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3일까지 국립극장 공연…"무대 위 상징 통해 관객이 이입돼야"
'나부코' 연출 스테파노 포다 "반복되는 억압…예술은 경고하죠"
"얼굴 분장이 과해요.

과해." "머리는 지금보다 자연스럽게, 좀 더 부스스한 느낌으로요.

"
지난 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 뒤 분장실. 오페라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는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성에 차지 않는 점이 눈에 띌 때마다 수정을 지시했다.

30일 개막하는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나부코'의 첫 드레스 리허설이 있는 날이었다.

2021년에 이어 '나부코' 연출을 맡은 포다는 웅장한 무대가 특기인 연출가지만, 디테일도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이었다.

잠시 틈을 내 만난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제가 한 사람, 한 사람 다 화장해주고 싶다"며 완벽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는 의욕을 보였다.

베르디의 첫 흥행작인 '나부코'는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간 바빌론에서 고난을 겪었던 구약성서 속 '바빌론 유수'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인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는 나라를 잃은 슬픔과 희망을 담고 있는 아리아로 유명하다.

'나부코' 연출 스테파노 포다 "반복되는 억압…예술은 경고하죠"
포다는 "베르디 같은 천재들이 만든 오페라 음악은 모든 민족에 대해, 모든 시대에 대해 경고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현재성, 보편성, 시사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어 "불행히도 억압은 히브리인과 바빌론의 역사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항상 있었다"며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두 전쟁도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바로 이것이 예술이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포다의 연출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특정 시기, 국가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늘 작품이 보편성과 현재성을 띠길 원한다고 했다.

2021년 공연한 '나부코'는 바빌로니아인과 유대인을 빨간색과 흰색의 두 무리로 구분한 의상, 무대 전체를 둘러싼 격자무늬 문양 등으로 극의 배경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는 "오페라가 반드시 대본에 적힌 시대나 작곡가가 살았던 시대의 방식으로 연출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의미를 존중하면서도 관객의 감동을 보다 용이하게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음악은 추상적이기에 보는 사람이 구체적인 것을 봐서는 안 되고, 상징을 봐야 한다"며 "그 상징을 통해 관객 스스로 인물에 반영되고, 작품에 이입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나부코' 연출 스테파노 포다 "반복되는 억압…예술은 경고하죠"
'나부코'의 무대에서 눈에 띄는 상징은 한국적 정서인 '한'(恨)을 한글 텍스트로 조형화해 무대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또 '평화의 소녀상'을 오마주한 조형물도 등장시킨다.

다만 포다는 이런 상징들이 한국 관객들을 위해 일부러 설정한 것들은 아니고, 과거 경험했던 것들이 쌓여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했다.

포다는 "모든 민족은 '한'처럼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할 수 없지만, 그들의 문화와 그들이 느끼는 방식을 함축해주는 단어들이 있다"며 "이 정서는 슬픔도 아니고, 단순한 억압도 아닌 깊은 내면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평화의 소녀상은 가장 잔혹한 전쟁의 결과로,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라며 "인상 깊은 점은 착취당한 어린아이가 결국 이를 극복하고, 생존의 상징이 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부코' 연출 스테파노 포다 "반복되는 억압…예술은 경고하죠"
포다는 연출뿐 아니라 무대, 의상, 조명 디자인까지 모두 총괄해 담당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무대 위 모든 것을 총괄하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개성이 뚜렷한 인상을 남기곤 한다.

지난 6월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열린 '베로나 오페라 축제' 100주년 기념 작품으로 공연한 '아이다'는 '크리스털 아이다'라는 애칭으로 화제가 됐다.

연출적으로 한순간 무대 위 모든 것이 투명해지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하는 일은 단순한 연출이 아닌 음악과 시각예술, 문학, 철학 간의 연결성을 찾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죠. 이런 제안(연출 스타일)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전통적인 연출이나 현대의 '레지테아터'(시대와 배경 설정을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연출가 중심의 무대)를 선호할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
'나부코' 연출 스테파노 포다 "반복되는 억압…예술은 경고하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