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체성을 깨닫고 뒤늦게 로스와 이혼한 그녀는 다른 여성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그들은 로스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낳는다.
동물 세계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가령 기러기, 제비갈매기, 거위 중 일부는 암컷끼리 커플을 이루며 새끼를 공동으로 키운다.
새끼를 갖는 방법은 암컷 한 마리 혹은 두 마리가 임의의 수컷과 교미해 알을 수정하는 것이다.
동물 동성애, 양성애, 트렌스젠더, 비 번식적 성 활동을 포괄한 다양한 동물 섹슈얼리티(sexuality)를 조명한 '생물학적 풍요'(원제: Biological Exuberance)가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돼 출간됐다.
캐나다 생물학자 브루스 배게밀이 쓴 이 책은 1999년 미국 등에서 초판이 출간된 이후 여러 화제를 모았다.
책 내용이 미국 연방대법원과 인도 대법원의 판결에 인용 또는 활용됐으며 책과 관련한 전시회가 노르웨이,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지에서 열리기도 했다.
책은 기존 연구에 짙게 배어있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거두어내는 데 일조한 데다 다루는 내용이 방대하고 깊다는 점에서 동물 섹슈얼리티를 다룬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그 분량만 1천300쪽이 넘는다.
베게밀 이전 서구 학자들은 동물 섹슈얼리티 문제를 이성애와 번식 중심주의에 치중해 연구했다.
동성 간 마운팅(교미 시도)이나 기타 성적 활동을 이성애를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활동쯤으로 봤다.
혹은 잘못된 성 식별이나 병에 의해 발생하는 오류로 치부했다.
이 같은 해석에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서려 있었다.
저자는 동물과 인간 모두에서 동성애 표현의 복잡성과 풍부함을 고려하지 않으면, 동성애라는 현상의 본질적 성격과 맥락, 종간 비교의 의미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동성애의 의미를 섹스에 한정하지 않고 구애, 애정, 짝 결합, 육아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의 풍성함은 단순히 생식 내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즉 그 위로 흘러넘친다….강렬하게 짧게 끝나는 삶이나 지속해서 불타오르는 삶은, 생식적이든 혹은 그저 창조적이든, 각 존재의 너그러움에 의해 연료를 얻는다.
삶의 방정식은 엄청난 생산력과 결실이 없는 방탕함을 동시에 키운다.
"
히포크라테스. 이성민 옮김. 1천35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