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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가 공사를 취소한다고 뒤늦게 통보해 왔습니다."(한국전력거래소)
지난 14일 <전력시장의 이상한 계산법>을 보도한 직후, 두 전력당국이 내놓은 상반된 반응입니다. 지난달 8일 등록된 '9월 9일 신가평 변전소 공사' 계획 하나로 이튿날 전력도매가격(SMP)은 낮 한때 kWh당 56원이나 폭락했습니다.
그만큼 한전이 발전사들에 지급할 전력구입비를 아끼게 됐고, 발전사들의 정당한 판매 마진은 허공으로 날아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정작 9월 9일 당일 현장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고, 그 이유에 대한 양측의 설명은 달랐습니다.
허위 공사 의혹에 불거진 책임 공방
전력당국은 2022년 9월부터 전력시장 규칙을 '실계통 기반'으로 개편했습니다. 송배전 인프라 부족으로 특정 지역 발전기를 강제로 끄거나 켜야 하는 물리적 한계가 잦아지자, 이를 도매가격에 정직하게 반영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일부 지역의 전력망 공사로 '휴전제약'을 걸어 발전단가가 비싼 화력발전기를 억지로 돌려야 할 때는 전국 도매가격이 덩달아 치솟는 것을 막기 위해 '가격결정 자격 배제'라는 규정도 두었습니다.쉽게 말해 "전력망 공사 때문에 비싼 발전기가 돌긴 했지만, 다른 지역 전력값까지 밀어올릴 순 없으니 비싼 발전기는 쏙 빼고 싼 발전기 기준으로만 도매가격을 계산하겠다"는 논리입니다. 이 규정을 도입한 이후 작년 11월 26일 낮 한때는 도매가격이 0원을 찍은 적도 있습니다. 전국에서 100기가 넘는 발전기가 멀쩡히 전력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는데도 일제히 가격결정 자격에서 탈락했기 때문이었죠. 이번 9월 9일 사태 역시 한전의 휴전제약 계획 하나로 수도권 고원가 발전기들의 가격 결정권이 무더기로 박탈되면서 도매가격이 곤두박질친 것입니다.
올초 시작된 중동전쟁 여파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폭등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달 발전용 가스요금은 1월 대비 52% 뛰었고, LNG 발전단가 역시 같은 기간 26% 가량 올랐습니다. 8월 전력도매가격도 kWh당 148원으로 1월보다 약 43% 치솟으며 동반 상승 흐름을 보였구요. 그러나 지난달 신가평 변전소 공사 건을 기점으로 상승세가 꺾이더니, 9월 도매가격은 전월보다 29원 가량 급락해 119원으로 안정화됐습니다.
그러니 '사라진 공사 계획'이 더 의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행 시장 규칙상 한전이 전일 14시까지 공사 계획을 내면 거래소는 18시 무렵 도매가격을 확정·공표합니다. 대체 전력당국은 언제 공사 취소를 결정했으며, 왜 그 취소는 이미 깎여버린 도매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채 그대로 굳어진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보도 이후 한전과 거래소는 진실 공방 끝에 "한전의 작업 여건 변화로 신가평 변전소 공사를 취소했으며, 거래소의 요청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전은 9월 8일 14시 전에 공사 계획을 제출한 뒤에 18시 무렵에 취소를 통보했다고 합니다. 일부러 도매가격을 떨어뜨리려 한 의도는 결코 아니었다는 해명도 덧붙였습니다. 수십 년간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도맡아 온 한전이 조직적으로 가짜 공사를 꾸며 가격을 조작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력시장의 취약한 시스템이 노출됐다는 겁니다. 전력당국의 서류상 착오 하나에 도매가격이 출렁였는데도 사후 정정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깎여나간 판매 마진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 발전업계가 떠안았습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화력발전사도 속수무책이지만, 영세한 태양광 사업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마진을 강탈당한 셈입니다.
정당한 마진 깎인 민간 발전업계 "지역차등제 더 위험"
민간 발전업계는 "한전이 인프라 확충 실패 책임을 시장에 전가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송전선로를 제때 건설하고 전력망 혼잡을 해소해야 하는 독점적 책무는 한전에 있다는 거죠. 전력도매시장은 원칙적으로 가장 비싼 발전기의 생산 원가에 맞춰 도매가격이 결정되는 '경제급전' 방식으로 운영돼야 합니다. 전력망 공사 등의 사정으로 발전단가가 비싼 발전소를 억지로 돌려야 한다면, 그에 따른 '휴전제약 비용'이 도매가격에 정직하게 반영돼 오르는 것이 시장 원리에 부합합니다.
물론 한전도 할 말이 많습니다.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한전이 겪은 트라우마와 전력망 건설을 둘러싼 극심한 주민 반발이라는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한전 계통실 직원들은 주민과 환경단체 설득을 위해 전국 팔도를 수백번씩 방문한다고 합니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지난해 완공까지 무려 21년이 걸렸습니다. 동해안의 값싼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나를 초고압송전선로 공사도 하남시의 인허가 반대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열악한 재무상황과 정부의 전기요금 통제도 한전을 짓누릅니다. 한전은 지난 6월 말 기준 누적 영업적자가 34조원, 부채가 210조7000억원에 달합니다. 정부의 가격 통제로 가정용 전기요금은 제때 올리지 못한 채 산업용 요금만 계속 올리다 보니, '큰손 고객'인 대기업들은 자꾸 "한전 고객에서 나가겠다"고 통보합니다. 이런 마당에 휴전제약으로 억지로 돌아간 수도권 발전기들의 비싼 발전단가를 시장가격에 그대로 다 반영해 정산해 주면 한전의 재정난은 더 악화될 겁니다.
계통혼잡정보 공개하고 전력감독원 신설 서둘러야
그렇다고 해서 '가격결정 자격 배제'라는 룰을 앞세워 민간의 마진을 깎는 게 정당화될까요? 근본적인 시장 수술이 필요합니다. 한전은 전력망을 깔고 소유하는 독점 사업자이면서, 동시에 도매시장에서 발전사들로부터 전기를 사 오는 사실상 유일한 구매자입니다. 공사로 인한 휴전제약을 걸어 고원가 발전기의 가격결정 자격을 뺏으면 자신들의 전력구입비를 아낄 수 있는 구조적 이해상충을 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거래소는 한전이 공사 계획을 올리면 '계통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기술적인 문제만 따질 뿐, 그 공사 일정이 도매가격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해외처럼 전력망 운영사(TSO)와 전력 판매사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면 휴전제약에 따른 비용을 객관적으로 정산하겠지만, 한국은 한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게 돌아갑니다.
한전의 계통 부문을 떼어내 거래소와 합치는 식의 대수술이 당장 어렵다면, 결국 한전과 거래소가 틀어쥐고 있는 계통운영정보의 빗장부터 과감히 풀어야 합니다. 현재 어느 선로가 막혀서 비싼 발전기가 돌아갔는지, 해당 공사의 필요성과 작업 기간이 적절했는지를 외부 시장 참여자들이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공기업의 자의적인 규칙 적용을 감시하고 데이터 검증과 정산 갈등을 독립적으로 중재할 기구가 필요합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전력감독원' 신설이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해외 주요 전력시장처럼 15분 단위의 '실시간 시장' 도입도 필요합니다. 하루 전에 세운 계획표에 의존하는 20년 묵은 경직된 방식을 깨고,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물리적 수급과 전력망 혼잡 비용이 시장가격에 정직하게 반영되는 체질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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