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시간 만에 당시 전주예수병원 원장인 폴 크레인(한국 이름 구바울)이 수술에 나섰다.
아이의 소장 대부분은 회충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일부가 괴사한 상태였다.
배 속에서 꺼낸 회충을 집계한 수는 총 1천63마리. 양동이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회충을 제거했지만, 이미 오랜 기간 감염돼 온 아이는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충격적인 이 사건은 당시 한국 기생충 감염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회충이 인체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아이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고 또 수치스러운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기생충과의 '전쟁'이 본격화한 순간이다.
기생충학과 의학사를 공부해 온 정준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연구원이 쓴 책 '구충록'은 인간이 아닌 기생충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조명한 책이다.
책은 20세기에 이뤄진 한국의 기생충 박멸 사업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칠 무렵 인구의 90% 이상, 하나의 종류 이상의 기생충에 감염된 사례까지 고려한다면 100% 이상의 사람이 기생충을 갖고 있었으리라 추정한다.
그러나 1969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전국 단위의 검진과 투약 사업으로 연간 1천만명 이상이 동원되면서 기생충 감염 규모는 1983년 8.4%, 1989년 0.8% 등으로 그 규모가 급격히 줄었다.
이 시대 학교에 다닌 사람들만 기억하는 웃지 못할 순간도 많다.
검진에서 기생충 보유 사실이 확인된 아이는 교실 앞으로 불려 나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구충제를 먹어야 했고, 심지어 몇 마리가 있는지도 공개됐다.
저자는 이를 두고 "수치심의 강화라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지적한다.
혹여 잘못해서 터지지 않을까 고민했던 채변 봉투도 그 시절의 흔적이다.
저자는 "기생충은 해방 후 한국에서 극적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는 극적으로 사라졌다"며 "한때 한국에서 가장 번성한 공생체였던 기생충이 불과 사반세기 만에 사라진 것은 생태학적으로도 놀라운 변화"라고 짚는다.
하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건 눈부신 성과가 아니라 기생충이 나타나고 사라져간 과정이다.
그는 이를 '기생충의 흥망성쇠'로 일컬으면서 "인간이 아닌 기생충에 초점을 맞춰 기생충을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기생충을 키워드로 한 책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펴내 주목받았던 저자는 한국의 기생충 박멸 사업 면면을 흥미롭게 풀어내면서 오늘날 국경을 넘어 이뤄지는 여러 기생충 관리 사업을 소개한다.
후마니타스. 3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