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문제라기보다는 양육 탓에 문학에 몰두할 시간이 없어서다.
작품을 쓴다는 건 소가 풀을 뜯는 것처럼 꾸준하고 헌신적인 일인데, 아이를 돌보면서 위대한 작품을 쓰는 게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가 얘기한 19세기와 지금은 전혀 다른 세계다.
적어도 환상 문학의 대가 어슐러 르 귄에게는 그랬다.
르 귄은 20대 때 프랑스 시를 공부하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미지의 세계로 내딛는 환상을 봤다고 한다.
"나는 거대한 바람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묻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한."
학자의 길을 가던 그는 잔 다르크처럼 '환상'을 본 후 문학 창작에 몰두했다.
결혼했고, 애를 낳았지만, 작업하는데 애가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남편 찰스가 육아를 병행했기 때문이다.
르 귄은 "자신을 완전하게 해주는 재능과 관심을 가진" 남자와 살고 있었다.
르 귄은 적어도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는 글을 쓸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풀타임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을 많이 썼지만, 찰스가 나와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아이들이 커가면서 르 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온전히 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작업과 육아를 완전히 분리할 수 있었다.
이는 남편의 도움도 있었지만, 개인적 경험을 적나라하게 작품 속에 녹이는 것을 반대했던 그의 신념에서 비롯했다.
그는 작품 속에 작가의 삶이 끼어들거나 자기 삶 속에 작품이 끼어드는 걸 늘 경계했다.
그는 "작가가 자신만의 방을 가질 필요도, 배우자의 선의를 가질 필요도 없다.
물론 둘 다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펜과 종이, 그리고 자기 자신이다"라고 했다.
개인적 경험은 그의 작품 속에서 날 것 그대로 투영됐다.
삶과 작품은 분리되지 않았다.
팔색조처럼 다채로운 그의 소설은 기쁨과 고통으로 실타래처럼 뒤엉킨 그의 삶에 뿌리를 뒀다.
특히 노벨문학상을 비롯해 굵직한 문학상은 모조리 탄 20세기의 위대한 이 작가에게 아이들의 존재는 늘 아픈 손가락과 같았다.
짐바브웨에서 자란 그는 첫 남편과 사이에서 두 자녀를 낳은 후 이혼했다.
두 번째 남편과 만나 식민 정권하에서 사회주의와 인권운동을 하다 셋째인 피터를 낳았다.
그는 혼인 생활 중에도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진 후 그는 런던으로 가 아프리카 경험담을 토대로 한 작품을 쓰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소설, 단편집, 논픽션, 시집 등의 출간이 이어졌다.
피터에게 신경을 쓰려했지만, 시간은 늘 부족했다.
피터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던 일을 제쳐 두고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다.
첫 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두 아이를 거의 보지 못했던 그는 피터만은 챙기려고 했다.
그러나 피터는 자신의 결정에 따라 12세 때 기숙학교에 들어갔고, 레싱은 피터가 부재한 삶 속에서 비틀거렸다.
그는 "피터는 내 인생에서 변함없는 유일한 존재였고, 인생의 무게중심과도 같은 아이였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피터는 청소년기부터 정신병을 앓았다.
피터는 67세까지 엄마와 함께 살았고, 피터가 죽은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레싱도 숨을 거뒀다.
저자는 르 귄과 레싱을 비롯해 실비아 플라스, 수전 손태그, 앨리스 워커, 앤젤라 카터, 엘리자베스 스마트 등 다양한 여류 작가의 작품 세계와 육아 문제를 포착한다.
저자는 "한 살배기와 놀 때 드는 숭배의 마음, 지루함, 소외, 혹은 한밤중에 불면의 밤이 만들어낸 탈진, 격노, 혼미한 로맨스 등이 뒤섞인 감정을 가리키는 단어는 없다"고 단언한다.
책에 등장하는 탁월한 작가들의 이야기도 그렇다.
양육과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등락을 한 단어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다만, 앤젤라 카터 소설 '현명한 아이들'의 마지막 문장이 어쩌면 여성 작가들이 느끼는 '양가적 감정'을 드러내는 구절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등장인물이 젖병을 사러 가는 장면을 묘사하며 이렇게 소설을 끝맺는다.
"이런 영예로운 멈춤은, 진실로 말하건대, 불협화음을 내지만 상호보완적인 우리 삶의 서사 속에서 때때로 일어난다.
만일 당신이 거기서 이야기를 멈추기를 선택한다면, 그렇게 멈춰선 채 더 멀리 나아가길 거부한다면, 당신은 그걸 해피엔딩이라고 불러도 좋다.
"
돌고래. 박재연·박선영 등 옮김. 5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