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꼬박 하루가 필요하다. 통영이 그러하다. 야간관광 특화도시로 선정된 통영의 밤부터 문학·음악·그림이 춤추는 낮까지, 고성반도 끝자락 바다 마을의 하루를 담았다.
일몰에서 자정까지, 통영의 밤
‘동양의 나폴리’. 통영을 설명하기에 부족함 없는 문구지만 이제는 하나를 추가해야 할 듯싶다. 밤‘도’ 아름다운 도시, 통영.2022년 통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제1호 야간관광 특화도시로 지정됐다. 홍콩의 ‘심포니 오브 라이트’라든지 호주의 ‘비비드 시드니’에 버금가는 통영만의 야간관광 콘텐츠를 발굴해 국내 대표 야경 도시로 발돋움하겠다는 통영시의 의지가 높게 평가받았다.
바다를 보는 정자, 관해정(觀海亭)에 오르니 때마침 낙조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다도해를 수놓은 크고 작은 섬이 꽃이 돼 떠오른다. 미륵도에 왔다면 동백나무 가로수가 가득한 산양관광도로를 달려야 한다. ‘동백로’라고도 불리는 이 일주도로는 동백꽃이 만개하는 2~3월 놓치지 말아야 할 드라이브 코스다.
통영대교 야경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충무교에 오르면 된다. 은은하게 빛나는 충무교 자체도 아름답지만, 시시각각 옷을 갈아입는 통영대교와 양옆으로 뻗은 통영해안로·미수해안로를 감상하기 제격이다.
통영대교를 뒤로하고 도보로 약 5분 거리, 통영해저터널 입구가 은은한 빛을 뽐낸다. 1932년에 만들어진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 당시 통영 내륙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를 증명하듯 양쪽 입구 현판에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용문(해저터널)을 거쳐 산양(미륵도)에 통하다’라는 뜻이다. 483m 길이의 터널을 걷는 동안 해저를 가로지른다는 사실이 새삼 묘하게 느껴지고, 90년 넘게 통영을 지켜온 터널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포토존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정교하게 조성된 스폿들과 라이트 볼을 활용한 깜짝 체험도 감상 포인트. 해가 진 이후인 오후 7시 30분(봄철 기준)부터 운영해 낮 관광을 마친 후 여유롭게 둘러보기 좋다.
예술을 타고 흐르는, 통영의 낮
눈이 호사를 누린 밤을 지나 예술에 취할 시간이다. 케이블카·벽화마을·자연경관 등 즐길 거리도 많고 많은 통영이지만, 그 뿌리 깊은 곳에는 글과 음악과 그림이 흐른다. 통영에는 뾰족한 연필 모양의 연필등대(도남항등대)가 있다. 통영이 배출한 수많은 예술인을 기념하고, 이들의 에너지가 모여 후세가 나아갈 길을 비춘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마음먹고 찾지 않아도 통영 곳곳에서 예향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교과서에서 한 번쯤 들여다봤을 법한 익숙한 시를 노래한 유치환의 청마거리라든지, 그가 편지를 5000여 통이나 부친 통영중앙동우체국, 생가를 구현한 청마문학관이 지척이다.
생전 기록물이 가득한 기념관, 독일의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베를린하우스, 타고 다니던 벤츠 자동차 전시관 등이 한데 모인 윤이상거리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선생의 묘소로 올라가는 길, 우거진 나무 사이로 쪽빛 통영 바다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쓰며 그는 통영의 이러한 풍경을 떠올렸겠지, 어림짐작해본다.
전혁림은 통영 특유의 코발트블루 바다를 가장 잘 표현한 바다의 화가다. 화백의 작품을 타일에 옮겨 장식한 미술관 외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정해진 입장료 없이 자율 관람료를 받는 운영 방식조차 화백의 자유로운 예술혼을 똑 닮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혁림 화백의 <90, 아직은 젊다> 전시에서 전 화백의 ‘통영항’을 보고 감명받아 청와대에 걸 새로운 작품을 직접 의뢰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