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클링 작가 이규한
일상 속 흔한 소재가 작품으로
나이키 신발상자는 '벤치'가 되고
낡은 테니스공은 '옷걸이'로 변신
모든 것은 영화에서 시작됐다
'기괴한 감독' 스파이크 존즈 존경
가구 넘어 영화 무대 디자인할 것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이 생각 뛰어넘는 게 진정한 창작
“‘굳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야 해요. ‘굳이? 라는 생각에 시도하지 않으면 남들과 똑같은 작품을 만들겠죠.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창작이니까요.” 이규한 작가(28)는 익숙하고, 주로 버려지는 소재로 낯선 가구를 만든다. 나이키 신발 상자를 이어 붙여 벤치를, 맥도날드 종이봉투를 전구와 합쳐 조명을 제작한다. 매일 수백 명이 짓밟고 담배꽁초를 버리는 하수구 덮개도 이 작가에게는 작품의 소재다.

구찌뿐만이 아니다. 그는 6월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냉장고 광고 업사이클링 프로젝트에 참여해 냉장고 패널과 촬영 세트장 가벽을 결합한 의자를 선보였다. 맥도날드 홍콩은 ‘맥너겟’ 출시 40주년을 맞아 연 전시회에 맥도날드의 갈색 종이봉투에 한지를 덧대어 만든 이 작가의 맥도날드 조명 작품을 전시했다.
반복과 변형의 합주



맥도날드 조명은 이 작가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그는 맥도날드 포장지에 내구성을 더하고 동양적인 질감을 추가하기 위해 한지를 덧붙였다. 형태는 일본 조명 디자이너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 조명’을 오마주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맥도날드와 동양의 유산을 의도적으로 대치시키기 위해서였다.
“많은 재료와 요소들이 섞여야 재밌는 작품이 나와요. 작품에 활용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위해 평소에도 관찰하는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요소가 결국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이 작가의 원칙이다. 그의 작품엔 직선이 많은데, 나이키와 맥도날드 등 화려한 글로벌 브랜드 로고와의 균형을 고려한 결과다. “저는 패션과 스트리트 문화를 좋아하지만, 작품이 그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신경 써요. 전통 작가들을 오마주하는 것도 제 작품에 다양한 문화가 녹아들어 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예술가의 길, 영화광 아버지 영향

그는 가장 닮고 싶은 예술가로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즈를 꼽았다. 존즈는 영화, 뮤직비디오, 광고 등 다양한 매체에서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로 인정받은 감독이다. 이 작가는 존즈 감독을 “아름답고 섬세한 미장센이 가득한 영화부터 어둡고 기괴한 힙합 뮤직비디오까지 만드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존즈 감독처럼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창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영화를 사랑하는 그는 가구를 넘어 영화나 무대를 디자인하는 미술감독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영화 ‘인터스텔라’ 속 5차원 공간을 컴퓨터그래픽(CG)이 아니라 실제 세트장으로 구현한 모습이 경이로웠습니다. 많은 예술이 디지털화하고 있는 시대지만 무대나 세트장을 손수 만들어 선보이는 것이 제 꿈이에요. 남들이 ‘굳이 저렇게까지?’라고 질문하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