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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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산업의 두 거인이 동시에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엔비디아와 오픈AI 이야기입니다.

3일(미국 동부시간) 엔비디아는 세계 최대 오픈소스 AI 플랫폼 허깅페이스를 129억3030만달러(약 17조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작년말 추론 특화 AI 칩 설계 업체 그록(Groq)을 200억달러에 흡수한 데 이어 두 번째로 큰 베팅입니다.
엔비디아 '빅딜'에 오픈AI "AGI 왔다"…고래싸움에 웃는 반도체 [빈난새의 빈틈없이마켓]
몇 시간 뒤 오픈AI는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최신 플래그십 모델 GPT-6 '아스트라(Astra)'를 한정 출시했습니다. AI가 스스로 새로운 환경을 학습하는 능력(ARC-AGI-3)은 전작 7.8%에서 99.9%로 압도적으로 좋아졌고, 코딩 작업을 할 때 쓰는 토큰량은 앤스로픽 최상위 모델의 2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렉 브록먼 오픈AI 사장은 "AGI(범용 인공지능) 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개방형 AI’와 ‘최첨단 폐쇄형 AI’ 진영 양쪽에서 중대한 진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최근의 살얼음판 분위기를 깨고 증시도 반응했습니다. 4일 한국 증시에선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SK하이닉스부터 SK텔레콤·삼성에스디에스 같은 데이터센터·소버린 AI 관련주까지 큰폭 뛰었습니다.

미국 증시에서도 8월 고용지표 호조로 금리가 다시 뛰면서 지수 전반이 밀리는 와중에 마이크론·샌디스크·웨스턴디지털 등 메모리와 반도체, 반도체 장비주, 전력과 데이터센터, 광통신 등 AI 하드웨어주만 강하게 상승했습니다. 반면 하이퍼스케일러와 맞춤형 반도체 대장주 브로드컴은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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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오픈모델 베팅

허깅페이스는 개발자들이 깃허브에서 코드를 주고받듯 AI 모델을 업로드하고 내려받을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입니다. 전 세계 개발자 1800만명, 기업 20만곳이 모델 300만개, 데이터셋 50만개, 애플리케이션 100만개를 이곳에서 씁니다. 연환산 매출은 약 1억5000만달러로 알려졌습니다.

엔비디아가 그 86배, 129억달러를 주고 오픈 모델 플랫폼 회사를 사들인 겁니다. 지난해 말 엔비디아가 허깅페이스에 5억달러 투자를 제안하면서 매겼던 몸값은 70억달러였는데, 8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숫자들만 놓고 보면 엔비디아의 베팅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산업 생태계를 장악해온 엔비디아의 성장 공식을 보면 이번 행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진짜 해자는 GPU(그래픽처리장치) 칩뿐 아니라 이를 구동하는 플랫폼 쿠다(CUDA)에 있습니다. GPU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자연스럽게 CUDA를 쓰게 되고, 그 위에 쌓인 소프트웨어와 개발 관행이 엔비디아 하드웨어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CUDA-X 라이브러리. 자료=엔비디아
CUDA-X 라이브러리. 자료=엔비디아
허깅페이스는 AI 모델 계층에서 CUDA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가 어떤 모델을 고르고, 어떻게 튜닝하고, 어떤 하드웨어에 배포할지 결정하는 과정의 상당 부분이 허깅페이스 플랫폼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는 이번 인수로 AI 모델의 유통 관문을 쥐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샀습니다.

엔비디아가 오래 전부터 추진해온 '개방형 전략'에도 부합합니다. 젠슨 황은 "오픈웨이트 모델은 AI 접근 기회를 넓히고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공고하게 한다"며 "세계에는 최첨단 폐쇄형 모델과 개방형 모델이 모두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엔비디아는 직접 니모트론(Nemotron)을 비롯한 고성능 오픈 모델을 개발하고 데이터, 개발도구 등을 대규모로 개방했습니다. 최근엔 개발 가속화를 위해 60억달러에 AI 스타트업 풀사이드의 모델 개발 기술 사용권도 확보했습니다. 젠슨 황은 허깅페이스를 인수한 후에도 개방형으로 유지하고, 엔비디아 칩 사용을 강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29억달러짜리 '저렴한' 보험"

이타심 때문이 아닙니다. 현재 엔비디아 GPU를 가장 많이 사가는 고객사는 최첨단 폐쇄형 모델 시장을 장악한 오픈AI와 앤스로픽, 구글 같은 대형 AI 랩과 하이퍼스케일러입니다. 이들은 자체 칩을 개발하며 엔비디아 의존도 낮추기에 골몰하고 있지요. 엔비디아로서도 소수 고객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협상력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개방형 AI 생태계를 장악하고 오픈 모델 시장도 키워 더 많은 기업과 정부, 개인들이 더 빠르게 AI를 도입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젠슨 황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딥시크든 키미든 클로드든 미스트랄이든, 엔비디아 칩의 설치 기반과 CUDA 생태계가 가장 넓기 때문에 사실상 전 세계 모든 오픈 모델이 엔비디아 위에서 개발되고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레이먼드 제임스는 “이번 인수는 맞춤형 칩에서 워크로드를 실행하는 폐쇄형 모델 빌더의 증가 추세에 대비해 엔비디아가 헤지 수단을 확보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배런스는 "허깅페이스의 인수가는 비싸보이지만, 시가총액 5조달러짜리 엔비디아의 보험으로는 싸다"고 했습니다.
엔비디아 '빅딜'에 오픈AI "AGI 왔다"…고래싸움에 웃는 반도체 [빈난새의 빈틈없이마켓]
오픈 모델의 확산은 수요 곡선도 바꿉니다. 지금까지 폐쇄형 모델 API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기업은 '토큰당 얼마'를 내고 클라우드에서 AI를 빌려 썼습니다. 비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 위주로 도입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가성비 오픈 모델이 늘어나면 비용 문턱에 막혀 AI를 못 쓰고 있던 수요도 새롭게 열립니다. 특히 데이터 주권과 보안이 걸린 기업과 정부들은 개방형 모델을 토대로 자기 도메인에 특화한 AI를 온프레미스나 독자 인프라에 직접 구축합니다. 엔비디아의 AI 팩토리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엔비디아는 2028 회계연도 매출 성장률 70%라는 놀라운 가이던스를 제시하면서 하이퍼스케일러 외에도 네오클라우드, AI 모델 개발사, 소버린, 엔터프라이즈, 온프레미스 AI 등으로 투자 수요가 다양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모델 경쟁 → 효율 상승 → AI 가격 하락 → 배포처 증가 → 토큰·에이전트 사용량 폭증 → 총 컴퓨트 증가 → 엔비디아 시스템 수요 증가'의 선순환입니다. 어떤 모델이 이기든 승자는 엔비디아 인프라가 되는 그림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허깅페이스 인수도 그 조각입니다.

10만 GPU로 만든 회심의 모델

최첨단 폐쇄형 진영의 속도전도 숨 가쁩니다. 오픈AI가 같은 날 공개한 GPT-6 아스트라는 범용 벤치마크 점수는 높지 않지만,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에이전트의 장기 업무 능력과 토큰 효율 부문에서 놀라운 개선을 보여줬습니다. 이영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AGI에 대해 보편적으로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엔터프라이즈 업무를 위한 범용 지능이라는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모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아스트라는 텍사스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에서 엔비디아 GPU 10만개 이상을 돌려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오픈AI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컴퓨팅 파워를 늘리면 AI 모델의 성능이 향상된다는 'AI 스케일링 법칙'에 또 한 번 힘을 실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컴퓨팅과 메모리 수요를 예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목표는 모든 지능 수준에서 최고의 가격 대비 성능"이라며 "앞으로도 가격을 극적으로 내리면서도 계속 엄청난 매출을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능을 싸게, 풍부하게 만들겠다는 선언은 젠슨 황이 가성비 오픈 모델 확산으로 도모하는 목표와 맞닿는 지점입니다.
GPT-6 아스트라는 에이전트의 코딩 능력을 평가하는 벤치마크에서 기존 GPT-5.6 Sol과 클로드 계열보다 낮은 API 비용으로 더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다. 자료=오픈AI
GPT-6 아스트라는 에이전트의 코딩 능력을 평가하는 벤치마크에서 기존 GPT-5.6 Sol과 클로드 계열보다 낮은 API 비용으로 더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다. 자료=오픈AI
그동안 AI 투자자들은 '가성비' 오픈 모델의 약진으로 토큰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는 것을 두고 끝없이 논쟁을 벌여왔습니다. 토큰 가격이 하락하는 속도와, 그래서 토큰 소비가 늘어나는 속도 중에 무엇이 더 빠를지에 따라 천문학적인 AI 투자의 수익률이 갈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세론은 '싸지면 더 쓴다'는 제번스의 역설을 들어 사용량 증가가 더 빠르다고 주장합니다. 신중론은 단가가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의심합니다. 실제 토큰 가격을 추적하는 실리콘데이터 지수는 8월 29% 떨어졌습니다. 지난 7월 이후 AI 하드웨어에 쏠렸던 수급이 풀리는 동안 이 의심은 매도세를 한층 자극했습니다.

아스트라의 등장은 이 우려를 상당 부분 씻어냈다는 게 골드만삭스의 평가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지능의 비약적 발전은 토큰을 더 쓰려는 욕구와 필요를 다시 깨운다"며 토큰 가격 하락이 아스트라 등장 이전만큼 큰 문제가 아니게 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능력의 도약이 확인되면 "모두가 추격에 나서고, 지출 사이클이 유지되며,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해 쌓아 올릴 여지가 여전히 유의미하게 남아 있다는 믿음"이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제번스 역설'에 베팅한 시장

4일 증시도 오랜만에 이 믿음을 가격에 반영했습니다. 개방형이든 폐쇄형이든, AI 발전과 확산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컴퓨트와 메모리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데 시장이 베팅하면서 하드웨어주에 돈이 몰렸습니다.

모두가 웃었던 건 아닙니다. 구글, 앤스로픽, 오픈AI 등의 맞춤형 칩(ASIC)을 만드는 브로드컴은 상대적으로 부진했습니다. 오픈 모델의 확산은 범용 인프라에 더 유리한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하이퍼스케일러 중에서 오픈 모델에 가장 '진심'인 메타 주가가 덜 하락한 것도 이런 이유로 풀이됩니다.

메모리는 어떤 모델이든 에이전트가 더 오래 일하고 문맥이 길어질수록 중요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진영을 가리지 않는 수혜처로 지목됩니다. 엔비디아와 ARM홀딩스와 AMD, 인텔이 경쟁하는 CPU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론 수요 급증은 추론 특화 칩과 클라우드를 제공하는 세레브라스 주가도 폭등시켰습니다.
LLM 토큰 가격은 5월 이후 절반 가까이 떨어진 반면 DDR5 D램 현물 가격은 같은 기간 가파르게 상승했다. 자료=UBS
LLM 토큰 가격은 5월 이후 절반 가까이 떨어진 반면 DDR5 D램 현물 가격은 같은 기간 가파르게 상승했다. 자료=UBS
AI 도입 속도가 빨라질수록 온프레미스 인프라 관련주도 주목도가 높아집니다. 델·HPE·슈퍼마이크로 같은 엔터프라이즈 서버 업체, 네비우스·코어위브·아이렌 같은 네오클라우드, 그리고 국내에서 소버린 AI·데이터센터 테마로 묶이는 기업들이 오픈 모델 확산의 수혜주로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개방형이든 폐쇄형이든, AI 사용량이 늘수록 공급 부족이 심각한 전력망과 데이터센터를 짓는 기업들 - 버티브·이튼·블룸에너지·캐터필러 등 - 도 강했습니다.

이날 AI 하드웨어의 독주는 그동안 돌아섰던 수급이 다시 쏠리면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습니다. 9월의 불리한 계절성과 여러 매크로 변수들과 겹치면 상승세는 언제든 꺾일 수 있습니다. AI가 구축기에서 확산기로 넘어갈수록 초기 인프라·하드웨어가 수혜를 독점하던 구간은 끝나가고, AI 인프라 소프트웨어 같은 다음 단계로 자금이 계속 분산될 수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합니다. 성급한 올인은 위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번 반등이 보여준 것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AI 단가 하락=하드웨어 수요 둔화’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능이 싸질수록 새로운 수요가 더 빨리 생겨난다면, 가격 하락은 AI 투자의 적이 아니라 다음 수요를 여는 촉매가 됩니다. UBS는 "AI 추론에서 하드웨어 로드맵의 초점이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 인터커넥트로 옮겨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게다가 금리 상승은 미래 성장보단 당장 이익과 현금흐름이 가장 튼튼한 기업에 대한 선호를 높일 수 있습니다. AI 하드웨어의 반등을 기술적인 현상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