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후예, 테베에서 길을 찾다. 연극 '테베랜드'
테베는 오이디푸스가 왕으로 있던 그리스의 도시이다. 기원 전 소포클레스의 작품인 '오이디푸스 왕'은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파멸에 이르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쓰여진 그리스 비극이다.

연극 ‘테베랜드’는 남성 2인극으로 주인공 중 한 명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청년 마르틴이다. 다른 한 명은 극작가 S 로 그는 마르틴의 사건을 연극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교도소의 허가를 얻어 마르틴을 만난다. 여기까지 들으면 뭔가 거칠고 핏빛 낭자한 내용일 것으로 짐작이 가는데 뜻밖에도 연극이 끝나면 한결 말랑말랑하고 따뜻해진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서게 된다.

마르틴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툭하면 세상 쓸모 없는 놈이란 말을 들었고 욕설은 끝없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마르틴과 유일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어머니를 수시로 폭행했으며 마르틴에게도 폭력을 가했다. S는 마르틴의 얘기를 연극으로 만들고 직접 그를 출연시키려 했지만 교도소에서 이를 허락해주지 않자 마르틴의 대역(페데리코)을 구해서 마르틴에게 들은 얘기를 그대로 알려준다.

마르틴 역을 맡은 배우가 페데리코까지 1인 2역을 하는데 내가 본 날은 정택운 배우 캐스팅이었다. 이날 유난히 여성 관객들이 많았는데 그 중 많은 이들이 정택운 배우를 보러온 듯 했다. 쌍안경까지 꺼내어 보는 사람도 있던데 나중에 알고보니 정택운이 아이돌 그룹 빅스의 ‘레온’ 이라고 했다. 나는 빅스를 몰랐지만 요즘 가수, 아이돌은 연기도 잘하니 특별한 시선으로 볼 일은 아닐 테고 실제로 정택운은 심약하고 불안정한 마르틴의 역할을 제법 잘해냈다.
오이디푸스의 후예, 테베에서 길을 찾다. 연극 '테베랜드'
극이 시작되면 교도소 내에서 S와 마르틴과의 면회가 시작된다. 철창 위로는 둘의 면회 모습을 녹화하는 카메라 화면이 그대로 보여진다. 마르틴은 S를 경계하지만 이내 둘 사이에서 사소한 대화가 싹튼다. “농구를 좋아하니?” 교도소 내 농구장에서 혼자 농구를 하고 있던 마르틴에게 S가 묻는다. “그 시계 방수돼요?” “몇 미터까지 돼요?” 아이다운 마르틴의 질문이 이어지고 S는 모든 대화를 꼼꼼히 기록한다. 면회는 1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데 어느 날은 예민해진 마르틴이 대화를 일찍 끝내기도 한다. S는 작업실에 돌아와 페데리코에게 곧바로 그날의 대화를 복기해준다.

한번은 마르틴이 돌아가는 S에게 문을 살살 닫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큰 소리가 무섭다고. 그는 한밤에 바람에 닫히는 문 소리에도 자주 놀라는 심약한 아이다. 그래서인지 마르틴은 심인성으로 추정되는 간질을 앓고 있다. 어릴 때의 환경이 그를 병들게 한 것이다. 마르틴이 가정에서 받았을 마음의 고통은 얼만큼의 크기였을까. 관객들은 끔찍한 존속살인자 마르틴에게 조금씩 동정을 느끼게 된다. S도 마찬가지이다. S는 페데리코에게 마르틴의 얘기를 전하며 슬퍼하고 그의 아버지에 대해 분노한다. 물론 그렇다고 살인을 두둔할 순 없다. 대신 S는 오이디푸스 이야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문학작품에서의 존속살인 등에 대한 이야기 등을 마르틴에게 들려준다. 마르틴이 손에 차고 있는 어머니의 유품인 묵주에서 시작된 대화는 기도하는 법으로도 이어진다. “이 기도의 앞부분은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건넨 말이란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마르틴은 조금씩 변해간다. “아무도 나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요.” “나는 멍청하니까요.” “변호사마저 몇 번 나를 만나고 포기했죠.” 라며 사람과 세상을 불신하고 자학했던 마르틴이 서서히 S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더 있다 가면 안돼요?” “다음주에 꼭 다시 올 거죠?” 게다가 놀랍게도 마르틴은 S와의 면회가 이어지던 어느날 자신이 살해한 아버지의 무덤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S에 의해 그 부탁은 교도소 측에 전달되고 당국은 마르틴에게 둘 중 하나 선택의 기회를 준다. 단 하루의 외출을 통해 연극 리허설을 참관하든지, 아버지의 묘지에 가든지. 마르틴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을 무척 보고 싶어 했었다. S는 마르틴에게 조심스럽게 교도소의 입장을 전하는데 정작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을 내린다. 관객은 마르틴이 아버지의 묘소에 가기로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의 후예, 테베에서 길을 찾다. 연극 '테베랜드'
잔혹한 존속살인을 저지르고 마음 속에 증오와 분노가 가득 찬 범죄자를 달라지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롯이 S의 ‘들어주는’ 행위 덕분이라고 여겨진다. S의 처음 의도는 작품 개발을 위한 ‘들어주기’ 였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얘기를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충.분.히. 할 수 있었던 마르틴의 내면은 그것만으로도 달라졌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들어준 것 만으로. 어쩌면 이른바 교정시설에서의 ‘교화’라는 것도 대상을 가르치고 바꾸려 하는 것보다 우선 그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심리상담의 기본도 ‘들어주기’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답을 하기 위한 ‘듣기’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한 ‘듣기.’

이것은 비단 범죄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누구든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마음앓이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 중에서, 혹은 학교, 직장에서의 누군가 말 못할 슬픔, 우울, 두려움으로 몹시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교 교사의 참담한 일에 오래도록 가슴이 아팠다. 주위에서 누군가 그녀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줬을까. 그랬다면 그 내면의 풍경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위안이 된다는데 나도 내 아이, 내 친구의 이야기에 좀더 귀 기울였더라면……연극이 끝난 지금도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다.

변화한 것은 마르틴뿐이 아니다. S도 바뀌었다. 무기수 범죄자를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S는 마르틴의 이야기를 들으면 점차 그를 이해하게 된다. S는 마르틴이 아버지를 죽인 것은 살인보다 정당방위에 가까운 것이라고 페데리코에게 울분을 토해낸다. S는 마르틴이 너무 안쓰러운 것이다. ‘경청의 힘’ 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실제로 ‘듣는다’ 것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그것은 마르틴과 S처럼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를 다른 존재로 바꿔놓는다. 타인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너와 나, 우리로.

극 중의 연극 ‘테베랜드’는 무대에 올려져 호평을 받고, 본인의 역할을 마친 S는 마르틴과의 마지막 면회에서 그에게 태블릿PC를 선물로 주고 이별한다. 그 안에는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마르틴을 위한 문학작품들이 들어있다. S가 떠나가고 무대가 어두워지자 태블릿을 켜는 마르틴. 태블릿에서 나오는 빛에 마르틴의 얼굴이 환해지고 관객인 나의 마음도 덩달아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