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아들을 늘 따뜻하게 대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유난히 따랐다.
명랑했던 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왕따를 당했다.
강박증, 피해망상, 대인기피증이 연이어 찾아왔다.
부모의 지극정성 덕택에 도쿄의 사립대학에 입학했지만, 병이 도지면서 1년 만에 중퇴했다.
고립된 삶 속에 사교 불안장애, 양극성 장애 같은 다양한 질환이 발병했다.
우울한 청춘이 저물어 갈 때 즈음, 아들은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일상 속에 억눌린 감정을 폭력으로 해소했다.
그날부터 그는 습관적으로 엄마를 때렸고, 아빠는 아들을 말렸다.
구타의 반복, 깊어지는 병…. 그렇게 도돌이표처럼 계속되는 지옥 같은 삶. 아내가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구스모토 야스오는 이 불행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일본의 대표적 논픽션 작가 이시이 고타(石井光太)가 쓴 '가족의 무게'(휴머니스트)는 친족 살인을 소재로 쓴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2015년부터 6년간 가족 살인 사건을 취재해 책을 완성했다.
'영화나 소설 같은 픽션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 말이 절로 수긍된다.
사건 대상자들이 느꼈을 법한 감정의 깊이가 저자의 짧은 문장을 타고 오롯이 전달된다.
저자는 재판 방청과 피해자 인터뷰를 통해 은둔형 외톨이, 빈곤과 동반자살, 가족의 정신질환, 노노간병(老老看病), 아동학대 등으로 채워진 비극의 현장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아들을 살해한 구스모토 야스오는 매일 아들의 저녁 식사를 살뜰히 챙기고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던 다정한 아빠였다.
엄마와 동반자살을 꾀하다 자기만 산 다카시는 간신히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 엄마와 단둘이 행복하게 살려던 중 빚더미 속에서 비극을 맞이한다.
결국 언니를 죽이게 되는 에리코는 우울증에 걸린 언니를 대신해 조카의 엄마가 되고자 이혼도 불사한다.
노년에 남편을 죽인 히데미는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지만 반복된 남편의 폭언과 끝없이 계속되는 병간호 탓에 흉기로 남편을 찌른다.
저자는 생의 단계마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고난을 고군분투하며 헤쳐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생생히 포착한다.
그들은 가장이나 생계부양자, 간병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무게를 떠안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지만, 부담감이 누적되면서 서서히 무너진다.
아들을 살해한 구스모토 야스오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들의 병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런 아이를 가진 가족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런 건 가족이 아니면 모를 겁니다.
그 아이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다른 집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
저자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 가족 살해 사건 수는 최근 30년간 매해 400~500건 대를 유지하고 있다.
20년 전까지는 전체 살인사건의 40% 정도였던 비율이 최근에는 50%를 웃돌고 있다.
전체 살인 사건의 절반가량은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친족 살인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코로나가 끝난 후 '뉴노멀'이라 불리는 새로운 생활방식과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가족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하고 무거운 현실과 공적 지원의 문제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현욱 옮김. 336쪽.
/연합뉴스