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꽃이 피고 작약이 온다
그 징후를 아는 구름이 되고 싶다
이소연 시인
그 와중에 내가 놀란 것은 빛나는 노란 꽃잎들 속에서 붉은 작약이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노란 꽃의 대명사 해바라기 생각을 조금 했다. 전날 읽은 중국 한족 작가 리쥐안의 산문집 <아스라한 해바라기 밭> 때문이었다. 온종일 홀딱 벗은 채로 키 큰 해바라기 밭을 돌아다니는 엄마의 모습을 뤼지안은 “물속에서 둥둥 뜨지 않도록 노력하며 강을 건너는 것처럼 보였다”고 묘사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해바라기 밭에 물을 대느라 땀범벅이 된 엄마가 해바라기 하나하나가 물을 충분히 머금는지 지켜보는 마음은 무엇이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마음은 또 무엇일까? 물이 이 대지 위에서 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해바라기라니…. 리쥐안의 말에 해바라기가 품은 성결한 식물의 길이 느껴졌다. 어쩌면 마음이 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세상 모든 꽃의 꼭대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우리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마다 꽃다발을 안기고 싶은 걸까?

작약작약 쏟아지는 빗소리를 그리워하다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고양이나 염소 혹은 개가 죽으면 땅에 묻고 꼭 그 위에 작약 뿌리를 심어주었다. 뿌리에서 붉은 싹이 돋아 작약꽃이 피기까지 할머니가 고양이나 염소나 개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작약을 보살피며 하던 말들이 생각난다. 나비야, 백구야, 염생아, 하며 하던 말들….
작약은 그 뿌리가 오래될수록, 큰 꽃송이를 가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고향 아버지의 텃밭엔 작약이 가득했다. 친구에게 작약을 선물하기 전까지는 나는 그것이 작약인 줄 몰랐다. 작약이 쌍화차의 주원료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시를 쓸 때는 아는 것도 많아지고 모르는 것도 많아진다. 요즘엔 꽃이 그러하다.
친구에게 선물해 놓고는 “몰랐는데, 작약이 예쁘더라. 노란 꽃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작약이 정말 예쁘더라.” 감탄했더니, 남편이 작약 한 다발을 사 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 위에 코랄 빛 작약이 활짝 피어 있다. 세상에 꽃이 없다면 누가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 줄까. 내 얼굴을 기억하려고 내가 쳐다볼 때마다 나를 뜯어보고 있다. 작약이란 시를 쓰고 싶다. 작약으로 들어가 볼까. 작약 뿌리가 되어 볼까. 작약이 부르는 나비가 되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