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하며 소통하기 위해 시작된 곳,
차찬텡(茶餐廳)
[손일훈 (Il Hoon Son) - Meditation II]
21세기로 넘어가던 20여년 전 그 시절은 마치 그 세기의 변화처럼 나도 10대에서 20대로,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때였었다. 세기말을 겪고 수능을 치르고 입시를 끝내고 나는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시작하였었다. 많은 영화를 대여해서 보며 울고 웃었었고 또한 빌려온 책들과 만화책들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읽었었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의 가사처럼 회색의 하늘이었고 어느 추운 겨울날 보게 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봄이 찾아오기 전의 잿빛의 무거운 겨울날이었지만 이 영화가 그날의 하늘 모습과 공기의 냄새를 평생 기억하게 해주었다.
[The Mama's And The Papa's - California Dreamin]
경찰663(양조위)이 종이컵의 블랙커피를 외로이 마시는 모습에, 그런 양조위가 마음에 조금씩 들어오는 점원 페이(왕페이)가 그를 알고 싶은 마음에 블랙커피를 마셔보는 장면을 통해서 나도 처음으로 블랙커피를 마신 날이었다. 아마 그 나이 때 나도 그 마음을 느끼고 싶었었나 보다. 분명 40대인 지금 그 영화를 본다면 나의 세기말 시절의 느낌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는 왕페이와 연인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양조위가 만나는 매개체인 차찬텡도 초기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과 한족들이 서로 식사하며 소통하기 위해 시작된 장소였다고 한다. 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며 변화가 생겼지만, 혼돈의 그 시절 그들은 서로 다른 음식을 공유하며 서로를 조금이나마 알아가려 하지 않았을까?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지나가던 손님을 사랑방에서 맞이하고 그 집의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손님의 지나온 이야기를 먼저 들으며 스쳐 지나가는 인연 또한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한 번 만난 인연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을 뿐이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지휘자 지중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