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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삼성증권 채널솔루션전략팀 수석

최근 사모펀드(Private Equity, 이하 PE)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는 단연 ‘세컨더리(Secondary) 마켓’이다. 기존에는 대형 기관투자자들만 알고 활용하던 영역이었지만, 높은 금리와 산업 구조조정 국면이 겹치면서 빠른 속도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흡수하고 있다. 만약 PE 시장을 하나의 동네라 비유한다면, 세컨더리 마켓은 LP(투자자)와 GP(운용사)들이 서로 사고 팔기를 할 수 있는 일종의 ‘당근마켓’ 같은 존재다. 다만 거래 대상이 자전거나 태블릿PC가 아니라 수천억 원 규모의 비상장 지분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기본적으로 PE 투자는 ‘장기 폐쇄형’, 즉 오랜 기간 돈이 묶이는 구조다. 한 번 10년짜리 펀드에 투자하면 중도 환매가 불가능하다. 경기 사이클, 금리, Exit 환경이 흔들릴 때 LP(투자자)와 GP(운용사)는 각각의 사정으로 인해 ‘만기 전에 포지션을 조절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 공백을 메우는 거래가 바로 세컨더리다. 거래 방식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LP주도(LP-Led) 거래이다. 가장 전통적인 형태이며, 기존 투자자(LP)가 자신이 들고 있는 펀드 지분을 다른 투자자에게 넘기는 형태이다. 예컨대 2018년에 10년 만기로 투자한 A 펀드가 있다고 하자. 회수 속도가 늦어지고 포트폴리오 조정 필요성이 커지면, LP는 “남은 3~4년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일부라도 환매하고 싶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때 신규 투자자는 할인된 가격에 지분을 매입하고, 기존 LP는 펀드 만기 이전에 유동성을 확보한다. 기존 투자자의 Exit를 보조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당근마켓식 ‘중고거래’와 가장 유사하다.

두 번째는 GP주도(GP-Led) 거래이다. 이는 기존에 투자하고 있는 ‘펀드 자산’을 옮기고 새 투자자를 모집하는 구조이며, 최근 5년간 급속도로 성장한 형태다. 특정 포트폴리오 기업을 새로운 비히클(Vehicle)로 옮기고, 세컨더리 투자자들이 여기에 자금을 넣는 방식이다. 펀드를 운용하던 GP는 편입 자산을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벌고, 추가 자금을 투입해 기업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 LP 입장에서는 “지금 현금화할지, 계속 투자를 이어갈지”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최근 세컨더리 전략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질적으로는 두 가지 구조적 장점이 있다.
우선 세컨더리 전략은 금리 인하기에 가장 유리한 PE 전략이다. 고금리 시기에는 투자 자산의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하는 할인율이 높아 현재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금리 인하 국면에 진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할인율이 낮아져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가 상승하고, 아울러 M&A나 IPO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여기서 세컨더리 투자자는 할인된 가격으로 이미 담겨 있는 포트폴리오에 진입해, 금리 인하가 가져오는 가치 회복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 즉, “할인 매입 → 금리 인하 효과 → 가치 회복”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흐름을 누릴 수 있는 전략이 세컨더리다.

두 번째 장점은 J커브(J-Curve)가 없다는 점이다. 초기 투자비용이 먼저 나가고 기업가치는 천천히 오르는 PE 특성상, 대부분의 펀드는 초기 수년간 수익률이 마이너스 구간을 통과한다. 이것이 잘 알려진 J커브 효과다. 하지만 세컨더리는 다르다. 매입 대상 펀드는 개별 기업에 투자가 이미 완료되었으며, 어느 정도 기업 가치가 형성된 포트폴리오이다. 이 단계에서 투자자가 ‘중간 진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초기 부진구간이 없다. 다르게 말하면, 이미 J커브의 아래쪽을 지나 올라가는 구간에 올라타는 투자다. PE 투자의 큰 진입장벽이 사라지기 때문에, 금리 인하로 멀티플이 회복되는 시점과 맞물리면 매력이 극대화된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세컨더리 시장의 성장세는 놀랍다. 사모대체시장 전문 기관인 Preqin에 따르면, 2010년 954억달러에 불과하던 운용 자산은 작년 기준 5222억달러를 기록하여 약 447%의 성장을 이루었다. 이는 같은 기간 PE시장 전체 규모가 316% 성장한 것보다 더욱 빠른 페이스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GP 주도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세컨더리는 이제 ‘보조 시장’이 아니라 PE 생태계의 핵심 유동성 순환 구조로 올라섰다.

다만 국내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아직 세컨더리 전략에 대해 접근이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국내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리테일 고객 대상 상품들이 일부 출시되고 있기는 하나, 대개 사모펀드의 형태라 최소가입금액 등의 제약 요건이 까다로운 것이 현실이다. 다만 전반적인 사모대체 투자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만큼, 세컨더리 전략 역시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성이 점차 좋아질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