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 등 기념일에 맞춰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초콜릿 등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뉴스1
밸런타인데이 등 기념일에 맞춰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초콜릿 등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서울 영등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 사장은 오는 14일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사탕·초콜릿등 선물용 식품을 발주하지 않았다. 기존에 화이트데이는 밸런타인데이·빼빼로데이와 함께 젊은 층이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여는 편의점 업계 최대 행사로 꼽힌다. 주변에선 “대목 준비를 왜 포기하느냐”고 다그쳤지만 A씨는 “상황을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 편의점은 지난달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100만원어치가 넘는 초콜릿, 과자 세트 등 상품을 주문했지만 판매량은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A 사장은 “이번 밸런타인데이는 역대급으로 공쳤다”며 “그때 주문했던 초콜릿 재고를 아직 다 처리하지도 못했다. 이제 기념일이나 데이 특수는 사라진 것 같아 기대를 접었다”고 푸념했다.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밸런타인데이(2월 14일)와 화이트데이(3월 14일)를 겨냥해 유통업체들이 각종 기념일 관련 제품들을 앞다투어 내놓지만 정작 현장에선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전반적인 소비심리 위축이 기념일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유통업계가 판매 증진을 위해 애용하던 ‘OODay’ 마케팅도 약발이 다했다는 것이다.

오는 14일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고물가로 침체됐던 소비를 겨냥해 각종 프로모션 상품이 나오지만 현장에선 심드렁한 반응이다. 5일 만난 편의점 점주들은 더이상 ‘기념일 특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밸런타인데이 특수를 기대했지만 대부분 매출 증대 효과가 미미했다고 말했다.

마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는 “매장 밖까지 줄을 서서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선물을 사가는 건 이제 옛말”이라며 “손님 자체가 준 데다가 요즘은 워낙 기념일용 상품이나 이벤트가 다양해 양산품을 잘 사가지 않는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편의점에서 인형이나 꽃다발을 누가 사가겠냐”고 했다. 인근 또 다른 편의점 가맹점주 C씨도 “주변에 같은 업종을 운영하는 사장들이 빼빼로데이부터 밸런타이데이까지 각종 행사 상품을 대량 발주했다가 죄다 낭패를 봤다”며 “초콜릿은 유통기한도 짧아 내버린 양이 상당하다. 손해만 봤다”고 털어놨다.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초콜릿 등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초콜릿 등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1
최근 들어 각종 기념일 때마다 편의점·슈퍼마켓 등에 진열되는 초콜릿·사탕 등의 판매율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잘 팔려야 절반쯤 팔리고, 적게는 10%밖에 팔리지 않는 매장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대학교 인근의 한 편의점 점주는 "우리 가게는 대학생들이 주로 단골이어서 기념일 때 준비한 초콜릿·사탕들이 다른 가게에 비해선 잘 팔리는 편이라고들 하는데도 이번 밸런타인데이 때 들여온 물건 중 40%도 못팔았다"며 "다른 가게들은 사정이 더 좋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소비자들도 기념일을 겨냥하는 일명 ‘데이 마케팅’이 효력을 다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양모 씨(29)는 “기념일이라고 평소 잘 사지도 않는 초콜릿이나 사탕, 꽃다발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상술에 휘둘리는 것 같아 연인과 협의해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며 “차라리 그 돈으로 캠핑을 가 질 좋은 소고기를 구워 먹을까 아니면 평소 가고 싶었던 식당을 예약해 식사를 할까 함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