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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자연드림 매장. 친환경 먹거리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매대가 휑했다. 장기간 보관이 어려운 정육 코너의 냉장 진열대는 아예 텅 비어 있었다. 안내문에는 “부득이하게 당분간 공급이 어렵다”는 설명만 적혀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 경영난이 알려진 뒤 하루 매출이 40% 더 줄었다”며 “공급되는 상품도 평소의 60%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진=이솔 기자
사진=이솔 기자
한때 친환경 먹거리 시장을 이끈 국내 최대 생활협동조합 아이쿱이 창립 약 30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먹거리에서 의료, 요양, 호텔로 사업을 넓히는 동안 금융회사 대출과 조합원 차입금이 불어났고, 생산자 납품대금에 이어 조합원에게 빌린 돈도 제때 갚지 못하고 있다.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영입한 구조조정 전문가마저 조합원 반발로 하루 만에 물러나면서 정상화 작업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18개 법인 자본잠식 빠져

'국내 최대 생협' 자연드림의 추락…무리한 사업확장에 빚만 1조
한국경제신문이 21일 확보한 아이쿱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기준 아이쿱의 금융회사 대출 잔액은 2261억원, 조합원 2375명에게 빌린 돈은 1469억원에 달했다. 생산자에게 지급하지 못한 납품대금은 약 800억원으로 추산됐다. 전체 73개 법인의 7월 말 기준 자산은 1조3948억원, 부채는 1조585억원이지만 현금성 자산은 31억원에 그쳤다. 이 가운데 18개 법인은 자본잠식 상태다.

돈줄이 막힌 여파는 전국 179곳에 달하는 매장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의 한 자연드림 매장은 10년 전 월 매출이 3억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1억2000만~1억3000만원으로 줄었고, 올 들어 경영난이 알려진 뒤 추가로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납품대금 미지급에 따른 상품 공급 차질이 판매 부진으로 이어지면서 자금난을 더 키우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쿱은 1990년대 후반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지역 소비자생협들이 연대해 출범했다. 조합원에게 빌린 돈은 한때 공동체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2000년 수도권 물류센터 화재 발생 당시에는 조합원과 생산자가 ‘화재복구 차입운동’에 참여해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사업 확장과 함께 차입 규모가 커지면서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내놓은 돈의 회수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의료·호텔로 사업 확장하다 부실화

내부에서는 유동성 위기의 원인으로 기존 경영진의 무리한 사업 확장을 지목한다. 아이쿱은 2019년 이후 자연드림파크를 중심으로 치유센터와 한의원, 항암·치유식품, 숙박·여행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조합원 차입금은 2021년 1095억원에서 2023년 1776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 약 1800억원에 달했다.

경영난이 심해진 지난해에도 일본 가나자와에 자연드림호텔을 열고 전남광주 구례 로움호텔을 새로 리모델링했다. 올해 3월에는 로움3호텔을 추가로 개장하기도 했다. 경북 청도와 강원 고성에는 각각 33만㎡, 66만㎡ 규모 자연드림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조합원 비상대책위원회는 항암·요양 사업을 확대하며 호텔과 각종 시설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결과 조합원 차입금이 불어나고 금융권 대출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국내 최대 생협' 자연드림의 추락…무리한 사업확장에 빚만 1조
몸집이 커지는 동안 조합원의 경영 감시는 어려워졌다. 지역 생협과 연합회 외에도 생산·유통·물류 등을 맡는 수십 개 법인이 생겨나 일반 조합원이 전체 투자와 차입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지역생협 또는 연합회가 출자했거나 지배하는 주식회사는 2010년 12개에서 현재 73개로 늘어났다. 재무 정보 공개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이쿱은 2024년 연차보고서를 발행하지 않았고, 2025년 보고서 분량은 기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업 확장과 자금 운용을 둘러싼 의혹은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생산자와 직원, 조합원은 지난해 신성식 대표 등 12명을 횡령·배임 등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사건을 맡은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올해 7월 아이쿱 본사 등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피의자들을 소환 조사하고 있다.

◇회생 논의조차 공회전

경영진에 대한 불신은 정상화 방안을 둘러싼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조합원 측에 따르면 8일 경영진·조합원 회의에서 구조조정 전문가인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가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선임된 지 하루 만이다. 2002년 설립된 서울인베스트는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전문 투자회사다.

돈을 빌려준 조합원들은 박 대표 영입을 기업회생 신청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받아들였다.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차입금이 회생채권에 포함돼 원금을 온전히 돌려받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경영진은 지난달 22일 공청회에서 회생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작성했지만, 이달 4일 채권자 조합원이 빠진 상태에서 회생 관련 회의를 열고 박 대표를 선임해 반발을 샀다.

회생 논의는 일단 제동이 걸렸지만 갈등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동성 위기가 심해질수록 경영진은 채무를 일괄 조정하는 회생 절차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데, 채권자 조합원들은 김정희 인라이프케어이종협동조합연합회 회장 등 현 경영진에게 경영 정상화를 맡겨도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 측은 국회 국민청원을 통해 경영 실태와 재무 상태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회생이나 자산 매각을 결정하기에 앞서 위기의 원인과 재무 상태를 공개하고, 정상화 과정에 조합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정봉 사회적경제노동센터장은 아이쿱 위기에 대해 “사업이 커지고 조직이 복잡해지면서 조합원으로 구성된 연합회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거나 감독하기 어렵게 됐다”며 “생협 내 권한 없는 자의 결재·지시, 불투명한 자금 운용, 방만한 경영 등이 나타나고 조합원의 출자금과 조합비가 별다른 견제 없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우연수 기자 coinciden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