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개인전…80년대 대표작 등 130여점 전시
신작에 노동현실·여성문제·세태 변화 담아
그림으로 사회현실 기록하고 발언해온 작가 노원희
그림으로 현실을 기록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발언해 온 노원희(76)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11일부터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이었던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활동했던 작가는 그림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현실을 이야기하고 사회의 모순을 지적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1980년대 대표작부터 신작 회화, 대형 천 그림, 참여형 공동작업, 신문 연재소설의 삽화 등 작품 95점과 아카이브 자료 39점 등 130여점을 통해 작가의 화업을 돌아본다.

야바위 노름을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스산하게 그린 '거리에서'(1980)나 일방적 소통이 이뤄지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표현한 '나무'(1982), 먹구름 낀 하늘 아래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한길'(1980) 등 1980년대 대표작들이 당시 사회 모순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업이라면 신작들에서는 노동 현실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그림으로 사회현실 기록하고 발언해온 작가 노원희
그림 '탑'(2023)에는 의수와 의족을 낀 사람들이 몸으로 탑을 쌓는다.

간신히 지탱하고 있지만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불안함이 느껴지는 그림은 한국 산업노동의 모순을 지적한다.

또 다른 신작 '사복으로 갈아입히고'(2023)에서는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운송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씨 사건, SPC 계열사 공장에서 기계에 끼어 사망한 노동자 사건 등 구멍 난 사회 시스템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형상이 그림자처럼 표현됐다.

과거 작업에서 말을 하는 하얀 사각형을 그려 넣었던 작가는 '사복으로 갈아입히고'와 또 다른 신작 '큰 회사'(2023)에서는 하얀 사각형 대신 얇은 천을 캔버스 위에 포스트잇처럼 붙였다.

작가는 천 위에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증언을 적어넣음으로써 회화의 '말하기' 기능을 강화했다.

그림으로 사회현실 기록하고 발언해온 작가 노원희
작가의 관심은 여성 문제로도 이어진다.

2018년작 '무기를 들고' 속 인물들은 프라이팬을 들고 서 있다.

부엌의 가사 도구를 혁명의 도구로 들고 나선 인물들을 그린 그림은 당시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여성들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세태 변화를 보여주는 작업도 있다.

'아침운동 2023'은 24년 전인 1999년 그렸던 '아침운동'을 변주한 작업이다.

1999년 '아침운동'은 웰빙 열풍이 불던 시대 건강한 몸을 가꾸는 세태를 그렸다면 24년 후의 작품은 미세먼지 가득한 오늘날의 생활환경을 드러낸다.

그림으로 사회현실 기록하고 발언해온 작가 노원희
전시에서는 이 밖에도 2007년 1∼6월 한겨레신문에 연재됐던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를 위한 삽화와 다양한 몸짓의 형상을 표현한 '몸' 연작(2018-2019) 52점 중 30점 등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아르코 미술관은 옛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이던 2018년 10월 노원희가 속했던 '현실과 발언'의 첫 전시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문예진흥원은 전시작들을 보고 놀라 갑자기 대관을 취소하고 전기를 끊어버렸다.

작가들은 촛불을 켜고 관람객들을 맞았지만 결국 전시는 중단됐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은 "현실과 발언 창립전이 무산됐던 바로 그 장소에서 열리는 노원희 작가의 개인전은 미술관 개관 5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19일까지. 무료 관람.
그림으로 사회현실 기록하고 발언해온 작가 노원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