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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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정치는 여야 지지자간 혐오정서에 근거한 양극화가 크게 심화되고 있다. 정치 양극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한다. 당파적 편향으로 인해 정부의 정책성과에 정당한 평가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법안통과가 장기간 지연되는 입법교차(legislative gridlock)를 유발한다. 또한 극심한 당파적 양극화는 각 정당과 그 지지자들이 상대를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가짜뉴스 확산의 원인이 되며 무엇보다 국민 분열의 주범이 된다.

아쉽게도 정치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 국회선진화법, 2019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2022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등이 도입되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백인과 흑인이 나란히 싸워서는 안되는 불문율이 있었다. 하지만 과열한 전투의 열기 속에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흑인과 함께 백인이 소속된 중대에서는 흑인을 싫어하는 백인 군인의 수가 9배 적었다. 1938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가장 큰 선원 노조에 가입했을 때에도 처음에는 광범위한 저항이 있었지만, 흑인과 백인 선원이 실제로 함께 일하기 시작하자 시위는 중단되었다. 네덜란드 사회학자팀의 연구에 따르면 백인들이 무슬림과 더 많이 접촉할수록 이슬람에 대한 혐오감도 적게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접촉은 사람들을 더 친근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싱가포르대학의 국제 연구팀에 따르면 다양한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이 잦은 접촉을 하는 경우 모든 인류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낯선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고 도움이 되는 형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보스턴 대회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다양한 공동체에서 잦은 접촉을 한 주민들이 더 많은 도움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 사례에서 보았던 접촉은 더 많은 신뢰와 더 많은 연대, 더 많은 상호작용 효과를 낳으며,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게다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 대해 관대하기 때문에 자신의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편견의 문을 열고 접촉의 기반위에 보완 또는 수용해보자는 거다.

정치인들도 만나야 한다. 국회내 상임위원회 및 상설특별위원회가 아닌 비공식적이고 특별한 아젠다 없이 접촉해야 한다. 라틴어에서 나온 단어 ‘커멘살리티(commensality)’라는 말이 있다. 음식을 함께 만들어 한 식탁에서 먹는 행위를 뜻한다. 여야 상임위원회 국회의원들이 분기별 한 번씩 만나 돈을 모으고 조리 시간표를 짜고 메뉴를 고르며 음식도 직접 준비해 보기를 제안한다. 음식을 먹는 행위가 평범하고 일상적이기는 해도 아주 원초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 식사를 함께 하는 구성원들은 그렇지 않은 구성원들보다 협력적 행동을 2배나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쓸모없는 시간 낭비 같은 행동이 업무 수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혐오와 편견으로 시민의 삶과 관계없는 균열된 정치, 파편화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접촉을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회 정치개혁접촉위원회’ 같은 특별법도 마련해야 한다. 접촉은 전염성이 있어서 여야 국회의원이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주변 정치인들도 여야 지지자들도 자신의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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