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출처: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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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창원지방법원이 이른바 ‘구하라법’을 적용해 부모의 상속권 상실을 인정한 첫 공개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이혼 후 자녀의 양육과 부양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부모가 자녀 사망 후 상속권을 주장한 사안에서 법원은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구하라법 입법운동을 함께했던 저로서는 이번 판결은 매우 뜻깊게 다가옵니다. 혈연이라는 이유 만으로 부모의 권리만 인정되고 책임은 묻지 못했던 우리 상속법의 오랜 모순이 비로소 현실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시작에 불과



그러나 이번 판결은 구하라법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합니다. 구하라법의 핵심은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이라는 가치판단적 개념에 있습니다. 입법은 원칙을 제시할 뿐이고, 그 원칙을 구체적인 기준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법원의 판례입니다. 앞으로 어떠한 경우에 상속권 상실이 인정되고, 어떠한 경우에는 인정되지 않는지를 축적된 판례를 통해 구체화해 나가야 합니다.

실제 사건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지만 자녀와 지속적으로 교류한 부모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양육비는 지급했지만 부모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부양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경우와,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책임을 회피한 경우 역시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만나지 못한 것이 스스로의 선택인지, 다른 일방 배우자의 면접교섭 방해 때문인지도 구별해야 합니다. 따라서 법원은 단순히 양육비 지급 여부만이 아니라 경제적 지원, 정서적 돌봄, 관계 유지 노력, 부양의무 불이행의 기간과 정도, 책임 회피의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심리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외국의 사례 역시 이러한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주에선 부모가 일부 양육비를 지급했더라도 오랜 기간 부모로서의 보호와 양육을 사실상 포기했다면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은 사례가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녀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사정이 있었고 관계 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경우엔 상속권 제한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즉 단순히 연락 횟수나 양육비 지급 여부만이 아니라 부모로서 실질적인 책임을 다했는지가 핵심적인 판단기준이 됐습니다. 우리 법원 역시 이러한 비교법적 경험을 참고해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의 판단요소를 보다 정교하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입증의 문제, 실무상 가장 큰 어려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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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상 가장 큰 어려움은 입증의 문제입니다. 부양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존재하는 사실보다 오히려 입증하기가 어렵습니다. 자녀는 이미 사망했고 수십 년 전의 양육과 교류를 증명할 자료도 대부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학교기록, 병원기록, 양육비 지급내역, 면접교섭 기록, 가족과 주변인의 진술 등 다양한 간접사실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청구인에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부담시키는 방식으로는 구하라법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습니다. 법원이 적극적인 석명과 증거조사를 통해 실질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울러 현재 구하라법 관련 사건들이 전국 법원에 상당수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공개된 판결은 많지 않습니다. 법률의 예측가능성과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인용판결뿐 아니라 기각판결도 적극적으로 축적되고 공개돼야 합니다.

어떤 사안에서는 상속권 상실이 인정됐고, 어떤 사안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는지를 국민과 실무가 함께 확인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일관된 법적 기준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상속권 상실 제도는 법관의 가치판단이 중요한 영역인 만큼, 축적된 판례가 곧 법률의 실질적인 내용이 됩니다.

구하라법은 부모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닙니다.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끝내 외면한 사람이 오로지 혈연만을 이유로 상속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는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법입니다.

이번 첫 공개 판결은 그 출발점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판례의 축적입니다. 판례가 쌓일수록 구하라법은 더욱 명확해지고 국민은 법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입법이 정의의 문을 열었다면, 그 문을 지나 우리 사회의 새로운 상속질서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법원의 판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