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연·정지돈 신간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영화로 만난 서평가와 소설가…"영화는 아름다움의 섬광"
"두 남자가 작은 역의 벤치에 앉아 기차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한쪽이 자기 인생사를 들려준다.

난 언제나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로저가 이야기를 끝내면 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
장 피에르 고랭 감독의 영화 '일상적인 즐거움'(1986)은 고랭의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서평가 금정연과 소설가 정지돈도 영화 속 인물들처럼 자신들의 인생사를 들려주기로 한다.

주제는 영화다.

신간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푸른숲)는 영화를 주제로 한, 두 작가의 '티키타카'를 그린 에세이다.

2021~2022년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 연재한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을 묶은 책이다.

금정연은 서울극장과 단성사, 피카디리와 시네코아 같은 서울 시내극장을 섭렵하며 자랐다.

정지돈은 대구극장, 한일극장, 만경관 같은 대구지역 극장을 두루 둘러보며 성장한 끝에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관심 분야가 달라지면 영화를 보는 눈도 달라지는 법이다.

금정연은 청춘의 성장통을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최근 다시 보며 계급과 주거 문제를 조준한 영화라는 걸 깨닫는다.

허물어지는 집, 살집이 없어 감옥에 가길 원하는 등장인물의 모습 등은 국내의 열악한 주거 문제를 곱씹게 한다.

하정우·전도연 주연의 '멋진 하루'(2008)는 부동산 급등 문제를 일깨운다.

영화 대사 중 경기도 '마석'의 땅값은 당시 시세로 평당 70만원 수준. 이 땅의 시세는 2017년 평당 250만원, 2018년 350만원, 2019년 450만원으로 치솟았다.

영화를 보다가 쓸데없이 땅값을 찾아본 이유는 금 작가가 최근 경기도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경기도로 이사한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한번 서울 밖으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금정연)
영화로 만난 서평가와 소설가…"영화는 아름다움의 섬광"
정지돈은 영화를 전공했지만, 한때는 영화를 잘 보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금정연이 함께 보자고 제안했던 '고양이를 부탁해'를 그는 그때까지 보지 않았다.

그는 이른바 '와라나고'라 불리는 작품을 한편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와라나고'는 수작이지만 블록버스터에 밀려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 못 한 영화를 누리꾼들이 발굴해 다시 보기 캠페인을 벌이는 영화들을 뜻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를 말한다.

그는 대학 때도 당대를 풍미한 이와이 슌지,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지 않아 학교 선배들에게 훈계 아닌 훈계를 들었다고 한다.

한때 영화에 대해 꿈꿨지만, 그 좌표를 잃어버렸다고도 했다.

199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걸출한 국내 감독들은 그에게 든든한 이정표였지만, "그들 중 어떤 별은 너무 환하게 불타 쳐다볼 수 없게 됐고, 어떤 별은 블랙홀에 흡수됐으며, 어떤 별은 낙하해서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그들을 보며 길을 찾지 못했다.

이정표가 사라졌어도 영화가 주는 감동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루이스 부뉴엘이 안제이 바이다의 영화를 보고 말한 바로 그런 감동 말이다.

"한 편의 영화에서 다른 영화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흘러가는 비밀스러운 연속성 속 무언가가 내게 감동을 준다.

"
금정연과 정지돈이 꺼낸 영화 이야기는 부뉴엘이 말한 감동과 관련한 이야기다.

그 감동은 삶을 되돌아보는 추억일 수도 있고, 부동산 문제처럼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열렬한 사랑에 관한 감정 덩어리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잠시 반짝였다 사라지는 아름다운 빛에 관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날 것인지 우리는 결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
32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