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C 투자 늘어나야 스타트업 M&A도 증가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 긴 호흡 가져야
한경 긱스(Geeks)가 지난 18일 열린 'CVC 투자 활성화를 위한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전문가들은 CVC를 향한 제도적 장벽 개선과 함께 인식의 변화도 요구했습니다. CVC 투자 생태계가 활성화될수록 스타트업 M&A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IPO 일변도던 회수 시장이 다변화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오픈이노베이션입니다. 그래야 미국처럼 회수 시장에서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됩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CVC 투자 활성화를 위한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CVC 관련 제도 개선과 함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는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재정 의원, 김한정 의원 등이 주최하고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관했다.
"글로벌 빅테크,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들어와야"
발제자로 나선 노규승 현대자동차 제로원 팀장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사례로 들었다. 글로벌 M&A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의 R&D 오피스가 이스라엘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인구는 900만명에 불과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M&A가 22건 이뤄졌고, 이 중 퀄컴이나 IBM 같은 빅테크에 의해 주도된 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도 글로벌 빅테크의 R&D 조직이나 CVC들이 유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경쟁을 통한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고 보고 있다. 그는 또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제조 역량이 부족해 스케일업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조 역량이 우수한 국내 중견기업이 이를 보완해주면 좋다"며 "이 지점에서 CVC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신형 충남대 교수는 CVC를 독립된 법인 형태의 조직과 기업 내 투자부서 형태 조직으로 나눠 진단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독립 법인 CVC는 시리즈A~B 투자에 집중하고, 사내부서 CVC는 시드~프리A 단계의 극초기 투자나 시리즈D 이후 후기 투자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부서 CVC는 전략적 목적의 투자가 많다는 의미다.
강 교수가 주목한 건 스타트업 M&A 생태계다. 그는 독립법인 CVC를 보유한 회사의 스타트업 M&A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기 전 피인수기업에 CVC 투자를 집행하거나, 해당 산업 분야의 다른 스타트업에 CVC 투자를 집행한 경우, 혹은 적어도 다른 산업 분야에 CVC 투자를 집행한 적이 있는 경우가 절반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CEO의 강력한 의지 △사내 커뮤니케이션 △성장·지원 초점 △민간 VC 활용 △유형별 특징 이해 등을 시사점으로 내세웠다.
많은 자원을 장기간 투입해야 하는 CVC 투자의 특성상 최고 경영진이 직접 리드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고, 스타트업과 현업 부서를 연결시켜 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스타트업을 내부 구성원에 자주 노출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는 독점과 소유를 지양해야 하고, 스타트업 입장을 대변해줄 중재자의 역할로 민간 VC를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사내부서 CVC는 시너지 창출에 유리하고, 독립법인 CVC는 지속성과 속도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제도 개선 필요... 스타트업 M&A 늘어날 것"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대기업 CVC에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CVC가 특수목적회사(SPV)를 세울 수 있게 허용하고 SPV가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받아 기존 규제를 우회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지주형 CVC의 경우 부채비율이나 외부자금 출자 비중, 해외투자 비중 등의 규제가 적용된다.강 교수는 '비제도적' 장벽 역시 문제라고 진단했다. 한국이 CVC에 대해 일종의 정서적 거부감이 있다고 봤다. 강 교수는 "한국은 기본적으로 금산분리 같은 원칙이 있는 데다가, 대기업이 사업을 확장하면 '문어발식'이라며 부정적 인식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김용건 블루포인트 부대표는 대기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얻은 소회를 공유했다. 김 부대표는 "과거에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하청'이나 '외주'를 준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엔 스타트업이 회사의 혁신을 도울 '파트너'로 여기고 협업하는 추세"라며 "대기업과 함께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는 등 창의적이고 과감한 시도를 하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부대표는 '기다림'의 미학을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에서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땐 전사적으로 본질적인 목표가 갖춰져야 하고, 그 이후엔 원활한 소통과 적절한 참여를 통해 상호 수요가 충족돼야 한다"며 "또 단기적인 성과 창출을 기대하기 보다는 긴 호흡을 갖고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VC 투자 사례 중 M&A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느냐가 성공의 바로미터라고 정의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업공개(IPO)가 주된 회수 창구였지만,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픈이노베이션이 확산되자 M&A가 새로운 회수 창구로 떠올랐다"며 "회수 시장은 불변하는 게 아니고,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가 얼마나 잘 갖춰지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