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매혹의 걸작들] 호화생활 즐긴 18세 군주,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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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1646~1662년 오스트리아 티롤 지역을 다스렸던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은 겨우 열여덟 살에 군주 자리에 올랐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렸고, 사치를 즐겼다.
1648년께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그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알 수 있다. 카를 대공은 섬세한 레이스로 뒤덮인 주황색 옷을 입고 있다. 허리춤과 다리에는 당대 ‘패션의 중심지’인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리본·나비 모양 매듭 ‘갈랑’이 층층이 장식돼 있다. 그가 신은 부츠도 당시 유행하던 디자인이다. 각진 앞코, 높은 뒷굽의 부츠는 가장자리가 양동이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카를 대공은 프랑스에 사절단을 파견해 트렌드를 익히고, 여러 직물과 장식 패턴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는 한평생 여행과 유흥으로 삶을 보내다가 서른 넷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없어서 동생 지기스문트 프란츠가 그의 뒤를 이었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1648년께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그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알 수 있다. 카를 대공은 섬세한 레이스로 뒤덮인 주황색 옷을 입고 있다. 허리춤과 다리에는 당대 ‘패션의 중심지’인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리본·나비 모양 매듭 ‘갈랑’이 층층이 장식돼 있다. 그가 신은 부츠도 당시 유행하던 디자인이다. 각진 앞코, 높은 뒷굽의 부츠는 가장자리가 양동이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카를 대공은 프랑스에 사절단을 파견해 트렌드를 익히고, 여러 직물과 장식 패턴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는 한평생 여행과 유흥으로 삶을 보내다가 서른 넷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없어서 동생 지기스문트 프란츠가 그의 뒤를 이었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