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파우릭(콜린 패럴 분)은 콜름(브렌던 글리슨)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절교 통보를 받는다.

두 사람은 매일 오후 2시면 펍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절친한 사이. 파우릭은 콜름에게 이유를 묻지만 '그냥 싫다'는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대답만이 돌아온다.

파우릭은 혹시 말실수를 한 건 아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되돌아본다.

절교 선언을 당한 날이 4월 1일인 것을 알고 난 뒤에는 만우절 장난이 아닐까 희망도 품어보지만 콜름의 태도는 단호하다.

한 번만 더 귀찮게 하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보내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한쪽의 일방적인 절교 선언으로 어긋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콜름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집 앞에 던지는 순간, 관객은 이 영화가 친구 사이의 갈등을 넘어선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1920년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는 일부 대사와 장면에서 아일랜드 내전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이해와 소통의 부재로 뒤틀린 우정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전쟁의 그것과 닮아있는데, 이는 "두 친구의 절교와 아일랜드 내전의 분열에는 우화적인 측면이 있다"는 감독의 설명과 맥을 같이 한다.

파울릭과 콜름의 대화는 예술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음악과 사색을 사랑하는 지성인 콜름은 파우릭과의 대화가 '무의미한 수다'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아끼는 당나귀 제니를 비롯한 동물들을 돌본 뒤 친구와 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의 행복인 파우릭은 그런 콜름을 이해할 수 없다.

다정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파우릭과 그런 것은 사라질 뿐이며 오직 음악·그림·시 만이 남는다는 콜름, 파우릭을 차갑게 밀쳐내며 완성한 곡을 파우릭의 장례식에서 연주해도 되는지 묻는 콜름의 아이러니한 태도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대중성과 예술성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아름다우면서도 황량한 아일랜드의 풍광 위에 비극과 희극을 기발하게 뒤섞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전작 '쓰리 빌보드'(2017)에 이어 그가 내놓은 한 편의 훌륭한 블랙 코미디는 각종 영화제에서 124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오는 12일(현지시간)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도 9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파우릭 역의 콜린 패럴은 '킬러들의 도시'(2008)와 '세븐 싸이코패스'(2012)에 이어 세 번째, 콜름 역의 브렌던 글리슨은 '킬러들의 도시' 이후 두 번째 맥도나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인다.

도미닉 역의 배리 케오건도 상당한 존재감을 뽐낸다.

그는 인물의 기저에 깔린 위태로움과 불안함을 몰입감 있게 연기해냈다.

15일 개봉. 114분. 15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