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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보고서·재무모델 만드는 금융 AI 서비스
PE·운용사 딜 학습해 IRR·투심위 보고서까지
“미국에서는 이미 주니어 레벨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금융 AI 스타트업 터미널X를 창업한 홍현 대표(사진 왼쪽)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주니어들이 해오던 자료 수집과 분석, 모델링 업무 상당 부분을 AI가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유튜버 ‘뉴욕주민’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월가 현직자의 시각으로 미국 증시와 투자은행, 헤지펀드의 생리를 설명하며 유명해졌다.
하지만 채널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에 유튜브 활동을 사실상 접었다. 선택한 것은 스타트업 창업이었다. 홍 대표는 시카고대 물리학도 출신 엔지니어 이근석 공동창업자(오른쪽)와 2023년 터미널X를 설립했다. 월가에서 자신이 직접 해왔던 투자 업무를 AI가 수행하도록 만드는 회사다.
홍 대표는 “유튜브는 매일 올려야 하는데 회사를 시작하면서 거의 하지 못했다”며 “활동을 중단한 뒤 구독자가 10만명 정도 줄었다”고 했다. 지금도 시장에 대해 “이 얘기만큼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1년에 서너 번 정도 영상을 올리는 수준이다. 안정적인 월가 경력에 이어 쌓아놓은 개인 브랜드까지 사실상 내려놓고 선택한 사업이 ‘AI 운용역’인 셈이다.
투자보고서 만들던 월가 주니어 업무 AI로
터미널X의 두 공동창업자의 이력은 정반대다. 홍 대표는 미국 투자은행에서 약 7년간 M&A 업무를 한 뒤 부동산 사모펀드에서 부동산·인프라 투자를 경험했다. 이후 헤지펀드로 옮겨 상장주식 롱·숏 투자도 했다.이 공동창업자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엔지니어다. 원래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지만 추상적인 연구보다 실제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만들고 싶어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홍 대표가 월가에서 직접 겪은 문제를 정의한다면 이 대표는 그것을 코드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대표는 “좀 더 엔드유저와 가까운 실용적인 것을 만들고 싶었고, 속도가 빠르고 한 사람에게 많은 오너십이 주어지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터미널X가 만드는 것은 단순히 금융 정보를 검색해주는 챗봇이 아니다. 자산운용사와 사모펀드가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과거 투자자료와 실사보고서, 계약서, 엑셀 모델, 투자심의 기록 등을 AI에 연결한다. 새로운 투자 대상이 들어오면 과거 비슷한 딜을 찾아내고 적정 가격과 예상 IRR을 계산한다. 재무모델을 엑셀로 만들고 해당 운용사가 사용하는 양식에 맞춰 투자심의 보고서도 작성한다.
홍 대표는 “뱅킹의 애널리스트와 어소시에이트, VP까지 주니어들이 일반적으로 해오던 일들을 훨씬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 부동산 운용사가 유럽의 상업용 빌딩 투자를 검토한다면, 과거에는 애널리스트가 회사 내부에 흩어진 과거 투자 사례를 뒤져야 했다. 당시 검토했던 건물 가격과 임대료, 예상 현금흐름을 찾고 왜 투자했거나 포기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터미널X를 적용하면 AI가 과거 수십 년간 축적된 부동산 자료와 엑셀, PPT, 계약서, 투자심의 자료를 분석한다.
새로운 딜이 들어왔을 때 “과거 이 지역에서 비슷한 자산을 어떻게 평가했는가”, “현재 가격에 투자하면 IRR이 얼마나 나오는가”라고 물으면 회사가 과거 사용했던 투자 기준을 토대로 답을 내놓는다. 홍 대표는 “정보 취합과 분석 단계는 이미 실제 운용역들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사모펀드용 AI가 되려면 단순히 정보를 찾아주는 것을 넘어 운용역이 최종 판단을 내릴 때 도움을 주는 ‘thought partner’가 돼야 합니다.
AI가 이 정도까지 발전한다면 월가의 신입 애널리스트는 필요 없어지는 것일까. 홍 대표는 “미국에서는 이미 주니어 쪽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사람의 역할 자체가 사라진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사람이 해야 할 일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홍 대표는 “지금 주니어가 하던 일을 AI가 한다면 사람은 그 결과를 갖고 어떤 질문을 던질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자신만의 딜 노하우를 AI에 어떻게 녹여 남들과 다른 관점을 만들어낼 것인지가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결국 엑셀을 얼마나 빨리 만들고 자료를 얼마나 많이 찾느냐보다 ‘판단(judgement)’의 가치가 커진다는 것이다.
AI가 모든 운용사에 보급되면 투자 전략까지 비슷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홍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운용사가 수십 년 동안 쌓은 딜 경험과 내부 자료가 그 회사만의 ‘에지(edge)’이기 때문이다. “기본 모델은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데이터와 투자 철학을 집어넣고 어디까지 훈련시켜 ‘나만의 에이전트’를 만드느냐는 회사마다 완전히 다릅니다.”
월 3600달러 구독형으로 시작...6개월 만에 10만명 모아
터미널X는 2023년 여름 설립됐지만 현재의 제품을 처음부터 만든 것은 아니다. 금융에 특화된 검색 서비스부터 AI가 금융 뉴스와 데이터를 만들어주는 플랫폼까지 수많은 MVP(최소기능제품)를 만들었다가 접었다. 현재의 터미널X가 나온 것은 2025년 1월이다.처음에는 금융회사 직원이 기관 이메일을 인증하고 직접 사용하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였다. 이용료는 한 명당 월평균 약 3600달러였다. 저렴한 금액이 아니었지만 이용자는 빠르게 늘었다. 홍 대표는 “론칭 약 6개월 만에 DB에 찍힌 숫자가 10만명을 넘었다”며 “별도의 마케팅 없이 완전히 오가닉하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출시 후 6개월이 되기 전에 ARR(연환산반복매출)도 100만달러 수준에 도달했다. 초기에는 헤지펀드 종사자들의 이용이 많았다. 공개 가능한 사례로 글로벌 헤지펀드 밀레니엄매니지먼트 산하 일부 투자팀을 꼽았다. 기업 펀더멘털을 분석해 롱·숏 전략을 구사하는 투자자들에게 특히 반응이 좋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잘나가던 SaaS를 스스로 접었다 홍 대표의 선택은 여기서 다시 한번 예상과 달랐다. 빠르게 성장하던 개인 구독형 서비스를 계속 키우는 대신 사실상 접기로 했다. 홍 대표는 “기존 개인 구독도 거의 반강제로 끊고 기업형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AI에서 가장 가치 있는 데이터가 인터넷에 있는 공개 정보가 아니라 각 운용사가 내부에 쌓아놓은 자료라는 판단에서다. 홍 대표는 “운용사의 핵심 경쟁력은 수십 년 동안 축적한 투자 경험과 딜 경험”이라며 “사내 실사자료와 투자심의 자료, 계약서, 데이터와 업무 워크플로 자체가 그 회사의 에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이런 핵심 데이터를 외부 SaaS에 올릴 가능성은 낮다. 터미널X가 고객사 내부로 직접 들어가기 시작한 이유다. 필요하면 온프레미스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핵심 데이터가 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한다. 계약 단위도 완전히 달라졌다. 개인당 월 수천달러를 받던 사업에서 고객사 한 곳당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받는 기업 프로젝트로 전환했다. 홍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가운데 거의 30억원 규모인 것도 있다”고 말했다. 파일럿을 포함해 현재 20곳 이상의 기관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고객사가 늘어나면서 이근석 공동창업자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운용사마다 투자 방식과 사용하는 데이터, 보고서 양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고객사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개발자가 몇 달씩 붙어 처음부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면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터미널X가 내부적으로 만든 것이 ‘가이아(Gaia)’다. 이 대표는 이를 일종의 ‘레고’에 비유했다. LLM과 코드, 각종 데이터와 기능을 연결해 고객사에 필요한 에이전트를 빠르게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다.
이 공동대표는 “고객이 들어올 때마다 처음부터 새로 만들면 전혀 스케일할 수 없다”며 “고객의 워크플로를 잘 임베딩하면 최소한의 작업으로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GPT나 Claude 같은 LLM이 실제 금융 에이전트가 되기까지 필요한 소프트웨어 레이어 자체를 우리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터미널X는 특정 운용팀에 빠르면 한 달, 길어도 두 달 정도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에이전트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 대표가 구축 속도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프로젝트가 계속 길어지고 맨파워가 계속 투입되면 서비스 회사가 돼버립니다. 저희는 SI 업체가 아니라 테크 회사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기본 아키텍처를 거의 ‘복사해 붙이듯’ 여러 운용사에 배포하고 각 회사의 투자 노하우만 추가로 입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터미널X가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인력도 기존 개발자와 조금 다르다. FDE(Forward Deployed Engineer)다. 고객사를 직접 찾아가 운용역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어떤 업무를 하고 어디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한 뒤 이를 AI의 워크플로로 만드는 역할이다. 이 대표는 “회사별, 고객별로 필요한 컨텍스트와 워크플로를 만들어야 한다”며 “금융 도메인 지식이 있으면서 기술에도 관심이 있고 스타트업에서 일해보고 싶은 사람이 잘 맞는다”고 말했다.
“아시아 금융 AI, 미국보다 3~4년 뒤”
터미널X는 미국에서 만든 사업 모델을 한국과 일본, 홍콩 등 아시아로 확대할 계획이다. 홍 대표는 아시아 금융회사의 AI 도입 속도가 미국보다 크게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본·홍콩은 금융 AI뿐 아니라 전반적인 엔터프라이즈 AI 침투율 자체가 굉장히 낮습니다. 체감상 미국보다 3~4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생각합니다.”그에게 이 격차는 위기라기보다 사업 기회다. 홍 대표는 “미국에서 하는 모델을 아시아에도 복제해 스케일하려 한다”며 한국·홍콩·일본 등에서 금융과 기술을 동시에 이해하는 인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가 대체투자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이유는 시장이 커지는 속도만큼 사람을 계속 늘리기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자산(AUM)이 약 20조달러 규모이고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AUM은 계속 늘어날 텐데 그 돈을 관리할 펀드와 인력 숫자가 같은 비율로 늘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결국 AI를 활용해 운용역 한 명이 관리할 수 있는 자산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 대표에게 AI는 단순한 인건비 절감 수단이 아니다. 금융회사 한 명의 생산성을 몇 배로 높이는 ‘운용 레버리지’에 가깝다. 한때 그는 유튜브에서 월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한국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이제는 그 월가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홍 대표는 “지금 당장 얼마를 버느냐보다 이 제품이 앞으로 10년 동안 존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사람들이 이 제품 없이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업무 자체를 바꾸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전예진 /양지윤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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