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캐럴은 다 어디갔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이 왔다. 12월 중순쯤 되면 퇴근길 버스 안 라디오나 쇼핑가 화장품 상점 밖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언제 어디서 캐럴을 처음 들었는지 돌아보자.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반팔을 입을 수도 있는 11월 어느 날 아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러 무심코 들어간 별다방에서 들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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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의 어원은?

캐럴은 크리스마스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기 위한 종교적 노래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중세 라틴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플루트 연주와 함께 동반되는 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거실 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와 크리스마스 양말의 배경 음악과는 사뭇 다른 정의이다. 하지만 모두가 모여 함께 축하하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음악이 갖는 의미는 공통적이다.

하지만 연말 분위기와 딱 맞는 캐럴은 예전만큼 길거리에서 많이 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일부에서는 저작권 문제 때문이라고 하고, 최근 나온 기사에서는 소음과 에너지 규제로 일반 매장 외부에 스피커를 설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 일견으로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캐럴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중요해진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산타를 믿는 사람만 선물을 받는 것처럼, 내가 캐럴을 잘 듣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동심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머라이어 캐리 -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

연말 캐럴이 이제 시덥지 않다면, 그 이유중 하나는 매번 똑같은 음악만 흘러 나와서다. 매년 새로운 캐럴 곡들이 나오지만, 아직까지 라디오나 TV 속 연예 프로그램에서는 수십 년째 같은 곡들이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일명 ‘캐럴 연금 송'으로 알려진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웸의 ‘Last Christmas’, SG워너비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Must Have Love’ 등이 있다.

물론, 계절과 상황에 따라 음악이 주는 느낌은 달라지기도 한다. 올 여름 30도가 넘는 날씨에 우연히 동네 어르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들었던 머라이어 캐리의 돌고래 고음은 매우 신선하게 들렸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괜히 캐럴을 싫어하게 되는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발매 65년 만에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브렌다 리의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

캐럴도 구관이 명관

작년과 올해 연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반세기 전에 발매된 캐럴 음악들이 10위권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나홀로집에’ OST로 나와 익숙한 브렌다 리의 ‘록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는 1958년, 보비 헬름스의 ‘징글벨 록'은 1957년, 앤디 윌리엄스의 ‘잇츠 더 모스트 원더풀 타임 오브 더 이어'는 1963년에 발매된 곡들이다. 특히 브랜다 리가 부른 이 캐럴 곡의 경우, 발매 65년 만인 올해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연중 내내 신곡으로만 채워지던 톱10 인기곡 리스트가 매 연말마다 수십년 전 곡들로 채워지는 이러한 현상을 보면, 12월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레고리 포터 - 디스 크리스마스 송

누구에게 연말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온정을 나누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1인가구가 대세가 되버린 현대 사회에서는 추위와 고독을 이겨내야 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 앨범을 발매한 재즈 아티스트 그레고리 포터는 가족의 부재와 이별로 인한 아픔을 재즈를 통해 치유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남성 어른에 대한 동경을 채워주었다고 하는 전설적인 재즈 아티스트 냇 킹 콜이 부른 ‘디스 크리스마스 송'과 포터 본인이 부른 두 가지 버전을 비교해가면서 듣는 것을 추천해본다.

물론 모든 캐럴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다. 1965년 처음 방영된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 OST로도 많이 알려진 ‘Christmas Time is Here’의 가사는 비교적 간단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언급하지 않지만, 묘한 단조 멜로디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장면은 왠지모를 공허함을 암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프랑크 시나트라부터 마이클 부블레까지 수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가사는 따뜻하고 행복해보이는 멜로디와는 다르게 연말의 고독함과 과거의 행복했던 노스텔지아를 떠올리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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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밝고 어두운 감정을 동시에 담은 캐럴 음악이 있듯, 우리 각자 한 해를 마무리하며 복잡한 감정을 아우르는 곡 하나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비록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라고 외치는 것이 ‘올바른' 사회가 되었지만, 연말은 연말답게, 잠시 하던 것을 내려놓고 가까운 이들에게 마음을 담은 캐럴 한 곡을 선물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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