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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권거래소의 주식 트레이더 / AP 연합뉴스
뉴욕증권거래소의 주식 트레이더 / AP 연합뉴스
'채권 금리가 오르면 주식시장은 압박을 받는다'는 건 증시에서 상식처럼 통하는 말이다. 채권 금리 상승은 상장사 차입 비용을 높여 실적에 부담을 주고, 투자자에게 주식보다 더 매력적인 대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논리가 요즘 글로벌 증시에선 통하지 않는다.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 중반까지 치솟으며 '저금리 시대의 종말'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주식 시장은 지난 25일 기준 최근 한 달 소폭(0.86%) 상승세를 보이며 버티고 있다. 이유가 뭘까.

금리도 올리고 주가도 이끄는 AI

28일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최근 주식 시장이 '금리가 오르면 주가는 떨어진다'는 상식에 역행하는 주요 원인은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이다. 채권 시장에선 엔비디아, 구글 등 주요 빅테크가 AI 인프라 투자용 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을 앞다퉈 발행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주요 빅테크 기업의 채권 발행 규모가 33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빅테크 채권 발행 경쟁은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장기 국채 발행에 AI 투자용 채권까지 공급이 쏟아지니 구매자 우위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오라클 같은 곳은 연 7.7%대 금리를 제시하며 장기 채권을 발행할 정도다.

이런 상황이면 주식시장엔 압박이 가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주식시장이 굳건한 것은 채권을 발행해 빅테크에 들어온 돈이 고스란히 AI 인프라 투자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토니 파스콰리엘로 골드만삭스 헤지펀드 담당 글로벌 헤드는 "2023년 1500억달러 수준이었던 대형 클라우드 기업의 설비투자가 내년엔 1조3000억달러로 확대된다"며 "연 2조 달러 규모 미국 재정지출이 더해지며서 경기 부양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이익이 증가하면서 주가수익비율(PER)로 대표되는 기업 가치는 오히려 저평가되고 있다. 파스콰리엘로 헤드는 "S&P500 기업들의 이익 증가율이 25~30%에 달한다"며 "PER는 1년 전 23배에서 최근 18~19배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도 '주식 금리 한방향' 사례 적지 않아

과거에도 사례는 적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 시간) '주식 시장이 급등하는 채권 금리를 거스르고 있다'는 기사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1994년, 1999년, 2006년, 2016년의 사례를 분석했다. 공통점은 금리 상승기 주식시장이 버틴 것이다. 배경엔 기업 실적과 경기 개선이 있다.

1994년 2월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이 '경기회복세가 인플레이션을 축발한다'며 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렸다. 채권 시장에선 40거래일 만에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포인트(p) 이상 급등했다. 주식 시장도 이후 2개월 약 8% 빠지며 충격을 받았지만 '기업 이익'과 '경기 상승'이 주식시장을 회복세로 이끌었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의 2004년 모습 / AP 연합뉴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의 2004년 모습 / AP 연합뉴스
2006년 12월 Fed가 유가 급등세를 보고 기준금리를 올렸을 때도 주식시장은 이후 석 달 이상 강한 모습을 보였다. 안정적인 경기 전망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시작된 Fed의 긴축 사이클에도 주식시장은 금리 인상을 '금융위기 이후 부진에서 벗어나는 신호'로 판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중간선거 압승에 따른 투자 확대 기대감에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나타냈다.

물론 상식이 통한 시기도 있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금리 인상에 시동을 건 2022년은 달랐다. 2021년 물가 상승을 '일시적'으로 판단했던 파월 의장은 2022년 3월이 돼서야 긴축에 시동을 걸었다. 주식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이후 그해 10월까지 4차례 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동안 주식 시장은 15% 이상 빠졌다.

중동전쟁 종전 때 주식시장 오름세 전망

2026년엔 이달 Fed의 기준 금리 인상에도 주식 시장은 잘 버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5일 기준 최근 한 달 S&P500 등락률은 0.86%, 금리에 민감한 나스닥종합지수는 같은 기간 3.51% 올랐다.

향후 주식시장에 영향을 줄 요인으론 중동전쟁이 꼽힌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 합의를 하면, 유가 하락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며 주식시장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게 WSJ의 전망이다. 투자은행(IB) 뱅크오브아메리카도 "현재 Fed가 경기둔화를 예상할 신호는 거의 없다"며 낙관론을 폈다.

다른 의견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금리 상승이 기업 이익 증가율을 낮출 것으로 봤다. 파스콰리엘로 헤드는 "금리가 더 오르게되면 주식시장이 받는 압박이 더 커진다"며 "기업 이익 증가율이 10~12% 수준으로 낮아지고, 주가 상승폭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토니 파스콰리엘로 골드만삭스 헤지펀드 담당 글로벌 헤드 / 골드만삭스 홈페이지 캡처
토니 파스콰리엘로 골드만삭스 헤지펀드 담당 글로벌 헤드 / 골드만삭스 홈페이지 캡처
Fed의 기준 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단기 국채 금리 상승에 주목하며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전망을 하는 목소리도 있다. 블룸버그는 27일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의 금리차가 0.17%p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며 '경기침체 경고'라는 진단을 내놨다. 장단기 금리차가 좁혀졌다는 의미는 Fed가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향후 경기가 식을 가능성을 반영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1960년대 이후 8차례 경기침체가 있었는데, 앞서 장단기 금리가 역전됐다"며 "금리 역전, 혹은 이에 가까워지는 건 금리 인상이 경제를 위축시킬 만큼 강력한 것으로 보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일각에선 이미 상당한 수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시장 금리에 반영돼 있어, 장단기 금리가 당분간 역전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의 우려가 '과하다'는 얘기다.

뉴욕=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