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3대 화가로 꼽히는 라파엘로의 그림 중에 '아테네 학당'이 있다.

그림에는 모두 58명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그리스·로마의 걸출한 사상가들이다.

그중 주인공은 중앙에 배치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킨다.

이는 두 사람의 철학적 경향을 상징하는데, 플라톤은 천상의 것에 관심이 많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관심을 뒀다.

앞줄 오른쪽에는 컴퍼스를 들고 무언가를 설명하는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있는데, 그가 유클리드다.

그 옆에서 지구본을 들고 대화하는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가 틀림없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이들이 각 분야에서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유클리드는 기하학 이론을 확립했다.

요즘 학생들도 그의 이론을 배울 정도로 그의 기하학 정리는 2천30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사실상 폐기됐으나 서구 천체물리학은 그를 극복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학문적 위상도 유클리드 못지않다.

그림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갈레노스라는 로마 시대의 의사도 있었다.

갈레노스는 해부학 실험을 통해 뇌가 행동과 사고의 기본이 되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인물이다.

간이 피를 만든다는 둥 일부 오류를 범했지만, 의학계에서 갈레노스가 끼친 영향도 상당하다.

영국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바이얼릿 몰러가 쓴 신간 '지식의 지도'(마농지)는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갈레노스를 중심으로 서양 지식의 흐름을 살펴본 역사서다.

서로마가 멸망하고 중세가 시작되는 서기 500년 무렵부터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꽃피는 1500년경까지의 지식사를 추적했다.

저자는 중세 시대를 무지의 시대로 보지 않는다.

서구 세계의 토대가 된 지식은 고대 그리스에서 근대로 건너뛴 것이 아니라 중세 천년의 분투 속에서 보존되고 분석되고 혁신된 결과물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로마의 멸망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 후 사라질 뻔했던 고대의 책들은 중세 문명을 주도한 이슬람 세계를 중심으로 필사되고 번역되면서 일부 살아남아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유클리드의 '원론',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갈레노스의 여러 의학 저술이 중세 지식의 허브 역할을 했던 알렉산드리아, 바그다드, 코르도바 등 7개 도시에서 추앙받고, 재발견되며 확산하는 과정을 면밀히 탐구한다.

저자는 "정치적 안정, 자금과 서적의 지속적인 공급, 학문에 관심 있는 뛰어난 인재들의 유입, 타 민족과 타 종교에 대한 관용과 포용 덕택에 이들 도시가 학문적으로 번성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김승진 옮김. 42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