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선, 법으로 단번에 해결될 간단한 문제 아냐"
"삼성내 '신중한 사업추진' 문화 자리잡혀…준감위, 자기 소멸로 가는 조직"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의 이찬희 위원장이 삼성의 '그룹 컨트롤타워'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제기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율촌 사무실에서 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준감위 차원이 아닌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현재의 특수 상황에서는 삼성에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 없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라며 "많은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한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이 국내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세계적 기업이 돼야 국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컨트롤타워라는 함장이 필요하다"고 거듭 컨트롤타워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위원장이 삼성의 그룹 컨트롤타워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준감위원들의 면담 이후 이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인 신념으로는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은 과거 컨트롤타워로 불린 미래전략실(미전실)을 2017년 2월 폐지했다.

이후 삼성은 ▲ 사업 지원(삼성전자) ▲ 금융경쟁력 제고(삼성생명) ▲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사업 부문별로 쪼개진 3개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미전실 시절에는 각 계열사 이사회가 아닌 미전실이 중요한 경영 판단을 내리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논란이 있었고, 미전실은 국정농단 사태 후폭풍 속에 해체됐다.

하지만 현 구조로는 삼성 전체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일각에선 컨트롤타워 부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과거 미전실의 과오가 분명히 있으나, 이제 상황이 변했다는 점을 이 위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시대 흐름이 바뀌었고, 컨트롤타워에 대한 시각도 시대 흐름이 바뀌는 것에 따라가야 한다.

그 흐름을 따라갈 때 항상 역사는 발전한다"며 "준감위라는 기구를 만들었기 때문에 지나온 시절보다 더 후퇴하거나 과거와 같은 지점으로 완전히 돌아가지는 못한다"고 짚었다.

이 위원장은 출범 1년 6개월을 맞은 2기 준감위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영역으로 그룹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꼽았다.

2기 준감위는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삼성 지배구조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오너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는 형태다.

현재 보험사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만 보유할 수 있어 20조원 이상의 나머지 지분은 모두 팔아야 한다.

삼성으로서는 출자 구조 개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다만 이 위원장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지배구조를 법으로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법으로 단번에 해결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래 매듭을 묶기는 쉽지만 풀기는 어렵고, 매듭이 여러 번 지어졌으면 풀기가 더 힘들다"며 "입법으로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것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매듭을 한 번에 잘라서 그다음에 못 쓰게 되더라도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위원장은 준감위 활동에 대해 "삼성 내에서 어떤 안건이 들어오면 '준감위 검토가 끝났나요'라고 할 정도로 준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 신중한 사업 추진에 대한 문화가 삼성 안에 자리 잡혔다"고 자부했다.

이어 "우리는 자기 소멸을 향해 가는 조직이라고 한다"며 "각 관계사가 철저하게 준법 경영을 하면 필요 없어지는 만큼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존속할 텐데, 아직은 그런 과정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역할을 하려면 회사와 건강한 긴장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며 "준감위는 옥상옥 기관이 아니라 관계사 간 준법 경영에 있어 형평성을 고려하고 통일성을 기하면서 일관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