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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원래 고통이다…비명 터져나오는 영화 '어글리 시스터'

[arte] 오동진의 굳세어라 예술영화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의 <어글리 시스터>
[관련 칼럼] ▶▶▶ 신데렐라의 그로테스크 판타지? 이건 우리의 지독한 현실이다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Lukasz Bak / 출처. IMDb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Lukasz Bak / 출처. IMDb
우리에겐 여전히 많은 부분 미지의 나라인 노르웨이産 영화 <어글리 시스터>는 가치의 전복(顚覆, 뒤집기)이 주는 역겨움이 가득한 작품이다. 그런데 그 경멸감이 오히려 기이한 쾌감으로 다가선다. 성적으로는 사디스트 쪽보다 마조히스트 쪽에 가깝다. 이 작품은 신데렐라 동화(디즈니 버전보다 본래 잔혹동화 쪽에 훨씬 더 가까웠다)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노르웨이 여성 감독 에밀리 블리치펠트는 영리하게도 신데렐라(재투성이 엘라라는 뜻으로 구전동화인 만큼 나라별로 이름이 달랐다) 동화를 가져오되 신데렐라가 아니라 그녀의 의붓동생 중 한 명을 주인공으로 골랐다. 이 영화는 신데렐라를 학대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데렐라보다 더 예뻐지고 싶어 하는 의붓동생이 자기를 끝없이 학대하다 결국 미쳐가는 이야기이다. 잔혹하고 흉물스러우나, 그럼에도 진실되다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옛 구전동화는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순진무구한 이야기를 뒤집어야 진실이 나오는 경향성을 보인다.

최근의 유럽 감독들, 특히 여성 감독들 상당수가 혐오와 역겨움으로 가득한 작품들을 유행처럼 내놓고 있다. 당연히 거친 표현 수위로 넘쳐난다. 세상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늘 구토가 이는 법이다. 당연히 그 표현 수위는 적나라할 수밖에 없다.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2021)이 그랬고 코랄리 파르쟈의 <서브스턴스>(2024)가 그랬다.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고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으며 선이 있으므로 악이 있다. 그 상대의 존재를 깨닫거나 인정하는 것은 때론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사람은 늘 선한 쪽에만 그리고 아름다운 쪽에만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람이 늘 선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데다 대체로 악하고 추하다는 걸 알리는 건 이단과 불온에 속하는 일이다. 그건 대개 미국 할리우드의 디즈니 월드가 만들어 낸 착시이자 판타지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속고 있는 걸 알면서도 속고 있지 않다고 자위하며 살아간다. 그 대표적인 얘기가 신데렐라 이야기이다. 세상에 신데렐라는 없다. 사람들은 그걸 잘 알지만 그걸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영화는, 문학은, 그림은, 혹은 예술은 현실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게 하는 데 앞장서려 한다. <어글리 시스터>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Lukasz Bak / 출처. IMDb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Lukasz Bak / 출처. IMDb
에밀리 블리치펠트의 <어글리 시스터>에서 주인공은 엘비라(레아 미렌)이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 레베카(아네 달 토르프)가 귀족인 오토 본 모르겐스티에르네와 재혼하자 동생인 알마(플로 파겔리)와 함께 그의 스웨들란디아 성으로 따라 들어 온다. 거기서 만나는 의붓언니가 바로 아그네스 빅토리아 본 모르겐스티에르네(테아 소피 로흐 내스)이다. 그리고 이 아그네스가 바로 재투성이 하녀가 되는 신데렐라이다. 아그네스가 하녀로 전락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성의 마부인 이사크와의 정사를 들켜서이다. 의붓엄마 레베카는 아그네스를 창녀라 욕하며 집안 하녀로 ‘강등’시킨다. 영화 <어글리 시스터>는 배경이 18세기로 보이는데(스웨들란디아 성이 바로크 건축 양식이다) 영화는 이때의 사람들이 지닌 성 의식과 문란한 성관계, 여성의 외모 지상주의, 그것이 연결되는 물신성(物神性)의 극치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레베카는 의붓딸 아그네스가 누군가와 ‘붙어먹었다’라며 그 부도덕함만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상대가 마부라는, 즉 하층 천민이라는 점 때문이다. 레베카는 아그네스보다 더 남자를 밝히고 젊거나 나이 먹거나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침대로 남자를 끌어들인다. 레베카가 늙은 귀족 오토의 재취가 된 것은 당연히 그의 육체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돈 때문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 늙은이, 잔뜩 빚만 남겨 놓고 덜컥 죽어 버린다. 레베카는 돈이 필요하다. 레베카는 (물질주의적으로) 상심한다. 그녀는 자신처럼 ‘처진 가슴에 칠칠치 못한 딸까지 둘 딸린 과부를 누가 거들떠보겠느냐’고 한탄한다. 이제 그녀의 자산은 오직 엘비라 뿐이다. 둘째 딸 알마는 초경도 아직 안 한 상태다. 마침 왕자인 율리안(이사크 칼름로트)이 짝을 구하는 무도회를 연다고 한다. 엘비라는 평소 율리안이 쓴 시(도 아닌 시)집의 열혈 팬이다. 마침 잘됐다. 모녀는 모처럼 힘을 합친다.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일단 엘비라의 치아 교정기를 제거한다. 코를 높이는 수술을 한다. 이건 인중을 망치로 찍어 콧대를 높이는 고문 의술이다. (마취 같은 건 없다) 인조 속눈썹을 실로 꿰매 붙인다. (이때는 그나마 최신 마취약이라며 코카잎 추출물을 시술 부위에 살짝 바르긴 한다) 외과 의사의 진료실 앞에는 이런 말이 써 붙어 있다. ‘아름다움은 고통이다’ 엘비라는 엄마 몰래 촌충알까지 먹는다. 뱃살을 빼기 위해서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싶고 18세기의 의학적 무지를 보여주는 얘기 같지만(당시 실제로 빈번하게 시도되던 일이라고도 한다) 신기하게도, 무엇보다 일시적으로, 엘비라는 예뻐지기 시작한다.

여성 외모의 역사, 그 잔혹사는 어쩌면 매춘의 현대사를 닮아있다는 지적이 이 영화 <어글리 시스터>에는 우회적으로 담겨있다. 여자가 예뻐지겠다는 욕망은 여성성 자체에서 발현되는 것이지만 물질적 욕망이 개입되면서 그 욕망은 거래를 위해 중요한 모토가 된다. 예뻐지면 남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자신을 좋아하는 ‘돈 많은 남자’를 찾아낼 수 있다. 매춘은 남자의 성욕을 돈으로 거래하는 직접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미인대회(무도회에서 왕자에게 알현하는 것) 역시 사실은 그 이면에 여자와 남자를 거래하되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도덕의 수준을 지키는 것인 양 위선을 떠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세상사는 다 같은데 어떤 계층, 어떤 계급의 위치와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엘비라가 성형을 하고 몸을 바꾸려고 기를 쓰는 것은 자신의 물적 가치를 높이려는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건 신데렐라인 아그네스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인데 그녀는 마부인 이사크와 마구간에서 섹스를 나누면서도 자기는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고 얘기한다. 죽은 아버지 오토는 성 어딘가 구석 창고에서 썩어 가고 있으며 구더기가 들끓는데도 계모인 레베카는 돈이 없다며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영화는 시체 위를 기어 다니는 구더기와 촌충알을 먹은 후 계속해서 꾸르륵 소리가 나는 엘비라의 배를 보여준다. 엄마인 레베카는 자기 몸으로 여러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데 엘비라의 무도회용 드레스를 가져온 남자에게 복도 첫 방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레베카는 섹스 중독이지만 그걸 돈으로 바꾸는 중으로 보인다.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온통 뒤죽박죽이다. 모두가 왕자의 눈에 들어 그에게 선택되고 그의 재산을 가져오는 것이 목표다. 아름다움과 성(性), 돈과 지위(권력)는 동음이의어이다. 그건 18세기 바로크 시대나 21세기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성적 욕망이 물신의 저울에 올라섰던 저 시대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은 얘기하고 있다. 물론 거꾸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숱하게 위장되고 가공된 형태의 전래동화를 과거 시대의 내재화(內在化)된 시선으로 뒤집으면 얼마나 추악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18세기로 바라보는 21세기, 21세기로 바라보는 18세기 여성 성(性)의식의 정치학이 읽힌다. 바로 그 같은 역사적 변증법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힌다. 세상의 진실은 정면과 후면, 현재와 과거 모두를 아울러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어글리 시스터>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어글리 시스터>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후반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다. 이 영화의 광고문구는 ‘구두가 발에 맞지 않으면 맞게 만들면 돼’이다. 상상할 수 있는 사태가 벌어진다. 문제는 엘비라가 반대 발을 잘랐다는 것이고 엄마인 레베카가 제 짝을 마저 잘라준다는 것이다. 이 모든 광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바로 동생 알마이다. 그녀는 이 드라마 전체의 인물 중 가장 이성적인 캐릭터이다. 알마는 ‘그렇게’ 영화 속에서 성장한다. 그녀는 화장기 없는 얼굴이고 드레스를 입지 않는다. 알마는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 자신일 수도 있고 성찰을 이루어 낸 우리 자신들일 수 있으며, 세상을 직시하게 된, 그래서 포용적이기까지 된 깨우친 민중들일 수도 있다. 인류 역사가 18세기에서 21세기까지 이어져 오게 된 이유는 알마 같은 존재들 때문이다.

전래동화 신데렐라 이야기를 발칙하고 파격적으로 뒤집은 만큼 올해 1월의 제41회 선댄스영화제 미드나잇 부문, 올해 2월의 제75회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다. 대체로 심야에 상영됐고 객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는 후문이다. 원제는 ‘어글리 스텝시스터’이다. 아그네스는 그래도 ‘본’자가 들어가는 집안 후손이지만 엘비라는 지참금이 있을 수 없는, 오로지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집안의 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CGV 체인망에서만 독점 개봉했다. 8월 28일 현재 그래도 2만 명이 넘는 관객이 봤다. 나름대로 선전 중이다.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출처. IMDb
영화 <어글리 시스터> 스틸컷 / 출처. IMDb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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