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돌담길·빨래터 닮은 개울
민초들의 삶, 선비들 풍류 담아
트럭 300대분 돌로 개울 조성
파청헌 오르면 경관이 한눈에
정원의 백미는 재예당·원주암
화선지 위 점처럼 여백의 미 경험
한국 정원은 사실 그 맥이 끊겨온 건 아닐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정원을 가꿀 여력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세계적인 정원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 선조의 정원이 남아있다면 어떤 형태일까. 이달 초 문을 연 경기 양평의 ‘메덩골 한국정원’은 이런 물음에 답을 주는 장소다.
한국의 미학·철학을 담다
숲의 끝에는 남도 돌담길이 있다. 영화 ‘서편제’ 속 청산도 남도길을 닮았다. 돌담길 사이마다 목화, 벼, 고추, 가지 등이 심겨 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의 밭작물이 특별함을 지니는 정원수가 된다. 벼락을 맞아 반으로 갈라진 회화나무는 동네를 지키던 서낭당 나무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빨래터를 형상화한 개울이 나온다. 산속의 자연스러운 개울로 보이지만 그 역시 한국적 분위기를 살려 조성된 인공 개울이다. 수석 전문가가 어울리는 돌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트럭 300대 이상의 돌을 가져와 자연스러운 개울을 만들었다. 개울을 지나면 ‘선비의 풍류’라는 두 번째 공간이 시작된다. 한옥 ‘파청헌(把靑軒)’에 올라 대청마루에 앉으면 한국정원 너머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파청헌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 ‘앞산의 푸르름을 잡았다’는 뜻이다.
파청헌을 뒤로하고 걸어가면 길 끝에서 용반연(龍返淵)을 만나게 된다. ‘용이 돌아온 연못’이라는 뜻. 입신양명에 성공한 선비가 고향으로 돌아온 모습을 뜻한다. 맑은 물 안에는 버들치와 산천어가 떼 지어 다닌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치지 않고 정원을 가꾸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두꺼비 모양의 바위 ‘서섬암(瑞蟾巖)’이 듬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승효상 선곡서원
선곡서원은 안동 병산서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물로 선화(旋花, 메꽃의 한자 이름)가 피어 있는 골짜기, 즉 메덩골에 있는 서원을 뜻한다. 선곡서원 제일 앞의 취병루에 오르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경치에 취하게 된다. 그 앞의 돌 정원은 류성룡 선생과 그의 제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불교를 품은 작은 암자 ‘경외암(逕外庵)’을 만나게 된다. ‘이 세상 밖에 있는 암자’라는 의미다.한국정원은 면적만 2만3000㎡에 달한다. 하지만 세계적 정원을 꿈꾸는 메덩골정원(총 20만㎡ 규모)은 아직 진행형이다. 한국 역사와 니체 철학을 담은 현대정원은 내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사업을 계획한 지 14년 만이자 설립자의 사재 1000억원 이상이 투입된 결과다.
메덩골정원 입장료는 성인 기준 5만원이다. 인터넷으로 예약하거나 현장에서 발매하면 된다.
양평=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