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디자인 이태섭·분장 이동민·조명 류백희 인터뷰
2015년부터 전 시즌 참여…"고선웅 연출이 어떤 요구할지 몰라 마음 못 놓죠"
연극 '조씨고아' 100회 이끈 베테랑 창작팀…"관객 박수에 보람"
"오늘 고선웅 연출님 귀가 시끌시끌하시겠는데요?" (류백희 조명 디자이너)
고선웅 연출에게 느닷없이 사람 팔뚝 모형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받은 무대 디자이너부터 공연 첫날 배우의 수염을 길게 붙여달라는 요청에 직면한 분장 디자이너까지….
고 연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이들은 바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이태섭(69) 무대 디자이너, 이동민(61) 분장 디자이너, 류백희(50) 조명 디자이너 세 사람이다.

지난 20일 서울 대학로 국립극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들은 앞다퉈 고 연출의 '즉석 아이디어'에 관한 일화를 들려줬다.

이동민 디자이너는 "2020년 공연을 앞두고 뒤쪽 머리숱이 없는 배우인데 뒷머리를 길게 달았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하기에 당황한 적 있다"며 "이번 시즌에는 또 어떤 요구를 할지 몰라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며 웃었다.

류 디자이너는 "전에 올렸던 레퍼토리 공연이라고 해서 마음 놓고 있을 수가 없다.

고선웅 연출에게 언제 어떤 요구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거들었다.

연극 '조씨고아' 100회 이끈 베테랑 창작팀…"관객 박수에 보람"
2015년 초연부터 고 연출과 일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기 때문일까.

세 사람은 오는 30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여섯 번째 시즌에도 참여하며 전 시즌을 함께할 예정이다.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100번째 서울 공연을 제작하는 기쁨도 누리게 됐다.

이태섭 디자이너는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이 장기간 오른 일은 드물기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제작 시스템이 향상돼 지방 극단에도 영향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돌아보면 시행착오도 겪었고 의견 충돌로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에서는 공통으로 고 연출을 향한 존중과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동민 디자이너는 "고 연출은 촉이 빠른 연출가"라며 "여배우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내가 머리 끈을 활용하는 것은 어떤지 제안했더니 곧장 영감을 떠올리고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류 디자이너는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의 앙상블을 끌어내고 유지하는 능력이 고 연출의 매력이다.

조명을 담당하는 크루 가운데는 작품의 제작 분위기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연극 '조씨고아' 100회 이끈 베테랑 창작팀…"관객 박수에 보람"
작품은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씨고아가 가문을 멸족한 진나라 장군 도안고에게 복수를 계획한다는 내용이다.

복수극을 그리고 있지만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과장된 말투로 웃음을 자아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작품의 매력으로 꼽힌다.

이태섭 디자이너는 "텅 빈 무대에 소품이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바닥도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는 등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라며 "유치해 보이지만 만화 같은 요소들이 잘 어울린다.

동그란 조명이나 풋라이트 등 극적인 상황을 강조하는 조명을 유심히 봐도 재밌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성 화장품을 이용해 과할 만큼 진한 분장을 선보이는 것도 공연의 특징이다.

이동민 디자이너는 '조씨고아'에서 선보인 분장을 개인 전시회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잘 보이려 하는 분장이 아니라 과한 분장이 필요했기에 여성 국극 배우의 분장을 떠올렸다"며 "여성 국극 배우셨던 어머니 덕에 분장하는 법을 알고 있어서 작품에 적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극 '조씨고아' 100회 이끈 베테랑 창작팀…"관객 박수에 보람"
세 사람은 각자의 분야를 대표하는 베테랑이다.

이태섭 디자이너는 1990년 데뷔해 무대미술로 이해랑연극상을 받았고, 이동민 디자이너는 1986년 데뷔해 300여 작품에서 활동했다.

이들 중 가장 경력이 짧은 류백희 디자이너도 1998년부터 조명을 맡고 있다.

이들은 배우나 연출과 비교하면 겉으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스태프지만, 여전히 공연이 즐겁다.

에너지가 떨어질 때도 연습이 시작되면 아이디어가 자연스레 머리에 떠오르며 힘을 되찾는다고 한다.

이태섭 디자이너는 "무대 디자인은 할수록 재밌다"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위해 예술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프로덕션을 함께하며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류 디자이너는 관객의 박수가 에너지를 주는 원동력이라며 팬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인 '조씨고아'를 함께할 때 특히 힘을 얻는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관객의 박수 소리를 들으면 우리 작품이 얼마나 큰 사랑을 받는지 느낄 수 있어요.

해냈구나 싶은 뿌듯함도 있고요.

그래서 '조씨고아'는 또 만나고 싶은 작품이에요.

"
연극 '조씨고아' 100회 이끈 베테랑 창작팀…"관객 박수에 보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