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명 이름과 정착지 등 확인…항왜(降倭) 구체적 조사한 최초 기록"

한일 역사 전문가인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부산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 중인 '광해일년기유울산호적(光海一年己酉蔚山戶籍大帳)' 기록물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고 17일 밝혔다.
이 호적대장은 1609년은 간행됐는데, 당시는 1598년 임란이 끝난 이후 전화(戰禍)를 딛고 혼란을 수습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김 소장에 따르면 이 기록물에는 왜군에서 탈영해 울산에 정착한 일본인 50여 명의 이름과 정착지 등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또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 임란에서 공을 세운 공신들의 공로와 가문의 이야기, 다른 지역 출신이면서도 전투에 가담해 업적을 남긴 사람들, 전쟁에 참여한 여성들에 대한 내용 등이 담겼다.
임란 당시 공을 세우고 조선에 정착한 명나라 군인들에 대한 내용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명의 제독으로 참전하고 조선으로 귀화해 상곡 마씨(上谷 麻氏) 일가를 이룬 마귀(麻貴) 제독이 있다.
다만 임란 당시 항왜 규모가 전해지는 것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호적대장에서 현재 경남 산청과 마산(진해) 등지에 정착한 항왜 기록이 발견된 점 등은 앞으로 관련한 후속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할 대목이라고 김 소장은 강조했다.
김 소장은 "이번에 공개한 내용은 울산지역 향토 사학자였던 고(故) 이유수 선생이 십수 년 전 건네준 호적대장 사본을 분석한 것"이라면서 "임란 이후 왜군들이 얼마나 탈영해 조선인이 됐는지를 상세하게 조사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김 소장은 임란 당시 일본의 최고 통치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진주한 왜군들의 탈영을 막기 위해 각 주둔지에 보낸 주인장(朱仁壯)을 일본 오사카성 자료목록에서 발견해 2009년 국내에 공개한 바 있다.
이 주인장은 왜군들이 조선의 사회·문화를 체험하고 집단으로 탈영한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로 평가받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