까지 급등한 상태다.

문제는 AI 수요 아닌 매수 공백

AI 인프라 투자 자금 조달에 대한 불안은 한국 반도체와 AI 하드웨어 관련주의 수주 기대에 부담 요인이다. 미국 빅테크의 투자 확대는 그동안 메모리와 기판, 장비, 전력기기 업체의 성장 근거였다. 하지만 투자기업의 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현금 여력이 줄면 데이터센터 건설과 장비 도입 일정이 늦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코어위브가 부각시킨 자금 병목 우려가 코스피를 비롯한 제조업 중심 아시아 증시를 끌어내리고 있는 이유다.

단, 미래 지출 약정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빅테크의 유동성 위기를 단정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타가 9월 말 보유한 현금·현금성 자산과 시장성 유가증권은 824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AI에 대한 수요나 투자 위축의 조짐도 없다. 메타는 AI 투자가 광고 매출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투자 방침을 유지했고, 스페이스X는 "AI 투자 회수 기간이 1년 미만으로 단축됐다"며 수익성에 대한 우려에 선을 그었다.

최근의 글로벌 증시 급락과 위험 선호 심리 위축은 AI 수요·실적 붕괴가 아닌 '매수 공백'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 월가의 진단이다. 걷히지 않는 중동 리스크와 프랑스 국채 급락 등으로 위험 선호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다음주 이스라엘 총선과 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 등 중대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기관 투자자들이 매수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캇 럽너 시타델증권 주식·파생 전략 총괄은 최근 자사 기관 고객들이 "(선거 이후) 더 비싸게 사더라도, 큰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지금 사고 싶지 않다"며 매수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라고 전했다. JP모건도 "이번 리스크 오프는 새로운 요인이 아닌, 글로벌 금리·신용 시장의 혼란과 AI 투자심리 약세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유의미한 저가 매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