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본질은 비슷하지만 형태는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결혼·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변했고, 그럼에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고민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셜 디스커버리 앱 위피를 만든 김봉기 엔라이즈 대표는 '데이팅'이라는 단어가 현재 사회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김 대표가 데이팅 시장에 뛰어든 배경과 데이팅 시장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 그리고 위피를 운영하면서 겪은 경험을 한경 긱스(Geeks)에 공유해왔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 이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기, 80여 년 동안 진행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연구가 있다. 이름하여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다. 1938년 연구팀은 당시 만 19세였던 하버드대 재학생 268명을 모집했다. 그리고 보스턴시의 빈민가 지역의 10대 후반 청년 456명을 추가해 이들의 삶을 각각 추적·관찰했고, 그렇게 인간의 행복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됐다.

건강 상태, 재산 규모, 가족, 친구 관계, 종교, 정치 성향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수백건의 심층 면접을 진행한 결과, 연구팀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본인이 형성하고 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 더 놀라운 사실은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에 비해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는 것이다. 심혈관 건강도 좋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았으며, 면역력은 물론이고 뇌 기능도 비교적 더 높았다고 한다.
데이팅앱 창업자가 말하는 요즘 세상의 '자만추' [긱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도 ‘성인 발달 연구’의 대상이었다./ JFKN 도서관 홈페이지

그래서 나는 행복한지 고민이 된다면 이런 질문을 해도 좋다. “나는 과연 믿고 의지할 만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루하루 생존이 중요했던 창업 초기의 시기에,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기만 하면 가장 행복할 것 같은 바로 이 시기에, 우연한 기회로 읽었던 당시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 책임자 조지 베일런트(George Eman Vaillant, 1934~) 교수의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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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베일런트의 모습. 오른쪽은 그의 저서인 '행복의 조건'./유튜브 캡쳐, 교보문고

우리 팀은 사람과의 관계를 만드는 서비스를 만든다. 지금은 종료했지만 2014년 모씨라는 앱을 통해 익명으로 진실한 자신으로 누군가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관계’를 만들고자 했다. 이후 2017년, 나랑 잘 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하는 ‘친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친구 만나기’라는 컨셉의 ‘위피’를 출시했다.

‘관계’ 부재의 시대

코로나로 인해 시작된 팬데믹은 사람을 대면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시기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같이 입학한 친구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고 하고, 누구는 온라인으로만 강의를 들으며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안전에 대한 욕구의 증대로 회사에서도 원격 근무가 보편화되면서 동료와의 대면 만남도 줄어들었다. 심지어 입사할 때도, 퇴사할 때도 서로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종종 뉴스에서 접하는 것처럼 이제 고독사는 노년층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미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고립으로 인해 고독사는 청년층에서도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현시대를 대변하는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발표된 0.78명의 최저 출산율이라는 숫자는 대한민국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인구 절벽의 시대라는 사회적 현상은 이미 심화된 지 오래다. 결혼이라는 관계에서도 많은 이들이 주저함을 보이는 것은 통계로도 나온다. 대한민국의 초혼 연령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2년 남성의 초혼 나이는 29.8세를 시작으로 2022년에는 33.7세로, 여성의 나이는 2002년 27세를 시작으로 2022년 31.3세까지 높아졌다. 이제는 본인의 경제 수준에 따라 연애하기도, 반대로 포기하기도 한다고 하니 지금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변해가는 듯하다.

물론 시대에 따라 결혼과 연애의 형태는 바뀔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사회 현상은 관계의 부재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바야흐로 ‘외로움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행복은 사람 사이의 관계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관계’가 부재한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모두는 행복할 수 있는 걸까.

데이팅 앱 그리고 ‘관계’

데이팅 앱 산업의 본질은 바로 사람 사이 관계의 구축에 관한 산업이다. 수많은 관계의 연결에 있어 ‘남녀의 만남’으로 범위가 한정됐을 뿐. 사실 이와 유사한 서비스는 계속 존재해 왔었다. 이전에는 누군가의 소개로, 전화로, PC로, 이제는 모바일로 그 형태만 바뀌었지 그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사용이 쉽고 접근하기 편한 모바일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최근 6~7년간 국내에서도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소셜 데이팅 앱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많은 업체가 생겨나고 성장함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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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통신을 통해 대화하는 영화 ‘접속’의 주인공들. 지금은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일이 흔하다./ 유튜브 캡쳐

데이팅 앱 시장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수조 원대의 매력적인 시장의 규모가 되었으며 앱 사용 시간이 100억 시간(data ai 자료)을 넘는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수도 있는 관계를 위한 투자 시간이라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이 시간은 정말 의미 있지 않을까.

위피는 국내에서 이미 빠르게 성장하고 어느 정도의 규모를 이룬 데이팅 서비스들 사이에서 시작했다. 다소 늦게 진입하는 만큼 시장에 잘 침투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철저한 시장 조사와 분석,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 그리고 소비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파악하여 시장에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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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팅 앱 시장 규모./data ai

관계의 본질은 비슷하나 그 형태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미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었고, 사람 사이의 새로운 관계 형성도 점점 어려워졌다. 그 속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 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은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지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과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기에 이를 위한 해결책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여성과 남성의 연애와 관련된 요구 사항, 시장과 사회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결국 데이팅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부담감은 현재 사회를 반영하지 못하는 키워드라는 것이라 판단했다. 결국 우리는 보다 확장된 개념의 ‘친구’라는 컨셉으로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팀이 서비스하고 있었던 모씨(익명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나이대별로 다양한 고민에 대한 키워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결국 우리는 이 모든 정보를 기반으로 ‘친구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카피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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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씨로 소통하는 모습./엔라이즈

데이터 그리고 신뢰와 안전

서비스의 컨셉도 중요하지만, 위피와 같은 서비스에서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데이터라 할 수 있다. 데이터가 중요하지 않은 서비스가 어디 있겠냐마는, 사람과의 상호 작용은 일반적으로 더 복잡하거니와 남성과 여성의 의사 결정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각각의 선택에 대한 통찰력 뿐만 아니라 이를 검증하기 위한 데이터의 측정과 분석은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관계의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위피에서의 기능 개발, 사람 사이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포함한 모든 개선은 실험 기반으로 진행했다. 먼저 실험군과 대조군을 설정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지표를 보고 해석했다. 서비스 전체에 좋은 영향을 준다면 반영을, 그렇지 않다면 기각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전체 제품의 개선을 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왔다.

일례로 ‘가까운 친구를 추천해 준다면 사람들이 좋아할까?’와 같은 가설은 팀 내에서도 우려 점이 있었으나 적용과 빠른 실험을 통해 가까운 사람과의 연결에 매우 선호하는 확실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검증했다. 우리는 기존의 ‘친구’라는 컨셉에서 ‘동네 친구’라는 키워드를 제시했고, 이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다시 전개하며 성장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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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피 앱 실행 화면. 맨 오른 쪽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화면./엔라이즈

또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만드는 데 있어 신뢰와 안전은 우리가 1순위로 꼽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래서 위피는 커뮤니티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기본적인 커뮤니티 가이드를 배포함은 물론, 이에 기반하여 24시간 서비스 모니터링, 실시간 이상 행동 감지 그리고 사용자의 신고와 운영단에서의 빠른 대응, 적극적인 사후 조치 등 사용자가 서비스를 더 믿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를 잇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면, 그 책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뿐만 아니라 산업군에 속한 모든 기업이 노력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기술은 사람 간의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편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앱에서의 만남은 빠르고 쉬운 만남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벼운(혹은 건전하지 못한) 관계를 만든다는 인식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스위스 제네바 대학 연구진이 내어놓은 결과는 이 상식을 깼다. 소셜 데이팅 앱으로 만난 커플의 관계 만족도는 오프라인으로 만난 커플과 다를 바가 없었고 오히려 함께 살려는 욕구가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결과였다.

결국 관계는 어떻게 시작하는가 보다는 누구를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는 것, 어쩌면 평생 함께할 수도 있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관계를 위해 같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 우리의 관계는 더 건강해지고, 결과적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로움의 시대 속 기술을 통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간에서 건강한 관계의 기회를 만들고 보다 많은 사람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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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기 | 엔라이즈 대표

엔라이즈는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IT 전문 기업이다. 2017년 동네 친구를 연결하는 소셜 디스커버리 서비스 위피(WIPPY)와 2020년 트레이너와 사용자를 연결하는 온라인 홈트레이닝 플랫폼 콰트(QUAT)를 론칭했다. 연결된 사람들이 소통하고 공유하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