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과 가을, 한국재즈계에 진기한 기록을 남긴 콘서트가 있었다. 재즈인들 사이에서 레전드로 불리는 ‘서울 재즈 쿼텟(Seoul Jazz Quartet)’이 해체 25년 만에 다시 뭉쳐 재회콘서트를 가졌던 것.

이 공연은 1000석짜리 콘서트홀(마포아트센터)을 전석 매진시켜 화제가 되었고 바로 두 달 뒤에는 예정에 없던 앙코르 콘서트까지 열었다. 이는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국내 단일 연주그룹으로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겠지만 서울재즈쿼텟은 ‘뮤지션들의 뮤지션’으로 꼽히는 거장그룹이다. 국가 대표급 색소포니스트인 이정식을 필두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드러머였던 김희현, <재즈베이스 교본>으로 많은 음악학도들에게 영향을 끼친 장응규, 섬세하고 투명한 피아니즘으로 1990년대를 대표했던 양준호가 뭉친 4중주 밴드다.

가요 일변도의 그룹사운드들이 활동하던 1980년대 후반, 재즈를 천명하고 나선 연주그룹이 서울재즈쿼텟이었다. 88서울올림픽을 맞아 개최되었던 '한강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이들의 데뷔무대였다. 밴드의 연주 실력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재즈밴드로는 유일하게 대형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가 하면, 일본과 한국재즈가 경연했던 '한일 재즈 트레인'에 초청되는 등 한국재즈의 최전방에서 활약했다.

같은 이름으로 10년 넘게 활동했던 것도 서울재즈쿼텟이 처음이었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던 이들이 경제적인 현실성만 고려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당시만 해도 재즈밴드가 설 수 있는 방송이나 행사는 거의 없었고 라이브를 할 수 있는 재즈클럽도 수도권 서너 곳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소수의 재즈마니아들만이 찾았다. 하지만 서울재즈쿼텟은 단 몇 사람의 청중 앞일지라도 맹렬한 라이브를 펼쳤다.

서울재즈쿼텟의 멤버들이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재즈가 아니라 여러 가요앨범에서 레코딩 세션맨으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가수 조용필, 이승환, 신승훈, 김현철,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등의 음반과 공연에서 재즈적인 사운드를 제공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대중가요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서울재즈쿼텟 단체흑백
서울재즈쿼텟 단체흑백
2022년 다시 뭉친 서울재즈쿼텟은 평균 나이 64세의 노장밴드가 되었다. 팀의 막내 양준호(피아노)가 1964년생, 맏형인 김희현(드럼)이 1952년생이다. 재회 콘서트를 앞두고 전성기 때 모습을 재현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훨씬 원숙해진 관록의 연주를 펼쳤다. 비트감 넘치는 퓨전재즈에서 향수어린 올드팝, 로맨틱한 스탠더드 넘버, 우리 가요에 이르기까지 종합선물세트 같은 프로그램으로 큰 호응을 끌어냈고 특히 우리 국악의 리듬과 장단을 재즈의 즉흥성과 결합해 보여준 ‘뱃노래 변주곡’ 같은 장면은 역대급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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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앙코르 요청에 프런트 맨인 이정식(색소폰)은 눈물을 훔쳤다. 25년 전 청춘을 태웠던 서울재즈쿼텟으로 다시 공연을 하게 된 것도, 공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고 그건 본인들이 개척해낸 한국의 재즈문화다.

서울재즈쿼텟의 공연을 나는 무대 옆 커튼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정식이 혼신을 다해 색소폰을 연주할 때 사방으로 흩어지는 땀방울을 보았다.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퇴장하는 드러머 김희현과 포옹했을 때 두꺼운 턱시도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관객들은 기립했고 오랫동안 박수가 이어졌다. 이 모든 장면은 고스란히 녹음되어 얼마 전 라이브 LP로 발매되었다. 이 역시 한국최초의 재즈 라이브 실황 LP로 기록되었다.

재회콘서트 후 1년, 서울재즈쿼텟은 다가오는 11월 19일에 '2023 서울재즈쿼텟 콘서트'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 공연은 라이브 LP 발매를 기념해 마련된 것으로, 자작곡을 포함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한국재즈 1세대 보컬리스트인 김준과 4세대 보컬리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인 마리아킴이 특별 게스트로 함께 할 예정이다. 한국재즈의 중흥기를 견인했던 슈퍼밴드 서울재즈쿼텟, 깊어가는 가을밤을 진한 재즈로 물들일 그 감동을 다시 또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