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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효율이 핵심 경쟁력이 되는 네가와트 시대의 도래로 화합물 전력반도체가 산업의 심장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한국은 과거의 자산 매각 아픔을 딛고 정부 주도의 국가전략기술 지정과 밸류체인 통합 솔루션 확보를 통해 글로벌 시장 주도권 탈환에 나서고 있다.
"게임체인저의 본산은 삼성 부천공장"
9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최근 전기차 구동계(인버터·모터 드라이브 등)의 핵심 부품으로 기존 실리콘(Si) 전력반도체 대신 탄화규소(SiC·실리콘카바이드) 기반 전력반도체 채택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SiC 전력반도체의 전기차 부문 점유율은 2024년에 약 33.2%에 달했다.
전기차에서 전력반도체는 배터리와 모터 사이에서 직류(DC)를 교류(AC)로 바꾸며 전압·전류를 제어해 구동계를 작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SiC 전력반도체를 쓰면 같은 배터리를 쓰더라도 주행거리를 수십㎞ 늘릴 수 있고, 충전·구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과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역설적이게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뼈아픈 유산’이 자리 잡고 있다. 경기 부천에 위치한 미국 온세미컨덕터의 생산 거점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1974년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며 한국 반도체 신화의 초석을 닦았던 태동지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전력반도체 사업부를 미국 페어차일드에 매각했다. 이 자산은 2016년 온세미가 페어차일드를 인수한 뒤 오늘날 글로벌 전력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는 전략 요충지가 됐다.
테슬라와 현대차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채택하는 SiC 전력반도체가 바로 이곳에서 양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전력반도체 산업의 출발점을 쥐고 있었음에도 이를 자국 생태계로 확장하지 못한 채 글로벌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흡수당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 네가와트 핵심 두뇌
글로벌 싱크탱크 RMI는 인공지능(AI)과 전기화가 가속화되는 현 시점을 ‘제6의 기술혁명, 네가와트(Negawatt) 시대’로 규정했다. 네가와트는 땔감-석탄-석유-전기(원자력·신재생)로 이어진 에너지 진화 이후, 에너지 효율 자체를 하나의 자원으로 보는 개념이다.에너지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이미 생산된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기술·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이 변화의 핵심에 탄화규소(SiC)·질화갈륨(GaN) 등 화합물 전력반도체가 부상하고 있다.
태양광·풍력과 배터리, 전기차, AI데이터센터 등에서 생산되거나 소비되는 전기는 대부분 직류(DC)와 교류(AC)를 오가며 변환된다. 이때 발생하는 손실이 전체 에너지 효율을 좌우한다. 실리콘(Si) 기반 전력반도체는 이미 효율 자체는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고전압·고온 환경에서는 물성 한계가 뚜렷하다. 반면 SiC와 GaN은 더 높은 전압과 온도를 견디며 스위칭 손실과 냉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덕분에 동일한 전력을 처리하면서도 장비 크기를 줄이고, 시스템 전체의 에너지 손실을 낮출 수 있다. 전력 효율을 소폭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전력 시스템의 구조 자체를 단순화하는 기술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2018년 테슬라의 전기차 SiC 전력반도체 채택이다.
이후 화합물 전력반도체는 전기차를 넘어 태양광 인버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데이터센터 전원장치 등으로 적용 범위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구상모 산업통상부 차세대전력반도체추진단장(광운대 전자재료공학 교수)은 “전력반도체는 직류 전기를 교류로 바꿔주는 ‘환전소’인데, 화합물 전력반도체는 수수료(에너지 손실)가 거의 없는 최첨단 환전소인 셈”라고 말했다.
○ 통합 솔루션 필요
현재 글로벌 화합물 전력반도체 시장은 소수의 해외 선도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국내에도 웨이퍼 제작(소재)부터 소자, 설계(IC), 제조(파운드리), 패키지·모듈에 이르는 밸류체인이 형성돼 있지만, 개별 기업의 규모와 사업 성숙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정부 집계 기준으로 국내 화합물 전력반도체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기업은 총 20여곳이다. QY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화합물 전력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1억9000만달러(약 2773억원)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의 SiC 소자 매출은 약 215억원으로, 전체 시장의 약 10% 수준에 그친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소품종·대량 생산 구조에 익숙했던 만큼, 다품종·고신뢰가 요구되는 전력반도체 산업에서는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부 역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인식하고, 화합물 전력반도체를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단순 연구개발(R&D) 지원을 넘어, 실증과 수요 연계를 통해 초기 시장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화합물 전력반도체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재정ㆍ세제 지원 혜택을 늘리고, 국민성장펀드 지원도 검토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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